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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기업이 법인세 42% 부담…실적 나쁘면 나라곳간 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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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극소수 대기업에 대한 세수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상위 0.01% 기업이 납부하는 법인세가 전체 법인세액의 40%를 넘어섰다. 100개에도 못 미치는 일부 대기업 실적이 흔들리면 국가 재정 전체가 휘청이는 구조다. 올해 59조원(기획재정부 추계)에 달하는 세수 부족 사태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대기업의 부진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1만분의 1 기업이 법인세 42% 냈다

19일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위 0.01% 기업(98개 법인)은 법인세 36조7000억원을 납부했다. 2014년(12조5000억원)과 비교하면 2.9배 늘었다. 전체 법인세수(87조8000억원)에서 상위 0.01%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증가하는 추세다. 2014년엔 35.5%였는데 지난해 41.8%를 기록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범위를 상위 0.1% 기업(982개 법인)으로 넓혀 봐도 법인세 집중도는 증가 추세다. 상위 0.1% 법인은 2014년에 법인세 총 21조4000억원을 납부했는데 지난해엔 58조8000억원으로 8년 새 2.7배 증가했다. 지난해 1000개에도 미치지 않는 상위 0.1% 기업이 납부한 법인세는 전체 법인세의 66.9%를 차지해 3분의 2가 넘었다.

삼성·하이닉스 부진에 국가재정 휘청

올해 대규모 세수 부족 사태를 유발한 건 법인세 감소다. 지난 1~8월 국세 수입은 241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조6000억원(16.5%) 줄었다. 특히 이 기간 법인세가 지난해와 비교해 20조2000억원(24.5%) 적게 걷힌 것으로 나타났다. 세수 부족분의 절반가량은 법인세가 차지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기업 영업이익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감한 게 나라 전체의 세수 펑크로 연결됐다는 풀이가 나온다. 각 기업의 상반기 재무제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법인세액은 2412억원이다. 지난해 상반기엔 7조1071억원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법인세 비용으로 1조8812억원을 반영했던 SK하이닉스는 올해 상반기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만 따져도 올해 상반기 법인세수가 1년 전보다 8조7000억원 감소한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경제정책으로 내세우면서 중소기업과의 상생 강조했지만, 대기업 의존도는 되레 커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윤영석 의원은 “소수 기업에 의해 국가 재정이 불안정해지는 등의 문제가 있다”며 “중소‧중견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국가전략산업을 집중 육성해 초일류 기업을 늘리는 정책이 모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출은 반도체 의존 “신산업 키워야”

1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1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소수 기업 의존도가 높은 건 한국 경제 전체적으로도 불안 요인 중 하나다. 특히 반도체 기업의 부침에 따라 수출이 출렁이고 있다. 지난달 전년 대비 수출 감소율(4.4%)은 수출이 줄어들기 시작한 지난해 10월 이후 가장 낮았다. 반도체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수출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껏 수출이 악화한 주요 원인이 반도체 부진이었다는 뜻이다.

총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19.4%, 2021년 19.9%로 20%에 육박했다. 그러다 반도체 업황이 악화하면서 올해 1~8월은 반도체 비중이 14% 수준으로 줄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흔들리자 국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나타났다”며 “각 분야 독과점 기업이 이익을 독식하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는데 한국의 문제는 반도체와 2차전지를 제외하곤 선두 기업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외에 첨단산업을 이끌어갈 기업 육성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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