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화랑이 소리내다

연구·개발 예산 깎여 분노?…브로커·현금깡 줄줄 샌 돈에 깜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화랑 회사원·이학박사

소리내다(Make Some Noise)’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정부가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하자 과학기술계가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낭비되는 연구비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정부가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하자 과학기술계가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낭비되는 연구비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과학기술계가 분노에 휩싸였다. 윤석열 정부가 2024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을 크게 삭감한 안을 냈기 때문이다. 전체 R&D 예산의 66.3%가 구조조정됐고, 올해 예산의 16.6%인 5조2000억원 가량이 줄어든 25조9000억원이 배정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R&D선도를 위해서 비효율을 제거해야 하기에 예산 삭감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연구 없이 돈 타고 현금깡까지 #반발보다 과학계 자성이 먼저 #정부도 일괄 감액은 재고해야

 과연 과학기술계의 분노는 정당한 것인가. 필자의 학위 과정과 중소기업 재직 경험, 중소기업 및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에 재직했던 친구와 지인들의 사례로 미루어 본다면 예산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중소기업 지원 사업을 살펴보면 정말 많은 R&D 예산이 새어나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 세계엔 ‘과제브로커’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과제 기획력이 부족한 기업들을 먹이 삼아 과제제안서를 대리 작성해주는 대신, 사업에 뽑힐 경우 수수료를 요구한다. 중소기업에 5년 정도 다녔던 친구가 경험한 브로커는 기업과 대학 연구실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떼먹었다고 한다. 회사와 연구실도 과제비 나눠 먹기에 동참한 셈이다. 브로커만 배부르면 양반이다. 과제 수주를 위해 연구실이 이름만 빌려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중소기업 재직 당시 과제책임자였던 필자에게도 브로커가 접근했다. 과제제안서에는 성공했을 때 예상되는 결과와 그 수치를 제시해야 한다. 브로커는 예상치를 충족시킨 시험보고서를 보내주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는데, 속뜻은 시험연구소 계측비보다 비싼 용역비를 달라는 것이었다. 지인이 다녔던 회사는 제안서에 쓴 거창한 목표와 다른 결과를 얻자 수치를 조작했다. 그리고 심의한 전문가가 조작을 잡아내지 못하여 보고서는 통과됐다고 한다.

 두 기업이 짬짜미하는 사례도 있다. 과제 수행 회사가 다른 회사에 장비비·재료비 등 항목으로 대금을 지급하나 실제 물건은 오가지 않는다. 돈을 받은 회사는 돈을 준 회사에 수수료를 제한 금액을 ‘현금깡’으로 돌려준다. 그리고 심사기관엔 납품 완료 서류를 꾸며 제출한다. 상황들이 이러하니 중소기업 R&D 부정은 감사를 통해 잡아내기가 어렵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의 25개 출연연 예산은 국회 승인이 필요한 정부 직접출연금과 연구자가 정부 연구과제를 수주하는 정부 수탁과제비로 나뉘는데, 각각 예산의 절반에 이른다. 이번 삭감으로 출연금이 약 20% 줄었다고 하나, 출연연 관계자들은 비판하기 전에 자성할 필요가 있다.

 인건비와 과제비를 있는 대로 받아 사용하면서 정규직이라 잘릴 위험이 없다며 연구를 하지 않아 논문 한 편 안 내는 이들에 대한 공개 비판이 나온 적 있는가? 과제와 관계없는 이가 과제참여자로 등록되어 인건비를 타가고,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이가 논문 저자에 이름 올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현금깡 사례가 비단 기업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대학원과 연구기관을 거쳐 간 이들은 연구비 부정사용에 대한 산증인이다.

 과학기술계는 수주 경쟁을 유도하는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Project-Based System· PBS)가 연구 환경을 망쳤다고 말한다. PBS를 개선해야 함엔 동의하지만, 이 문제점들이 모두 PBS 때문인가. 과학기술계는 내부 자정을 약속하고 나섰어야 했다. R&D가 기초과학의 토대 위에서 불확실성을 담보로 진행되는 과정임을 모르는 연구자는 없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사업성이 떨어지는 기초과학 분야를 걱정하며 ‘기초연구’ 예산을 다시 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초연구 사업이 모두 기초과학 연구는 아니다. 수많은 감염병 관련 사업과 소재·부품·장비 및 미래기술 관련 사업 다수는 기초과학과 직접적 연관성이 부족하다.

 문재인 정부 시기엔 ‘한국판 뉴딜’이라는 알 수 없는 사업이 신설되었고, ‘일자리’ 등의 명목으로 무의미한 예산이 배분됐다. 혹자는 어려운 팬데믹 시기에도 R&D 예산이 증액되었다고 칭찬하지만, 필자는 어지러운 상황을 틈타 제대로 된 심의 없이 무의미한 연구들에 눈 먼 돈이 풀렸다고 생각한다. 정부 예산은 맡겨 놓은 돈이 아니라 국민이 낸 세금이다. 국가 R&D 사업은 세금 투자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훌륭한 인재니 어떤 상황에서도 당연히 지원해줘야 한다’는 사고를 전제로 한 비난은 건설적이지 않다.

 다만 정부는 예산 책정 과정에서의 소통의 부재로 과학기술인뿐만 아니라 예비 과학도의 반발까지 야기했다. 정부도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수주 경쟁을 초래하여 연구 환경을 해치는 PBS를 대체할 개선안을 빠른 시일 내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기초과학연구기관 및 4대 과학기술원과 그 유관기관의 주요사업비까지 일괄적으로 정률감액한 부분은 재고해야 한다. 이에 더하여 예산 삭감으로 피해를 본 유능한 연구자들과 신진 연구자들을 구제할 방안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 또 R&D는 항상 실패 가능성이 있기에 미흡한 연구를 구조조정하기보단 뛰어난 연구에 보상을 해주는 방안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지속적 R&D 투자를 발판 삼아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R&D 선두 주자가 되기 위해선 젊고 유능한 과학자들이 활동할 토대를 건설해야 한다. 정부와 과학기술계가 합심하여 나쁜 제도를 개선하고 자정 작용을 활발히 하는 것이 그 시발점이다.

김화랑 회사원·이학박사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