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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료 붕괴…"지방국립 의대, 서울학생 등은 1명도 뽑지말자"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지역·필수 의료 살리기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19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큰 그림을 내놨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20일 범정부 추진을 지시했다.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고 지방 국립대병원을 키워서 지역 의료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환자가 지역에서 치료를 끝내게 하는 게 목표이다. 이를 위해 국립대병원을 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대·신촌세브란스·서울성모병원 같은 소위 '빅 5' 급으로 키우고, 인력과 예산을 지원한다는 게 골자다.

 중앙일보는 보건의료 전문가 7명에게 긴급 평가를 의뢰했다. 이들은 "방향을 잘 잡았다"고 호평했다. 다만 빅5 급 육성이 말 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깨알 같은 주문을 쏟았다. 김윤 서울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 박은철 연세대 의대(예방의학) 교수,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장(의료관리학), 윤태호 부산대 의대(예방의학) 교수,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조희숙 강원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가나다 순)에게 물었다.

신영석 보사연 선임연구원이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신영석 보사연 선임연구원이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의대 정원 확대

 대부분 동의했다. 조희숙 교수는 "진작 했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박은철 교수는 이번 대책에서 빠진 점을 지적했다. "한의대와 의대를 동시에 둔 대학이 다섯 군데이다. 한의사가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건 아니다. 5개 대학이 한의대 정원을 의대로 옮기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학교별로 교육 인프라에 맞춰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준 교수는 "안 할(확대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이번에 숫자를 내지 않은 게) 설득하는 모양새를 갖추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지역 의사 확충 단기 대책으로 "한시적으로 지방 국립대 의대 정원의 100%, 사립대 의대의 80%를 지역인재 전형으로 선발하자. 졸업생의 절반은 지역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40%(강원·제주 20%) 이상을 뽑게 돼 있다. 윤 교수는 "의대 신설 주장이 나오는데,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야 한다"며 부정적으로 봤다. 정형선 교수는 "지역 의사 확대는 웬만한 대책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조금씩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지역 인재 전형을 확대하거나 일본식 자치 의대(지역 의사 양성 의대)를 시행하면 일부라도 지역에 의사가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희숙 강원대 의대 교수. 중앙포토

조희숙 강원대 의대 교수. 중앙포토

정형선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정원 확대 의지를 갖고 끌고 가는 것 같다. 증원한다면 가치가 크다고 본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1000명 이상 늘리는 게 좋다"고 말했다.

◇민간병원과 같이 가야

윤태호 교수는 "국립대병원의 진료 역량이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계속 향상되고 있다. 국립대만 올라가서는 안 되고, 그 지역의 병원과 같이 향상돼야 한다. 국립대만 독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면 협력할 리가 없다. 국립대가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돼서는 곤란하다. 공공적 역할, 중심적 역할을 하되 2차 종합병원도 같이 좋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국립대병원이 지역 의료를 움직일 수 있게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며 광역 시·도 역할을 강조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중앙포토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중앙포토

 김윤 교수도 "이번 대책에 시·도의 역할이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현재 국립대와 사립병원이 경쟁 관계인데, 갑자기 '국립대 중심으로 모여라'고 한들 모이겠느냐. 시·도가 지역필수의료협의체를 만들어서 한데로 모으되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을 늘리고 교수를 늘리면 전공의도 늘어나게 되는데, 이런 인적 자원을 국립대만이 아니라 지역 전체가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협의체에서 의대생 실습, 전공의 파견, 교수 채용 등의 인력 운용을 결정하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의료기관 간의 무한경쟁·각자도생의 틀을 깨고 국립대병원의 리더십을 갖추게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수도권이 더 빨아들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은철 교수도 "광역 시·도가 좀 더 일해야 한다. 부산 의료 돌아가는 상황은 부산시가 더 잘 안다. 부산시가 필수의료 구멍을 감시하고, 지자체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 지방 필수 의료는 지방정부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희숙 교수는 "국립대병원에 얼마나 힘을 실어주고 예산을 줄지에 달렸다"고 단언한다. 조 교수는 "빅5 수준으로 키우려면 예산을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조 교수는 "국립대병원을 키운다는데, 행정력을 주는 게 아니지 않으냐. 민간병원을 아우르라고 하는데 권한과 수단이 없다"고 우려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가 중앙일보 본사에서 좌담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가 중앙일보 본사에서 좌담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대통령이 나섰으니 이번엔 다르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17개 국립대병원의 관할 부처를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바꾸기로 했다. 10년 넘게 추진해왔지만 실패했다. 정형선 교수는 "그동안 교육부가 동의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대통령이 나섰으니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며 "복지부가 국립대병원 중심으로 지역의료체계를 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신영석 교수는 "이번에 지방의료원과 시·군·구 보건소도 복지부 관할로 옮겼어야 지역완결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데,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윤태호 부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가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 시절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태호 부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가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 시절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영석 교수는 수가 조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신 교수는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들이 개업이 가능한 통증 분야로 몰리고 소아 중증환자를 수술할 의사가 부족하다"며 "그런데도 개업 러시가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개업 후 비급여 진료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인데, 진료 수가를 조정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일반의사(비전문의)와 전문의의 건강보험 진료 수가에 차이가 없다. 의대만 나와서 바로 개원해도 문제가 안 된다. 수가를 달리하거나, 개업 유인 동기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피부과·성형외과 세율 체계를 개편해 수입을 낮추고, 24시간 중증환자를 대기하는 의사의 기회비용 보상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중앙포토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중앙포토

◇민간 상급종합병원에 역할 부여해야

 박은철 교수는 "국립대만, 공공의료만 살리려 하느냐"고 말한다. 그는 "전국에 상급종합병원이 45곳(국립대병원 포함)이다. 국립대병원은 분원 빼면 10여곳이다. 민간의 자원이 훨씬 많다. 똘똘한 민간병원이 중심이 되면 왜 안 되나. 가령 부산의 경우 부산대·동아대·인제대·고신대 등이 경쟁해서 중심 역할을 맡게 할 수도 있지 않나. 민간병원끼리 네트워크를 만들면 지역완결 의료가 안 되나"라고 반문한다. 박 교수는 "공공이든 민간이든 따지지 말고 지원해야 한다. 지역 중심 역할을 하면 가산점을 줘서 상급종합병원 지정에 유리하게 도와야 한다. 안동병원·제주대병원 같은 데가 대상"이라고 말했다.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장. 중앙포토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장.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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