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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골프채' 받은 현직판사 무죄…건넨 업자도 뇌물 무죄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0년 넘게 인연을 맺은 사업가로부터 '짝퉁' 골프채를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현직 부장판사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골프채를 건넨 업자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형사14부(류경진 부장판사)는 26일 선고 공판에서 알선뇌물수수와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A(54)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또 A 부장판사에게 짝퉁 골프채를 건넨 혐의(뇌물공여) 등으로 기소된 마트 유통업자 B씨(54) 등 2명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A 부장판사는 2019년 2월 22일 인천시 계양구 식자재 마트 주차장에서 고향 친구 소개로 알게 된 B씨로부터 52만원 상당의 짝퉁 골프채 세트와 25만원짜리 과일 상자 등 총 77만9000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그는 2018년에는 B씨로부터 "사기 사건 재판에서 선고 날 법정 구속이 될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법원 내 사건 검색시스템에 접속한 혐의도 받았다. A씨는 법원 사건검색 시스템에 접속해 B씨에 대한 사건을 18차례에 걸쳐 검색한 것으로 조사됐다.

애초 A 부장판사가 받은 골프채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명품 브랜드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감정 결과 '가짜' 판정을 받았다.

재판부는 "A 부장판사가 골프채를 받은 뒤 B씨가 여러 민사·형사 건으로 재판을 받은 사실은 분명하다"며 "B씨가 A 부장판사에게 (골프채를 건넨 뒤) 막연한 기대를 했을지 모르지만 A 부장판사는 여러 수사기관이나 재판에 영향력을 미칠 지위가 아니었다"면서 이같이 판단했다.

이어 "A 부장판사가 B씨 사건 담당 재판부에 연락하거나 선고 사실을 사전에 알아본 증거도 없다"며 "B씨가 A 부장판사에게 알선 청탁의 의미로 골프채를 줬다거나 A 부장판사가 그런 뜻으로 골프채를 받았다고 보기엔 증거가 부족하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A 부장판사가 B씨 부탁을 받고 사건 검색시스템에 접속한 혐의에 대해서도 "이 시스템에 사적 목적의 검색 자체를 금지하는 규정이나 법령상 제한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외부인이 검색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제공되는 정보 양에도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다.

B씨는 2018년 안산지원에서 사기죄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2019년 수원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이같은 판결에 대해 제식구 감싸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종민 변호사(사법연수원 21기)는 "황당한 판결이다. 비록 금액은 크지 않지만 이런 식의 업자와의 유착이 특히 지방을 중심으로 뿌리깊다는 의혹이 남아 있다. 최근 판결을 보면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논리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닌가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고 질타했다. 김 변호사는 "사법의 신뢰를 위해 경종을 울려야 할 판결 사례"라고 지적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8월 25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은 모범을 보여야 할 판사 신분으로 뇌물을 수수했다"며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2021년 6월 품위유지 의무 위반 등으로 A 부장판사에게 감봉 3개월과 징계부가금 100여만원 처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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