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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복룡의 신 영웅전

맥아더 사령관의 은원(恩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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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 ‘임시행정수도 구상’을 발표했다. 천도하려고 충남 계룡산의 유사종교를 철거한다기에 나는 자료를 모으려고 헐리기 전에 답사를 갔다. 놀랍게도 ‘맥아더(MacArthur)교’란 유사종교가 있었다. 맥아더는 한국을 살린 수호신이라는 것이 교주의 설명이었다. 맥아더는 학창 시절에 학교 앞 맥줏집에 들러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라며 고성방가하는 낭만도 있었다. 대위 시절 필리핀 총독이던 아버지의 부관으로 필리핀에서 근무할 때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으로 가서 노기 마레스키(乃木希典) 원수 등에게 훈수할 때는 우쭐해 했다.

삐딱하게 쓴 모자, 궂은 날에도 쓴 선글라스, 담배를 즐기지도 않으면서 물고 다닌 옥수수 파이프, 가죽점퍼, 칼같이 주름진 바지,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닦은 구두. 비스듬히 앉은 자세로 멋을 낸 이 남자는 ‘미국의 시저(Caesar)’인 양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뒤 트루먼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만나자고 하자 “내가 바쁘니 중간에서 만나자”고 대답했다. 웨이크섬 상공에 이른 그는 대통령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내가 기다릴 수는 없지” 하면서 허공을 선회하다가 트루먼보다 늦게 착륙했다.

결과론이지만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북진한 것은 통쾌했으나, 평양을 점령하고 대동강-함흥 선을 장악한 1950년 10월 하순에 그가 북진을 멈추고 중국과 북한을 압박해 휴전협상을 했어야 옳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맥아더가 한국인에게 가해자인지, 구세주인지 논란이 있다. “맥아더에 대한 험담과 찬사는 모두 사실이다.”(T A Blamey) 인천 맥아더공원 연오정(然吾亭)에는 서예가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의 현판이 있다. ‘나처럼(然吾)’이란 무슨 뜻일까. 맥아더가 73년 전 평양에 입성한 10월 19일, 특히 그가 생각난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