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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일광의 퍼스펙티브

지상군 투입 초읽기…가자지구 재점령은 ‘악수’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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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불길 커지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성일광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

성일광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이어 이스라엘 지상군의 가자 지구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하마스의 공격 개시 열흘 만에 사망자만 1500명(하마스 포함 4000명)을 넘을 정도로 큰 재난을 당한 이스라엘은 지상전으로 대대적 보복을 예고하고 있다. 확전에 따른 인도주의 재앙이 예상되면서 국제사회의 우려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마스는 이번에 육·해·공 3차원 침투로 이스라엘의 방어망을 뚫었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스마트 철책’은 하마스의 폭탄과 불도저에 무너졌고 감시탑은 드론이 투하한 폭탄에 망가졌다. 이스라엘 신베트(국내 정보기관)는 하마스의 의심스러운 움직임을 인지했지만, 기습 공격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다. 주도면밀한 작전계획을 짠 하마스, 군사적 우위와 첨단 기술을 믿은 이스라엘의 방심이 겹치면서 이스라엘은 치명타를 입었다.

하마스의 성동격서 기만술 먹혀
이스라엘의 방심 겹치며 큰 타격

이스라엘 극우파가 자극한 측면
중동 헤게모니 노린 이란 배후설

지상군 투입시 헤즈볼라도 참전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 비화 우려

하마스 성동격서에 당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가자 지구를 상대로 한 지상전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이스라엘 병력과 장비들이 지난 15일 가자 지구 인근 국경의 작전 대기 장소에 속속 집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가자 지구를 상대로 한 지상전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이스라엘 병력과 장비들이 지난 15일 가자 지구 인근 국경의 작전 대기 장소에 속속 집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마스는 성동격서(聲東擊西) 병법을 이용해 초기에 이스라엘에 큰 타격을 줬다. 하마스는 가자 지구 주민의 경제 발전을 위해 카타르의 자금 지원과 가자 지구 주민의 이스라엘 내 노동허가를 이스라엘에 요구했다. 이런 움직임은 하마스가 무장투쟁보다 경제 재건에 몰두한다는 인상을 줬고,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기만전술에 당했다.

하마스는 아랍어로 ‘이슬람 저항운동’이란 뜻이다. 무장 투쟁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등 온건 정파와 차별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하마스의 민간인 살해는 처음이 아니다. 하마스는 1993년 이스라엘과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합의한 ‘오슬로 협정’ 이행을 방해하기 위해 수십 차례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PLO의 외교적 해법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왜 하마스는 이 시점에서 기습 공격을 개시했을까. 하마스에 불리해진 역내 정세와 이스라엘의 강경한 팔레스타인 정책, 이 두 가지 배경에서 답을 찾을 수 있겠다. 우선, 최근 역내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중동은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리비아와 시리아 내전에서 진영에 따라 대리전을 해왔다. 튀르키예와 카타르는 역내 이슬람 세력을 지원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군부를 지원하며 대결해 왔다.

하마스와 이란의 이심전심

이란은 시리아를 지원해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와해를 막았다. 지난 3월 이란과 사우디가 국교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냉랭했던 아랍 국가들이 조금씩 관계 개선에 나서기 시작했다. 튀르키예는 사우디뿐만 아니라 이집트와 관계 개선에 나섰고, 카타르는 이집트와 사우디와 각각 관계를 정상화했다.

가장 놀라운 사건은 2020년 이스라엘이 UAE·바레인·모로코·수단과 수교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관계 정상화는 이란의 역내 입지를 어렵게 할 변수다. 만약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최종적으로 수교한다면 다른 아랍 국가들도 추가로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어 이란은 촉각을 곤두세운다.

중동 헤게모니를 놓고 이스라엘·이란·사우디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이란은 불리한 전세를 역전하기 위한 카드로 하마스를 이용했을 수 있다. 이란이 하마스를 오랜 기간 지원하고 지지해온 이유는 바로 이런 효용성 때문이다. 설사 이란이 이번 하마스의 직접적 공격 배후가 아니더라도 이심전심으로 하마스는 이란의 애타는 마음을 헤아렸을 것이다.

