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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무뎌진 이스라엘, 사즉생 하마스에 속수무책 당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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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1호 27면

[제3전선, 정보전쟁] 모사드의 실패, 하마스의 성공

아슈라프 마르완지난 7일(현지시간) 패러글라이드를 탄 무장 하마스 대원이 이스라엘의 경계망을 뚫고 경계선을 넘어가 기습 공격을 하고 있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이스라엘의 정보망이 원시적 방법을 동원한 하마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아슈라프 마르완지난 7일(현지시간) 패러글라이드를 탄 무장 하마스 대원이 이스라엘의 경계망을 뚫고 경계선을 넘어가 기습 공격을 하고 있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이스라엘의 정보망이 원시적 방법을 동원한 하마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은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인 모사드(Mossad) 뿐만 아니라 국내 정보기관인 신베트(Shin Bet), 군 정보기관인 아만(Aman) 등 일류의 정보기관을 보유한 정보 강국이다. 그런 이스라엘이 픽업트럭·패러글라이드 등 원시적 방법을 동원한 하마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세계는 이스라엘의 정보강국 명성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더욱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안에 있는 하마스가 그 많은 무기들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전혀 포착하지 못한 것은 의아함을 넘어 이스라엘 정보의 무능함마저 느껴진다. 이번 사태로 이스라엘 국민들이 느낀 충격은 9·11 테러와 맞먹을 정도라니 정보실패의 여진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하마스, 첨단정보 전환기의 허점 공략

상황을 좀 더 차분하게 살펴보면 몇가지 구조적 이유들이 보인다. 무엇보다, 첨단정보로의 전환에 따른 과도기적인 정보공백 현상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첨단 기술정보에 많이 투자한다. 첨단 기술정보는 인간정보와 달리 위험성이 낮고 정보의 자의적 왜곡 소지도 낮으며, 특히 인간정보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대량 정보수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도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춰 인공지능(AI) 등 첨단 디지털 정보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첨단 정보기술이 쳐놓은 그물을 피하기 위해 원시적 방법을 취하는 역발상을 선택했다. 전화기나 인터넷망을 사용하지 않고, 전파 자체가 차단되는 지하공간을 이용했으며,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문서는 직접 인편으로 전달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첨단 정보기술도 무용지물이 된다. 첨단 기술정보로의 전환은 미룰 수 없는 과제이지만, 전환기에 발생할 수 있는 정보 사각지대를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이다.

또한가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매너리즘과, 그에 대비되는 하마스의 사즉생(死卽生) 자세다. 이스라엘은 국경장벽을 설치하고 가자지구를 통제하고 있다. 그래서 하마스의 공격 가능성에 대한 긴장감과 경계감이 낮아졌다. 미국 정보당국이 9·11 테러를 막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도 매너리즘에 빠져, 알 카에다가 민항기를 미사일 무기로 둔갑시켜 활용할 것이라는 상상력을 막지 못한 것이다. ‘설마’에 당했다는 점에서 이번 하마스 공격과 9·11은 공통적이다. 반대로 하마스는 사즉생의 정신으로 공격을 준비했다. 지난 수십년간 이스라엘의 강력한 정보력을 경험한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에 포착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일절 하지 않았다. 매너리즘과 사즉생의 대결에서 어느 쪽이 이길지는 자명하다.

정보의 고질적 딜레마인 늑대소년 효과(cry wolf effect)도 작용했다. 늑대소년 효과는 평소 사소한 위기를 자주 경고하면 경고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정작 결정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번에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국경 일대에서 하마스의 공격 예행 연습 징후를 포착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징후정보는 일상적으로 있는 것이어서 주목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정보력을 과신하여 주변국의 경고 를 과소평가한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이집트 정보당국이 가자지구에서 ‘큰일’(something big) 날 가능성이 있음을 수차례 전달했으나 이를 경시한 것 등을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정보 수집과 분석 과정에서의 문제점보다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최종단계라 할  수 있는 정보판단의 문제다. 정확한 정보판단을 내리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가 처한 상황과 이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사람의 판단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판단은 주어진 기준이나 조건에 따라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아슈라프 마르완

