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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그렇게 많더니…" 자식같은 소 살처분, 축산농가의 눈물 [르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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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인천시 강화군의 한 축산농가 입구를 방역 당국 관계자가 통제하고 있다. 이 농가는 지난 24일 소 바이러스성 질병인 '럼피스킨병'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연합뉴스

25일 인천시 강화군의 한 축산농가 입구를 방역 당국 관계자가 통제하고 있다. 이 농가는 지난 24일 소 바이러스성 질병인 '럼피스킨병'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연합뉴스

“여기서부턴 들어오면 안 돼요.”
25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의 한 마을. 좁은 마을 길을 따라 들어서자 방역복을 입은 남성이 경광봉을 흔들었다. 지난 22일 소 바이러스성 질병인 '럼피스킨병'(Lumpy Skin Disease)' 확진 판정을 받은 A씨 농장이 인근에 있어서다.
멀리서 바라본 농장 주변 등엔 ‘출입금지’를 알리는 붉은 색 안전띠가 처져 있었다. 축사 문은 모두 활짝 열려 있었다. 소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럼피스킨병 확진 판정과 함께 A씨가 키우던 소 100여 마리가 당일 살처분됐다고 했다.
이인세 전국한우협회 평택지부장은 “평택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들은 청결·방역이 철저하기로 유명했던 곳”이라며 “정성껏 키우던 소를 한순간에 잃었으니 마음이 아플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경기 9곳, 인천 4곳…살처분·매몰 진행 중

럼피스킨병이 피해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럼피스킨병은 소에게만 감염되는 전염병으로 1929년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처음 발병했다. 모기 등 흡혈 곤충에 의해 주로 전파되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고열과 단단한 혹 같은 피부 결절이 특징이다. 국내에서는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지정돼 있다.
경기도에선 지난 24일까지 평택·김포·화성·수원 등 8개 농가가 확진 판정을 받아 사육 소 650여두가 살처분됐다. 이날도 화성시의 한 농가가 확진 판정을 받아 총 9개 농가로 늘었다. 인천에서도 이날까지 강화군에서 4개 농가가 확진 판정을 받아 690두에 대한 살처분·매몰이 진행 중이다.
의심 신고도 계속 이어지면서 각 지자체는 확진 판정을 받는 농가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소 바이러스 질병인 럼피스킨병이 확산하고 있다. 방역차량이 25일 오전 경기 평택시 한 농가를 방역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소 바이러스 질병인 럼피스킨병이 확산하고 있다. 방역차량이 25일 오전 경기 평택시 한 농가를 방역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농가들은 이동을 최소화하고 방역에 집중하는 등 노심초사하고 있다. A씨 농장에서 2㎞ 정도 떨어진 포승읍의 다른 마을은 입구 초입부터 여러 곳에 방역 효과가 있는 하얀 생석회 가루가 수북하게 뿌려져 있었다. 이 마을은 젖소·한우 목장 4곳이 몰려있다. 방역 차량은 종일 바쁘게 동네 곳곳을 돌며 연기를 뿜어냈다.
다른 곳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일부 축산 농가는 아예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적힌 입간판을 세우고 자녀나 친지에게도 찾아오지 말라고 알렸다고 한다. 화성시에서 한우 30여두를 키우는 B씨(60대)는 “올해 비가 많이 오고, 추석 이후 날이 선선해지면서 모기·파리같은 해충이 늘어나 걱정이었는데 이런 병이 유행할지 몰랐다”며 “아침·저녁으로 방역하고 있는데도 여기저기서 확진 소식이 들려오니 불안해서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축산농가, 사룟값 인상·솟값 하락…럼피스킨병까지 삼중고

축산 농가들은 사료값 급등, 소값 하락에 이어 럼피스킨병까지 확산하자 낙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 등으로 소 사료값은 지난해보다 30~40% 정도 상승했다. 반면에 지난해 10월 평균 500만원하던 수송아지 가격은 현재 350만원에서 400만원에 거래된다. 이런 이유로 최근 2년간 폐업한 젖소 농가만 300호에 이르는 가운데, 럼피스킨병까지 덮친 것이다. 화성에서 한우 170두를 사육하는 김용주(69·G한우연구회 회장)씨는 “확진 농가 10㎞ 반경에 있는 곳에선 백신을 맞아도 3주 정도 이후에 출하가 가능하다”며 “차량도 방역 완료 후 이동이 가능해 사료 수급에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경기 남양주시의 한 축산농가에서 한 수의사가 소들에게 럼피스킨병 백신을 놓고 있다. 독자 제공

경기 남양주시의 한 축산농가에서 한 수의사가 소들에게 럼피스킨병 백신을 놓고 있다. 독자 제공

경기도와 각 지자체는 보건소와 가용 방역 장비를 총동원해 럼피스킨병 매개체인 모기 등 해충 구제와 농장 주변 소독에 집중하고 있다. 또 다음 달 중순까지 도내 모든 축산 농장에 대한 백신접종을 완료할 예정이다.
정부도 럼피스킨병 발생농장에 대해서는 살처분 보상금을 전액 지급할 방침이다.
그러나 축산 농가들은 추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연묵(66) 전국한우협회 경기도지회장은 “정부는 예방 차원에서 확진 판정받은 농장의 소를 모두 살처분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충격이 크다”며 “감염이 확인된 소만 살처분하는 것도 고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삼주 전국한우협회 회장도 “기후 변화 따라 모기 등 해충으로 인한 가축 질병이 또 발생할 수 있다”며 “정부에 소독시설이나 해충퇴치시설 등을 지원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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