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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디지털 실크로드와 디지털 패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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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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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실크로드는 출범 10년을 맞이한 일대일로 사업에서 향후 가장 주목해야 할 분야이다. 일대일로가 추구하는 중국의 정치, 경제, 안보 영향력 강화에서 디지털 패권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이 범세계적으로 디지털 인프라 및 플랫폼을 장악하면 미래 가장 중요한 자원인 정보‧데이터의 축적과 흐름을 장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5G와 같은 정보 인프라, 물류 허브, 온라인 미디어나 상거래 등 인터넷 서비스,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거버넌스 체제를 통제하면서 외부 세계에 막대한 레버리지를 행사할 수 있다. 즉, 디지털 실크로드는 현존하는 글로벌 계층(hierarch) 구조를 재편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비대칭적 강점을 통한 중국의 글로벌 디지털 인프라 확장

디지털 실크로드가 공식적으로 천명된 것은 2017년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회의이다. 동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 참여국과 5G, 인공 지능 등 디지털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고 데이터, 클라우드, 스마트 시티를 포괄하는 디지털 실크로드를 구축해야 함을 발표한다.

이후 중국은 라오스, 사우디, UAE, 헝가리, 터키 등 16개국과 디지털 실크로드 구축 양해각서 서명(2019),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과의 디지털 실크로드 추진 외교부 장관 회의(2020), 아세안과의 디지털 경제협력 원년 선언(2020) 등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통하여 이미 진행 중에 있던 중국 기술기업들의 해외진출을 지원한다.

중국 기업들은 해외진출에 있어서 경쟁국들에 비해 비대칭적 이점을 갖는다. 거대한 내수 시장과 정부의 지원은 기업의 데이터 생성이나 접근에서 강점으로 작용하고 톱다운 체제로 특정 기술이나 아키텍처를 선정해 해외진출을 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캐나다 통신 장비 기업 노텔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시장 접근을 미끼로 하는 해외 기술 기업의 IP 탈취도 중국 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였음을 많은 연구가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중국은 이미 무선망, 스마트 시티, 해저 케이블 등 인터넷 백본, 위성 영역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는 데 성공하였다. 디지털 실크로드의 선봉장인 화웨이는 이미 아프리카 4G 네트워크의 약 70%를 장악하고 있으며, 100개국 이상 국가에 화웨이, Hikvision, Dahua, ZTE 등 중국기업들이 스마트 시티 관련 제품‧솔루션을 수출하고 있다.

해저케이블을 포함하는 개도국으로의 백본망 투자도 약 70억불을 상회하며 화웨이, 알리바바, 텐센트 등 클라우드 기업의 진출로 개도국 데이터 흐름에서 중국의 위상도 강화되고 있다. 2025년까지 글로벌 항법 위성시스템 시장 25% 점유를 목표로 하는 중국 베이더우(BeiDou) 시스템은 이미 전 세계 120개국에서 사용 중이다. 미사일, 전투기 등 군용 서비스로도 중요한 베이더우의 확산은 이를 활용하는 스마트폰, 자동차, 드론 등의 수출 증대로 이어질 수 있고 물류, 항만 등 여타의 일대일로 사업의 경제성에도 기여할 수 있어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디지털 인프라를 넘어서서 

디지털 실크로드는 단순히 물리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그 위에서 작동하는 플랫폼, 기술 표준 및 디지털 기술의 이용에 관한 규범을 포괄하면서 영향력 확대를 추구한다. 어쩌면 물리적인 인프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술 표준과 플랫폼 서비스 그리고 기술의 이용에 관한 규범이다.

물리적인 디지털 인프라가 플랫폼 서비스의 확산에 유리하게 작용할 경우 중국 빅테크의 이커머스나 모바일 지불결제서비스도 확산되고 디지털 위안의 사용 등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이미 동남아를 중심으로 글로벌 차원에서 중국의 플랫폼 서비스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텐센트의 쇼피(Shopee), 알리바바가 인수한 라자다(Lazada), 토코피디아(Tokopedia)는 동남아 3대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그 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 플랫폼 기업들은 전자결제 플랫폼 시장까지 진출하면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틱톡은 동남아를 넘어,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의 소셜 미디어를 능가하는 지위에 도달하였다.

소비자 위주의 플랫폼 서비스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것은 물류 플랫폼으로, 알리바바는 태국, 말레이시아와 합작으로 세계 전자무역 플랫폼(eWTP)을 만들어 중소기업의 디지털 통관, 물류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플랫폼 서비스에서 중국의 글로벌 존재감이 커질수록 정보공간에서의 위상 강화, 외부 세계에의 레버리지로 이어짐은 물론이다. 물류 플랫폼 서비스의 장악은 유사시 물류의 교란으로, 정보 및 데이터 흐름의 장악은 상대방과의 담론, 이야기 경쟁에서의 우위로 이어질 수 있으며 여기에 네트워크나 장비 부품까지 장악한다면 금융, 의료, 상거래, 공공 서비스 등 상대국의 기반 서비스 자체를 위협의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인프라나 플랫폼의 장악은 기술 표준의 장악으로 공고하게 된다. 중국은 ‘일대일로 구상 구축을 위한 표준 연결 실행 계획’(2018~2020)을 통해 중국 디지털 기술 표준의 개도국 도입을 추진하였고 ISO, IEC, ITU와 같은 국제 표준화 기구에서의 활동을 강화시켜왔다.

