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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 30m 치아 냄새도 맡는다…실종자 8명 찾아낸 6살 '파도' [르포]

중앙일보

입력

“따라!”
지난 17일 오후 2시 30분, 대구 달성군 소재 낙동강 강가에 있는 한 수상 레저 공간.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 산하 119구조견교육대 소속 현광섭 훈련관이 우렁차게 외쳤다. ‘나를 따라오라’는 의미다. 이 호령에 혀를 내밀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던 ‘파도(견종 벨지안 말리노이즈)’가 현 훈련관 옆으로 바짝 붙었다. 파도는 2017년 9월생으로 몸길이 약 120㎝의 대형견이다. 작지 않은 크기임에도 움직임이 날랬다.

지난 17일 대구 달성군 소재 한 수상레저 공간에서 수난탐지견 '파도'가 수심 아래 숨겨진 시료를 찾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다. 나운채 기자

지난 17일 대구 달성군 소재 한 수상레저 공간에서 수난탐지견 '파도'가 수심 아래 숨겨진 시료를 찾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다. 나운채 기자

파도는 강가에서 견용 구명조끼를 입혀주자, 익숙하다는 듯 정박해 있던 보트에 올라탔다. 보트 앞쪽에 자리 잡은 파도는 낙동강 수면 위로 고개를 숙인 뒤 연신 킁킁대기 시작했다. 목줄을 움켜쥔 현 훈련관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현 훈련관은 “파도는 목표물을 찾아야 한다는 의식이 워낙 강해 목줄을 꽉 붙잡고 있지 않으면 물 아래로 뛰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파도가 입은 구명조끼엔 ‘수난탐지견’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수심 30m 아래 냄새도 맡을 수 있어 

수난탐지견은 물 아래 있을 수 있는 실종자를 찾는 특수 목적으로 훈련되는 개를 말한다. 파도는 국내 최초 수난탐지견으로 활약 중이다. 소방청 훈령인 119구조견 관리 운영 규정상 수난탐지견은 재난구조견‧산악구조견 등과 함께 구조견으로 분류된다. 발달한 후각을 이용해 ‘탐지’를 목표로 한다. 고도의 훈련을 마친 수난탐지견은 수심 30m 아래 냄새도 맡는다. 사람의 혈흔이나 체취가 묻은 옷, 머리카락, 심지어는 치아 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고 한다.

수난탐지견은 2019년 5월 29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람선이 침몰해 한국인 관광객 25명이 숨진 사고가 계기가 돼 도입됐다. 당시 사고 현장에서 외국의 수난탐지견이 실종자 수색에 동원되는 모습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현 훈련관과 김용완 훈련관이 수난탐지견 훈련에 투입됐다. 모두 민간에서부터 2~30년 경험을 쌓은 베테랑들이지만, 당시엔 새롭게 국내 도입되는 분야인 만큼 미국 등 해외 사례를 공부해가면서 커리큘럼 등을 짰다.

수난탐지견 훈련에 사용되는 시료가 담긴 통의 모습. 통 안에는 사람의 치아나 혈흔이 있는 천 조각 등이 담겨 있다. 나운채 기자

수난탐지견 훈련에 사용되는 시료가 담긴 통의 모습. 통 안에는 사람의 치아나 혈흔이 있는 천 조각 등이 담겨 있다. 나운채 기자

목표지점 확인하면 짖어 구조대에 알려 

수난탐지견 훈련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지시에 따라 장애물을 통과하는 것과 호흡을 맞추는 복종 훈련, 돌 밑 등 강가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놓은 시료(試料)를 찾는 훈련, 강이나 저수지에서 보트를 타고 수심 아래 시료를 찾는 것 등이다. 시료를 담은 통에 무게 추와 실을 달아서 물 아래 깊숙이 넣은 뒤 보트를 타고 주변을 순찰하면, 수난탐지견이 특정 장소를 냄새로 찾아 짖어서 구조대에 알리는 방식이다.

이날 훈련은 파도, 그리고 3살 어린 동생 ‘규리(동일 견종)’가 함께 받았다. 2020년 말쯤 자체 평가에 합격한 파도에 이어 규리도 수난탐지견이 됐다. 자체 평가는 ▶특정 상자나 물가에서 시료를 정확히 찾아낼 수 있는지 ▶목표물을 발견하면 구조대에 잘 알리는지 ▶45분이란 제한시간 내 수심 1m 아래 있는 시료를 찾아낼 수 있는지 ▶10m 거리 수영 등을 확인한다. 상대적으로 경험이 더 많은 파도가 규리보다는 훈련에 더 능숙하다고 한다.

지난 17일 대구 달성군 소재 한 수상레저 공간 인근 낙동강 강가에서 수난탐지견 '규리'가 숨겨진 시료를 찾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다. 나운채 기자

지난 17일 대구 달성군 소재 한 수상레저 공간 인근 낙동강 강가에서 수난탐지견 '규리'가 숨겨진 시료를 찾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다. 나운채 기자

지난 17일 대구 달성군 소재 한 수상레저 공간에서 수난탐지견 '파도'가 수심 아래 숨겨진 시료를 찾기 위해 보트 앞 쪽에서 냄새를 맡고 있다. 나운채 기자

지난 17일 대구 달성군 소재 한 수상레저 공간에서 수난탐지견 '파도'가 수심 아래 숨겨진 시료를 찾기 위해 보트 앞 쪽에서 냄새를 맡고 있다. 나운채 기자

실종자 8명 찾아내…“효과 더 높일 것”

훈련 성과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파도와 규리는 2021년부터 이달 초까지 32차례 각종 사고 현장에 투입돼 8명의 실종자를 찾았다. 지난 8월 12일 대구 달성군에서 집중호우로 인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60대 남성의 시신을 찾아냈고, 지난 7일엔 충북 충주 목행교에서 실종된 남성 시신을 찾는 데 도움을 줬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이룬 성과였다. 파도가 처음 사고 현장에 나갔을 땐 한 장소에서 탐지 반응을 보였지만, 그보다 제법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실종자가 발견된 적 있다. 현 훈련관은 “유속이 빨랐던 탓”이라며 당시를 돌이켰다.

이날 훈련 중 훈련관이 숨겨놓은 시료를 찾은 파도와 규리에겐 장난감 공을 줬다. 일종의 보상인 셈이다. 현 훈련관은 이제 겨우 첫발을 뗀 수난탐지견 운영이 실제 현장에서 효율적인 ‘옵션’이 될 수 있도록 신중히 처리하고 있다. 매번 훈련 장소나 방법을 바꿔가면서 훈련 효과 검증을 거듭하는 것이다. 현 훈련관은 “아이들(파도‧규리)이 명석하고 영악하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훈련을 반복하지 않고, 변화를 주고 있다”며 “냉정한 태도로 집중적인 훈련을 진행해 탐지 효과를 더욱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대구 달성군 소재 119구조견교육대 훈련장에서 수난탐지견 '파도'가 현광섭 훈련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나운채 기자

지난 17일 대구 달성군 소재 119구조견교육대 훈련장에서 수난탐지견 '파도'가 현광섭 훈련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나운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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