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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처 "난 괜찮다" 했지만…法, 6차례 찾아간 남편 '스토킹죄' 왜

중앙일보

입력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각 행동이 객관적·일반적으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킬 수준은 아니더라도, 이를 반복·누적하면 스토킹죄가 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A씨는 지난해 가을, 수년 전 이혼한 전처 집에 두 달 사이 여섯 차례 찾아갔다. 아침부터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거나 밤에 현관문을 발로 차기도 했고, 자녀들만 있는 시간대에 찾아가 문을 열어달라고 해 들어가기도 했다. 초인종도 노크도 통하지 않자 소리를 지른 적도 있고, 다음날엔 집 건물 앞마당에 누워있기도 했다.

스토킹죄로 재판에 오게 된 A씨는 소리 지르고 마당에 누워있던 건 잘못했지만, 나머지 행동은 전처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준 게 아니므로 스토킹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A씨는 대부분 술에 취해 전처를 찾아가긴 했으나 피해자인 전처는 “(전남편이)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오면 언제든지 받아줄 수 있고 그 경우에는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느낀 적이 없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5월 대전지방법원은 A씨의 행동이 모두 “(일반적으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행위”이며, “실제로 피해자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켰다”고 보고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A씨가 전처 집을 여섯 번 찾아간 건, 전처를 강간하고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어겨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집행유예 기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난달 27일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대전지법과 결론은 같이 하되 판단을 달리하며 스토킹죄에 대한 새로운 법리를 세웠다. 대법원은 A씨가 스토킹 행위 여부를 다툰 각각의 행동들이 “객관적·일반적으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정도의 행위는 아니다”고 봤다. 멀쩡할 때 오는 건 괜찮았다는 피해자의 진술과 더불어 두 사람이 네 자녀의 엄마와 아빠로 평소 적지 않은 교류가 있었던 점, 피해자 요청으로 A씨가 변기 공사를 돕기도 한 점, 경찰이 출동했을 때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고 경찰도 단순 귀가조치 시켰던 점 등을 고려했다.

대신 대법원은 A씨의 행동을 “누적적·포괄적으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일련의 행위”라 봤다. 재판부는 “스토킹 행위는 그 행위의 본질적 속성 상 비교적 경미한 수준의 개별 행위라 하더라도 반복되어 누적될 경우 상대방이 느끼는 불안감 또는 공포심이 비약적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실제로 그 증폭이 이뤄졌다고 봤다. “1개월 남짓의 짧은 기간에 A씨 자신도 불안감·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행위임을 인정하는 행위까지 나아갔다”는 것이다.

대법원 공보연구관실은 이 판결에 대해 “경미한 수준의 개별 행위라도 누적적·포괄적으로 평가해 불안감·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스토킹행위로 볼 수 있다고 본 최초 사안”이라며 “스토킹범죄 피해자를 보다 두텁게 보호할 수 있게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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