이들 국제기구들에서 서구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하나의 단체처럼, 일관되게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선정한 표준의 채택을 위해 행동한다. 즉, 중국은 국제 표준 수립에서 내수, 산업 역량 및 정부의 통제라는 비대칭적 강점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 투자나 기술 선진국과의 파트너십도 중국의 표준 장악에 일조할 수 있는데, 정보통신 분야에서 중국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에는 한국과 일본도 포함된다.

디지털 실크로드의 확산이 갖는 시사점으로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디지털 기술의 이용 규범을 둘러싼 경쟁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지난 ITU 사무총장 선거이다. 중국은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와 함께 이해당사자가 모두 참여하는 미국‧서구 주도의 현재의 인터넷 거버넌스 모델(multi-stakeholder model)을 다자간 정부주도 모델(multilateral model)로 전환하고자 시도해 왔다.

중국이 주창하는 ‘New IP’는 의도된 목적에 따라 데이터 패킷에 태그를 지정하면 (개도국) 인터넷 속도를 개선할 수 있지만, 네트워크에 대한 제어가 통신사업자에 중앙집중화되어 정부의 통제가 가능하게 되고 권위주의적인 통제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만약 ITU 사무총장이 중국에 우호적인 국가의 몫이 되면 중국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됨은 물론이다. 선거 결과 러시아 후보자가 미국 후보자에 패배하였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반(反)러시아 정서가 퍼지지 않았다면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국제무대에서의 경쟁과는 별도로, 중국의 통제‧감시 시스템도 확산되고 있다. 화웨이, 하이크비전, ZTE 등 중국 기술 기업들은 인공지능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을 전 세계 63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그중 36개국은 일대일로 참여국이다.

이처럼 디지털 실크로드가 개도국에 확산될수록 중국의 표준을 물론이고 국가 통제 인터넷이라는 중국식 모델이 글로벌 차원에서 확산될 가능성도 커진다. 그 결과로 일부 국가에서는 극단적인 통제 모델이 작동하고, 보통의 개도국에도 데이터 이전을 불법화하거나 고비용을 요구하는 데이터 현지화, 데이터 통제를 통한 온라인 담론의 관리, 각종 데이터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입법 등이 용이해질 수 있다.

디지털 실크로드를 디지털 권위주의의 수출과 무관하게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중국의 대외적인 레버리지가 정치, 경제, 군사‧안보 측면에서 모두 강화되고 네트워크에서 인터넷 서비스까지를 총망라하는 전체 컴퓨팅 스텍(stack)에서 서구와 중국이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 될 것이다.

디지털 패권을 둘러싼 그림자 전쟁

뉴욕 타임스 2021년 기사(2021. 2. 28)는 핵심 인프라 종속이 가져올 수 있는 위협 사례를 생생히 보여준다. 2020년 10월의 인도 뭄바이 블랙아웃을 초래한 중국의 사이버 공격이 인도가 중국과의 국경 분쟁을 조속히 마무리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었다는 것이다. 인도는 전기‧전자통신 상품 및 부품의 8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는데, 특히 전기 공급 그리드나 정보통신 인프라에서 의존도가 높다. 한편, 디지털 공간의 장악은 특정국에 대한 편향적 여론 조성이나 선거 개입을 용이하게 해 준다.

랜드 연구소의 최근 보고서(2023. 9)는 중국이 허위계정을 통한 가짜 뉴스, 칩페이크(cheapfake), 키워드 스쿼팅(squatting), 대규모 스팸 메일 등을 통하여 대만의 소셜 미디어를 남용하고 선거에 영향을 끼쳐온 실태를 고발하면서, 이러한 위협이 생성 인공지능으로 인하여 더욱 심각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처럼, 디지털 패권은 물리적 인프라에서 그 이용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지정학적 힘으로써 장기적으로 그 중요성이 증대될 수밖에 없다. 연결이 확장되고 디지털 기술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늘어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면, 디지털 실크로드가 중국에 갖는 전략적 중요성은 여타의 일대일로 사업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일대일로가 과잉부채의 문제에 봉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중단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디지털 실크로드에 집중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디지털 실크로드가 네트워크, 플랫폼 서비스, 표준, 규범과 가치를 망라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서방의 대응도 인프라 구축에서부터 서비스, 표준, 규범, 가치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러한 맥락을 무시하고 경제적 이익의 차원에서만 디지털 전략을 추진한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제도나 가치와 상충되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만이 전장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세계는 이미 보이지 않는 ‘그림자 전쟁’에 돌입해 있으며, 우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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