아슈라프 마르완

사실,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3년 4차 중동전쟁은 하마스 공격보다 훨씬 더 심각한 정보 실패 사례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시리아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아 시나이반도 방어선이 무너지고 북쪽의 골란고원이 위험해지는 위기 상황까지 몰렸다. 다급해진 이스라엘은 미국에 긴급지원을 요청해 가까스로 방어한 후 미·소의 중재하에 겨우 휴전하여 수습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기습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신뢰할만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이집트 최고지도부 내에 심어 놓은 이스라엘 스파이 아슈라프 마르완(암호명 ‘천사’·사진)은 가말 나세르 대통령의 사위이자 대통령 보좌관으로, 이집트의 기습공격 계획은 물론 이집트와 시리아의 군사공조 전략까지 소상히 파악하여 모사드에 제공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도부는 수집한 정보를 논의한 결과, 전쟁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 판단 근거가 있었다. 첫째,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미사일과 장거리 폭격기가 있어야 하는데 이집트는 아직 장거리무기를 확보하지 못해 공격을 감행할 수 없다고 보았다. 둘째 전쟁 전 포착된 이집트군과 시리아군의 활발한 움직임은 일상적인 군사훈련으로 판단했다. 셋째로는 이집트와 시리아가 전쟁을 일으킬만한 특별한 동기나 합리적인 목적이 없다고 보았다. 넷째, 그해 5월 전쟁이 발생한다는 마르완의 정보가 있었으나 실제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르완이 그 이후 다시 보내온 정보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회복기의 이스라엘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기 때문에 전쟁 발발에 대해서는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도부의 정보판단이 마냥 근거가 없거나 비합리적 평가만은 아니다. 그러나 정보는 결과지향적이다. 아무리 판단과정이 합리적이고 타당해도 정보는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한다.

4차 중동전쟁 때 더 심각한 정보 실패

이처럼 정확한 정보판단은 매우 어렵다. 정보실패의 원인은 정보수집 부족, 분석관의 편견, 정보조직의 경직된 문화, 국가지도자들의 집단사고 등 일반화할 수 있지만, 개별 국가들의 판단기준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 나라의 정치·안보환경과 지정학적 위치, 정보문화 등이 정보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보와 정치, 정보와 정책의 숙명적 딜레마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보가 정치·정책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정보의 정치화·정책화로 인해 정보가 왜곡될 위험이 있다. 반면 정치·정책과 너무 멀어지면 현실과 멀어져 정보가 무용지물이 될 위험이 있다. 마키아벨리와 토마스 홉스의 정보철학처럼 정보는 가장 현실 지향적이고 목적 지향적이므로 속성상 정치·정책과 멀어질 수 없다. 참 어려운 딜레마이다. 그래서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잭 레비는 정보는 불확실한 요인들이 많아 실패와 오판이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고 본다. ‘정보실패 불가피이론’이다. 그러나 굳이 학문적 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정보실패 제로 달성은 사실상 어렵다. 만사가 그렇듯이 실패 제로는 신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는 정보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나 9·11 테러 등 수많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보실패는 국가전체를 위기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보실패가 불가피하게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여, 혼란과 위기를 즉각 회복할 수 있는 뒷받침 장치도 마련해 두어야 한다. 4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정보실패로 나라를 잃을 뻔했지만, 미국과 외교관계를 튼튼히 해 놓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예이다. 정보실패로부터 배우는 교훈을 잘 발전시키는 지혜도 필요하다. 미국은 진주만 피습 당시 역사상 최악의 정보실패를 경험했으나, 그 실패를 교훈삼아 국가정보 100년 대계를 다시 설계해 오늘날 세계 최강의 정보선진국을 달성했다. 좋은 선례이다. 또한 하마스의 사즉생 자세에서도 배울 교훈이 있다. 진부하지만 ‘불가능은 없다’ 고 증명하는 사례를 하마스는 하나 더 추가했다. 정보당국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국가단위의 정보실패 개념과 기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정보실패에 대한 개념과 기준이 확립되어야 비로소 정보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고민이 시작될 수 있다. 그 고민이 곧 새로운 정보발전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최성규 고려대 연구교수. 국가정보원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국제안보 분야에 종사했다. 퇴직후 국내 최초로 비밀 정보활동의 법적 규범을 규명한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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