극우 정치인, 팔레스타인 자극

이스라엘 극우 정부의 강경한 팔레스타인 정책도 하마스의 군사적 도발을 자극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는 극우 정치인이 연정에 참여한 정권이다. 베잘렐 스모트리치 재무장관은 “팔레스타인 민족 같은 건 없다”고 공언하면서 이스라엘 정착촌 확장을 촉구하는 발언으로 팔레스타인 측의 분노를 샀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 장관은 지난 1월 이슬람의 3대 성지인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에 출입해 팔레스타인 주민을 자극했고, 유대교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성전산(聖殿山)에서 유대인이 기도할 수 있도록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해 무슬림의 분노를 샀다. 게다가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도시 제닌과 나블루스에서 창설된 자생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을 와해하기 위해 이스라엘 특수부대가 군사 작전을 하면서 민간인 피해가 속출했다.

팔레스타인 마을 후와라에서 출몰한 테러리스트가 유대인을 살해했다는 이유로 유대인 정착촌 주민들이 이 마을 주택과 차량에 불을 질렀지만 이스라엘 당국이 막지 못했다. 일련의 사건들은 이스라엘 우파정권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정책의 일환이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분노하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역내 반이스라엘 세력의 고립과 이스라엘 극우파의 득세가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지하터널 수색에 1~2개월 걸려

“15일 오후 1시(한국시간 오후 7시)까지 대피하라”는 이스라엘의 최후통첩 시한이 지남에 따라 지상전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은 가자 지구의 하마스 주요 시설과 군수물자 파괴, 하마스 지도부 격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가운데 하마스는 ‘땅굴전’을 비롯해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며 결사 항전을 외치고 있다.

지상군 투입은 몇 가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2008~2009년과 2014년 지상전에서 많은 병력이 사망했다. 따라서 이번에 명확한 작전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다면 하마스가 파놓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더 큰 위험은 지상군 투입으로 인한 병력 집중이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세력 헤즈볼라의 참전을 부를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외과 수술하듯 하마스의 군사력을 무력화하는 것이 목표라면 최단시간에 하마스 지도부 사살, 군사시설과 지하 병참기지를 파괴하고 철수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하마스의 지하 터널과 시설을 일일이 수색하려면 최소 1~2개월은 소요될 것이다.

반면 하마스 정권 붕괴는 가자 지구를 일정 기간 점령해야 가능한 것인 만큼 작전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가자 지구 재점령이 목표라면 이스라엘의 악수가 될 것이다. 국제사회의 반발이 예상되고 230만 가자 지구 주민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큰 만큼 실행에 옮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하마스를 제거해야 한다”면서도 “가자 지구 재점령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헤즈볼라, 이스라엘 북부 호시탐탐

주변 아랍국가는 이스라엘을 비난하면서 별다른 행동을 하고 있지 않다. 이집트는 1979년 이스라엘과 캠프 데이비드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요르단은 1994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를 제한해온 데다 최근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어 외부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다만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 북부 주민 110만명에게 대피령을 내려 팔레스타인 주민이 이집트 국경으로 몰려간다면 이집트 정부에 큰 부담이 된다.

1982년 이란이 레바논에 창설한 헤즈볼라는 호시탐탐 이스라엘 북쪽을 노리고 있다. 헤즈볼라는 2006년 이스라엘과 한 달 가량 치른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으로 폐허가 된 베이루트 시민들의 원성을 들어야 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전쟁을 도발하면 레바논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겠다”고 여러 차례 엄포해왔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동시에 상대하는 두 개의 전쟁을 치르는 모의 훈련을 해왔다. 이스라엘의 전쟁 대비 태세와 이에 따른 엄청난 전쟁 피해가 예상되면서 레바논 내부의 반대 여론 때문에 헤즈볼라 수뇌부는 전쟁 개시를 억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면 헤즈볼라의 참전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스라엘 멈추지 않으면 통제불능”

미국 정부는 혹시 모를 헤즈볼라의 참전에 대비해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헤즈볼라와 이란에 보냈다. 이를 위해 제럴드 포드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항모전단을 동지중해에 배치했다. 미국은 탄약과 군사 장비 등을 이스라엘에 이미 인도하기 시작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이 멈추지 않으면 통제 불능 상태가 될 것”이라 경고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으면 자칫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은 북한과 대치하는 대한민국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비 태세를 다시 한번 촘촘히 점검해야 할 때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당한 이스라엘은 우리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다. 적에게 허점을 보이는 순간 언제든지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 줬다. 우리 군의 철저한 대비 태세와 확고한 국민의 안보관, 그리고 국론 통합이 안보를 지키는 첩경이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