ADVERTISEMENT

강달러에 코스피 2300선 깨져…미 4.9% 고성장, 추가 긴축 우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국발 금융시장 악재에 26일 코스피 2300선이 무너졌다. 2400선이 깨진 지 4거래일 만이다. 국내 주식시장에선 이날 하루 63조원이 사라졌다. 미국 경제의 호황 흐름에 따른 미 국채 ‘쇼크’와 되살아난 수퍼달러(달러 강세)에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영향이다. 여기에 중동전쟁의 확산 우려와 부진한 국내 기업의 실적도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2.71% 급락한 2299.08로 거래를 마쳤다. 2300선이 깨진 것은 지난 1월 6일(2289.97) 이후 약 10개월 만이다. 하락 속도도 빠르다. 올해 최대 하락 폭으로 수직 낙하하며 2400선이 무너진 지 4거래일 만에 2300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관련기사

코스피 하락을 이끈 것은 외국인 투자자의 ‘팔자’(4779억원) 행진이었다. 개인(3208억원)과 기관투자가(1106억원)가 4314억원어치 순매수에 나섰지만 하락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코스닥은 전날보다 3.5% 폭락한 743.86으로 마감했다. 수급이 악화하며 국내 증시(코스피+코스닥)의 시가총액(시총)은 하루 만에 63조5615억원이 증발했다. 일본 닛케이225 지수는 2.14% 하락했다.

올 3분기(7~9월) 미국 경제는 시장의 예상치를 웃도는 호황 흐름을 보였다. 26일(현지시간) 미 상무부는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연율 4.9%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2분기(2.1%)보다 높은 수치일 뿐만 아니라 2021년 4분기(7.0%)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앞서 경제학자들은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정책 영향으로 올여름 경제 성장이 정체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불과 몇 달 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성장세가 훨씬 견조하다”고 분석했다.

성장세를 이끈 건 탄탄한 소비다. 최근 시장이 경제성장률 전망을 4~5%대로 상향 조정한 것도 9월 소비·고용 지표가 예상외로 호조세를 보인 영향이다. 미 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이른다. 로이터통신은 “강력한 노동시장은 가계 구매력을 높여 소비 지출을 뒷받침해 왔다”고 설명했다.

“고금리 시대 더 길어질 수도”…시장 위축, 닛케이도 -2.14%

코스피가 64.09포인트(2.71%) 내린 26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종가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코스피가 64.09포인트(2.71%) 내린 26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종가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세계경제를 짓누르는 고금리의 향방은 미국의 성장세에 달려 있다. 4분기에도 견조한 성장세가 계속될 경우 “금리를 더 높게, 더 오래 유지한다”는 ‘하이어포롱거(H4L, Higher for longer)’를 강화할 수 있어서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19일 “지속적으로 추세를 넘는 성장세를 보이거나 노동시장이 더 이상 냉각되지 않는다는 추가적인 증거가 나타날 경우 인플레이션이 더 심화할 수 있고, 추가 긴축이 필요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Fed가 금리 인상이라는 추가 긴축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의미다.

월가에선 4분기 경기 둔화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금리·고물가로 인해 가계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 점차 소비가 위축될 수 있고, 최근 장기 국채금리가 급등해 가계와 기업에 부담을 안기고 있어서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은 4분기 GDP 증가율을 연율 1.7%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관측이 나오면서 파월 의장 등 Fed 인사들은 다음 달 기준금리 동결을 시사한 상태다. 다만 3분기 성장률이 시장의 예상보다 호조세를 보인 것은 Fed의 기준금리 동결 방향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미국의 3분기 경제 과열이 시장에 미리 반영되면서 26일 국내 증시의 주요 종목은 ‘검은 목요일’에 직면했다. 시총 상위 종목 중 2차전지 관련 기업의 하락 폭이 두드러졌다. 코스피에선 포스코퓨처엠(-8.94%)과 LG화학(-6.99%), 포스코홀딩스(-5.39%) 등이 5% 이상 급락했다. 코스닥에선 에코프로가 10% 폭락해 62만원 선으로 주저앉았다.

국내 증시뿐 아니라 아시아 주요국 증시도 대부분 하락했다. 아시아 증시에 가장 큰 부담이 된 건 다시 ‘5%’를 향해 고개를 든 미국 국채 금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5일(현지시간)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날보다 0.135%포인트 오른 연 4.961%를 나타냈다. 30년물 국채 금리는 같은 기간 0.13%포인트 상승한 연 5.093%를 기록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국채 금리가 다시 뛰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 경제가 탄탄하다는 ‘성적표’가 이어지자 시장은 ‘고금리 시대’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날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9월 신규 주택판매 건수는 75만9000건으로 나타났다. 8월(67만6000건)보다 늘었을 뿐만 아니라 시장 예상치(약 68만 건)를 크게 웃돌았다.

고금리 공포와 기술주 부진에 뉴욕 증시는 휘청였다. 25일(현지시간)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2.43% 급락했다. 이날 나스닥 시장에서 알파벳 주가는 9.51% 폭락했고, 시총은 하루 만에 1600억 달러(약 217조원) 사라졌다.

달러 강세에 원화가치도 단숨에 달러당 1360원 선에 진입했다.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날보다 10.3원 하락한(환율 상승) 달러당 136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원화가치가 달러당 1360원 선으로 미끄러진 것은 종가 기준으로 지난 4일(달러당 1363.5원) 이후 22일 만이다. 수퍼달러에 일본 엔화도 ‘1달러=150엔’대로 미끄러졌다. 박소연 신영증권 투자전략부장은 “한동안 증시가 조정받을 수 있다”며 “(미 국채 금리 향방을 결정할) 오는 31일~11월 1일(현지시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