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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 노르망디 안 올 것” 히틀러 오판, 2차 대전 패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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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2호 31면

[제3전선, 정보전쟁] 정보 실패의 역사

미국 육군 제1사단 제16연대가 1944년 6월 6일 아침,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에 상륙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은 ‘사양 산업’이다. [사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미국 육군 제1사단 제16연대가 1944년 6월 6일 아침,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에 상륙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은 ‘사양 산업’이다. [사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여러분의 성공은 기억되지 않지만, 여러분의 실패는 만천하가 다 알게 될 것입니다.” 1961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당시 중앙정보국(CIA)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피그스만 작전’을 펼쳤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케네디는 CIA를 찾아가 격려하면서 변함없는 신뢰를 보였다. 그렇다. 실패는 결과가 드러나기 때문에 세상에 다 알려지지만, 성공은 잘 알려지지 않는다. 성공 사실을 알리게 되면 그 과정에서 있었던 비밀들도 드러나 정보 역량 약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보 활동이 활발했던 2차 세계대전 당시 그런 사건이 많다. 성공 사례뿐 아니라 실패 사례도 적지 않다.

정보 실패에도 대부분 국가 투자 늘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연합국으로서는 전세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성공작이지만 나치 독일로서는 한탄이 절로 나오는 정보 실패였다. 사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성공보다 실패 가능성이 높았다. 아이젠하워 연합군 사령관도 “노르망디 작전은 실패했다”는 비밀 전문(電文)을 미리 써 놓았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히틀러가 연합군의 기만 상륙작전을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히틀러는 1944년 3월 참모들에게 연합국 선박들이 특정지역을 향해 집중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그곳으로 우리를 유인하려는 기만이므로 절대 속지 말라고 지시했다. 대신 히틀러는 연합국의 상륙지점이 항구가 있는 지역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 자기 확신은 연합국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정보 실패의 출발점이 되었다. 히틀러의 이 확신 때문에 나치 정보당국은 항구가 없는 노르망디에 대한 정보수집을 소홀히 했다. 정보가 독재자의 구미에 맞게 보고되면서 왜곡되기 시작했다. 이를 간파한 연합국은 기만 정보를 통해 나치 독일의 정보 판단을 더욱 흐리게 했다.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를 섞어 적 진영에 흘려 히틀러와 참모들이 나치 정보당국의 정보를 더욱 불신하도록 유도했다. 이러한 기만전에 속아 히틀러는 서부전선의 300개 사단 중 노르망디 해안에는 불과 8개 사단만 배치했다. 그 결과 노르망디 해안은 뚫렸고, 전세는 연합국으로 기울었다. 히틀러의 과도한 자기확신이 정보 실패를 낳았고, 이 실패는 나치 독일의 2차 대전 패배로 이어졌다.

소련의 스탈린도 참담한 정보 실패를 경험했다. 1941년 6월22일 새벽 1시45분 소련 군수열차가 곡물을 싣고 독일과 소련 국경을 통과했다. 1939년 체결한 독·소 불가침조약의 경제협력 조항에 따라 나치 독일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소련의 군수열차가 통과한 지 불과 1시간 반 후인 새벽 3시쯤 그 국경을 통해 나치 독일이 소련을 기습했다. 불과 1시간 30분 전까지만 해도 우방국이었던 나치 독일의 공격을 스탈린은 왜 까맣게 몰랐을까. 스탈린은 독·소 불가침조약 때문에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자신의 전략과 배치되는 정보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독일의 소련 침공 가능성을 경고한 중요한 정보들을 무시했다. 그 중에는 신뢰도 최고 수준의 정보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 국무부 섬너 웰스 차관이 주미 소련대사를 통해 독일의 소련 침공 계획인 바바로사(Barbarossa) 작전을 알려주었으나 스탈린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소련 최고의 스파이로 인정받던 리하르트 조르게의 정보도 무시했다. 조르게는 1941년 5월19일 주일 독일대사관을 통해 독일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긴급정보를 타전했으나, 스탈린은 오히려 격노했다.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정보를 무시한 스탈린은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는 국가적 재앙을 자초했다.

엄청난 국제질서 변화를 몰고 온 소련의 붕괴와 이란 혁명 등 세기적 정변을 예측하지 못한 것도 대표적인 정보 실패다. 특히 냉전기간 미국은 엄청난 정보자산을 투입하여 소련의 정치·경제·군사 등 전(全) 분야를 면밀히 추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붕괴를 예측하지 못해 현대사의 가장 큰 정보예측 실패로 평가된다. 당시 CIA는 고르바초프의 등장 등 소련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데도 그 변화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소련 분석의 틀에 집착하여 그 변화를 읽지 못했다. 이에 당시 조지 슐츠 국무장관도 “CIA는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에 대해 단지 말뿐이며 미국을 속이기 위한 것이라고 오판했다”고 술회했다.

