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일본 전자 부품·소재 기업을 한국으로 초청해 미래 사업에 대한 협업 방안을 논의했다. 최근 한·일 관계가 해빙 모드인 가운데 두 나라 기업 간 신뢰 회복과 협력 의지를 다지는 자리였다.
日 기업에 “함께 미래 산업 선도하자“
22일 재계와 삼성에 따르면 이 회장은 21일 오후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삼성의 일본 협력사 모임인 ‘LJF(Lee Kunhee Japanese Friends)’ 교류회를 주재했다. LJF는 ‘이건희와 일본 친구들’이란 의미로, 1993년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신경영 선언’을 선언하면서 “부품 경쟁력이 완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삼성이 잘 되려면 부품회사들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며 시작됐다.
특히 이번 모임은 발족 30주년이 되는 해에다, 지난해 회장으로 취임한 이재용 회장이 처음으로 주재한 행사여서 주목받았다. 이 회장은 2019년에도 한국에서 모임을 주재했지만 당시엔 와병 중인 이 선대회장을 대신해서였다. 이날 일본 측에선 TDK·무라타제작소·알프스알파인 등 주요 전자부품 회사 8곳의 경영진이 참석했다. 삼성에선 한종희 부회장, 노태문 MX사업부장, 김우준 네트워크사업부장,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 등 삼성전자 경영진과 최주선 사장(삼성디스플레이), 최윤호 사장(삼성SDI), 고정석 사장(삼성물산) 등이 함께했다.
이 회장은 환영사에서 “삼성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일본 부품·소재 업계와의 협력이 큰 힘이 됐다”며 “지난 30년 동안 LJF 회원사와 삼성 간 신뢰와 협력은 한·일 관계의 부침에도 조금도 흔들림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과 일본 업계가 미래 산업을 선도하고 더 큰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천릿길도 함께 가는 소중한 벗’ 같은 신뢰·협력 관계를 앞으로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17년 만에 ‘유지 잇는 정원’ 고른 이유
실제 삼성과 LJF 경영진은 코로나19가 발병한 2020년을 제외하곤 매년 서로 사업장을 교차 방문하고 신기술 공동 개회 등을 진행해 왔다.
올해는 지난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승지원을 LJF 장소로 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승지원은 원래 삼성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의 거처였는데, 1987년 이건희 선대회장이 물려받아 집무실 겸 영빈관으로 개조했다.
특히 창업회장의 뜻을 이어받는다는 취지(승지·承志)로 이름을 붙이고, 본관 건물은 국내 최고 궁궐 건축 전문가인 신응수 대목장이 정통 한옥으로 지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영빈관은 다른 지역에도 있지만, 이건희 선대회장의 3주기를 앞두고 승지원에서 LJF 교류회를 연 것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일본 부품·소재 기업과 협력을 강화하고 양국 민간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경제협력 ‘민간가교’ 역할 주목
일본은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 부품과 소재 분야에서 여전히 세계적인 기술력과 입지를 지닌다. 삼성 같은 완제품(세트) 기업을 포함해 양국 기업들은 공급사슬로 촘촘히 묶여 있어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에 이 회장은 지난 2019년 일본이 불화수소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자 즉시 일본으로 출국해 LJF 경영진 등 현지 재계 인사들을 만나 사태 해결을 도모했다.
이듬해 9월엔 도미타 고지 당시 주일대사와 만나 한국 기업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 금지 조치를 해제해 줄 것을 건의했고, 양국 정부는 그해 10월 기업인 왕래를 재개했다. 지난해 7월엔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의 도쿠라 마사카즈 회장을 만나 재계 협력 회복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재계에선 올해 3월 도쿄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내 5대 그룹 회장이 참석한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이 열리고 양국 경제 협력 복원 분위기가 만들어진 데 이 회장의 꾸준한 활동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한편 삼성과 LJF 경영진들은 이날 승지원 모임에 앞서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나 삼성 주요 관계사의 미래 사업 전략을 공유하고,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