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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딸 학폭으로 사퇴한 의전비서관…외압 의혹 확인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하급생 전치 9주 상처 입힌 초3 전학 처분 면해

권력형 비호 의심 규명 위해 철저히 진상 밝혀야

김승희 대통령실 의전비서관이 지난 20일 면직됐다.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기도교육청 국정감사에서 김 전 비서관 딸의 ‘학폭’(학교 폭력) 행위와 소속 학교의 미심쩍은 처리 과정을 공개한 데 따른 것이다. 김 비서관은 사표를 냈고, 대통령실이 즉각 수리했다. 의혹 제기부터 사직까지 불과 일곱 시간이 걸렸다.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방문을 위한 윤석열 대통령의 출국을 하루 남겨놓고 벌어진 일이다. 의전비서관은 대통령 출장 때 수행하며 외교 일정상의 각종 의전을 조율·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김 의원이 파악한 내용에 따르면 초등학교 3학년인 김 전 비서관 딸은 지난 7월 2학년 여학생을 화장실로 데려가 리코더와 주먹으로 때려 전치 9주의 상처를 입혔다. 피해 학생의 부모는 김 전 비서관 딸을 전학시켜 달라고 학교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전 비서관 딸은 학급만 바뀌어 피해 학생과 다른 층에서 공부하게 됐다. 학교 학폭위원회는 사건 발생으로부터 약 두 달 뒤에 열렸다. 김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학폭위 기준으로 16점부터 강제전학 처분인데 가해 학생은 15점을 받아 전학을 면할 수 있었다. 학교 측에서 점수를 조정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학교 측이 김 전 비서관의 딸에게 출석정지를 통보한 날 그의 부인이 SNS 프로필 사진을 남편과 대통령이 함께 있는 장면으로 교체했다. 피해 학생의 가족은 김 전 비서관 부인이 학교에 위세를 과시해 사건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프로필 사진 교체가 사실이라면 공직자 가족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다. 고위 공직자의 도덕적 책무, 사건 처리의 엄정함을 고려해 있던 사진도 내리는 게 온당하고 현명한 처신이었다.

김 전 비서관은 김건희 여사의 고려대 미디어대학원 최고위 과정 동기(30기)다. 이벤트 기획·진행 대행업체를 운영하다가 윤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홍보기획단장으로 합류했다. 윤 대통령 취임 뒤 대통령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하다가 지난 4월에 의전비서관으로 승진했다.

김 전 비서관은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사건이 이대로 덮여져서는 안 된다. 경기도교육청과 대통령실이 김 전 비서관 또는 부인의 부적절한 관여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부당한 권력 사용은 한 치도 용납될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참모 조직을 슬림화하며 민정수석실을 없앴다. 이 때문에 고위 공직자 권력 남용에 대한 감시·감독이 약화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사건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통령실이 곧바로 사표 수리를 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란과 의혹을 해소하는 방법은 철저한 진상 규명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