최악의 정보 실패로 평가되고 있는 9·11 테러 사건. 사진은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공격당하는 장면. [AP=연합뉴스]

최악의 정보 실패로 평가되고 있는 9·11 테러 사건. 사진은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공격당하는 장면. [AP=연합뉴스]

이란 혁명 예측 실패도 비슷하다. 1977년 들어 혁명의 기운이 이란을 덮고 있었으나 1977년 12월 31일 카터 대통령은 CIA의 정보보고를 토대로 이란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단언했다. CIA도 1978년 8월 이란은 혁명 상황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6개월 후인 1979년 2월 팔레비 정권이 무너지고 혁명정부가 들어섰다. 후일 CIA는 예측실패를 자인하면서 그 원인 중 하나로, 팔레비 정권의 정보기관인 사바크(SAVAK)가 제공한 정보에 너무 의존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다고 자평했다.

이 두 가지 예측 실패 사례는 이질적인 정치체제에 대해 관성적으로 판단한 나머지 변화의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 주원인이지만 정보기관의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문화도 한몫 했다. 정보기관은 늘 관성과 권위주의 조직문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한편 오늘날의 정보 실패는 갈수록 증가하고 다양해지는 추세다. 테러·방첩 등 정보의 역할이 확대된 데 따른 현상이다. 특히 테러 정보의 실패는 정보기관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다. 2001년 9·11 테러는 충분한 징후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막지 못해 엄청난 재앙과 비판을 불러 왔다. 알 카에다의 테러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가 수차례 있었으나 모두 경시되었다. 빈 라덴의 주변 인물들이 비행기 조종을 배우려 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으나, 이를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송기를 운용하기 위한 것으로 잘못 판단했다. 정보 부족이 아니라 정보 판단이 틀렸다. 또한 CIA, FBI, NSA 등이 제각각의 출처로부터 테러 정보를 입수했으나, 이를 종합하여 판단하려는 협력 노력도 게을리했다. 500여명의 사상자를 낳은 2015년 파리 테러 사건도 대표적인 정보 협력 실패이다. 테러범들은 EU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들고 있었는데, 이들에 대한 신원만 공유했더라도 국경 검문 과정에서 체포할 수 있었다. 하지만 EU 국가간 개인정보 공유 절차가 까다로워 실패했다.

국가지도자 정보 편식 경계 목소리도

정보전쟁

정보전쟁

이처럼 정보 실패는 늘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정보 실패 재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오히려 정보 투자를 늘리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의 말처럼 알려진 정보 실패보다 알려지지 않는 성공이 더 많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 정책이 올바르게 추진될 수 있도록 나침반 기능을 하는 등 정보의 역할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그래서 정보 실패를 책망하기보다 좀 더 객관적·과학적으로 대응하려는 노력이 늘고 있다.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 정보강국들은 정보 실패가 발생할 경우 예외없이 의회나 특별위원회를 통해 정밀 조사를 거쳐 합리적 시정방안을 마련한다. 작은 실패를 통해 더 큰 실패를 막자는 지혜가 담겨 있다. 정보 실패 원인에 대해서도 정보기관 내부요인과 외부요인, 정보를 다루는 인간의 본질적 약점과 한계 등 좀 더 이론적으로 규명하려는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정보 실패 최소화를 위해 과학적으로 대응해보자는 취지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국가지도자들의 정보 편식을 적극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국가지도자들의 정보 실패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스탈린과 히틀러의 정보 실패 가 주는 교훈이다. 스탈린의 정보 실패 과정을 지켜본 뉴욕타임스(NYT)의 해리슨 솔즈베리 기자는 그의 저서 『900일』에서 “국가지도자는 항상 참모들에게 정직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보고하도록 지시해야 하고, 그 스스로도 편견없이 정보를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정보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일갈했다. 새겨들을 만하다.

이번 하마스의 기습에 이스라엘의 정보망이 뚫린 사례에서 보듯 정보 실패는 순식간에 국가를 위기로 몰 수 있다. 우리도 그럴 가능성이 없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다른 나라의 정보 실패로부터 배우는 교훈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타산지석의 교훈을 활용하여 우리 정보 능력이 한 단계 더 발전되길 기대해 본다.

최성규 고려대 연구교수. 국가정보원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국제안보 분야에 종사했다. 퇴직 후 국내 최초로 비밀 정보활동의 법적 규범을 규명한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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