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후남의 영화몽상

“쉰 살은 애기” 부산영화제의 김영옥·나문희·박근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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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후남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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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남 문화선임기자

바다는 종종 풍랑이 거세다. ‘영화의 바다’ 부산국제영화제도 그렇다. 올해는 뜻밖에도 내부 갈등으로 풍랑을 겪었다. 그 와중에 예산이 줄고 공식 초청작도 다소 줄었지만 관객 열기는 여전했다. 상영 직후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영화 못지않게 인상적인 말이 들리곤 했다.

“아프가니스탄을 잊지 말아 주세요.” 이란 출신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 그 딸 하나 마흐말바프 감독의 신작 상영장에서 나온 말이다. 이 가족은 ‘칸다하르’ 등 아프간에 관한 영화를 여럿 만들어온 터. 아버지 모흐센의 ‘강가에서’는 이란과 아프간을 의인화한 목소리와 여러 영화 장면을 통해 아프간의 비극적 현대사를 압축해 전한다. 딸 하나의 ‘아프간 리스트’는 2021년 미군 철수 직전, 탈레반 치하에서 신변이 위태로울 예술인·언론인을 탈출시키기 위해 당시 영국에서 마흐말바프 가족이 동분서주하는 모습과 아프간 현지의 처절하고 긴박한 영상을 담았다.

영화 ‘소풍’으로 부산영화제를 찾은 김영옥·나문희·박근형. [뉴스1]

영화 ‘소풍’으로 부산영화제를 찾은 김영옥·나문희·박근형. [뉴스1]

묵직할 줄만 알았던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선 반가운 만남도 벌어졌다. 모처럼 영화제를 찾은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이 객석에 자리했다. 두 감독은 그를 알아보고 잠시 무대로 불러내고, 아시아 영화 담당 고(故)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언급하며 창립 멤버들에 고마움을 드러냈다.

알다시피 부산국제영화제는 김동호 위원장과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비롯해 한국에서도 영화제란 걸 해보자는 창립 멤버들의 열정에서 출발했다. 관객의 뜨거운 호응이 이어지면서 한국에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문화 인프라가 됐다. 세계 각지 영화인과 교류하며 영화에 담긴 세계 각지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한 게 벌써 28회째다. 물론 사람으로 치면 아직 젊은이다.

“쉰 살이면 애기예요.” 나문희·김영옥·박근형 세 배우가 주연한 영화 ‘소풍’의 상영장에서 나온 말이다. 극 중 세 사람은 오랜만에 고향에서 반갑게 뭉친 친구들이자 저마다 몸 아프고 자식 때문에 마음 아픈 노년. 관객과의 대화 때 자기 나이부터 밝히고 노년에 대한 고민을 전하는 질문이 여럿 나왔다. 80대에 접어든 관록의 배우들은 “쉰 살이면 애기”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지 않는다”며 격려를 섞어 답했다.

“물론 영화제에 남겨진 수많은 상처와 개선되어야 할 과제가 존재합니다.” 올 상반기 내홍을 겪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7월 밝힌 바다. “많은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이어온 부산국제영화제의 저력으로 모든 사안을 간과하지 않고, 하나하나 마주하고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영화제의 성공적인 개최는 영화인 그리고 관객과의 약속이자 의무이며 동시에 영화제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지난해보다 좀 줄었어도 올해 영화제 관객은 14만 명이 넘는다. 객석점유율은 지난해보다 올라갔다. 관객은 약속을 지켰다. 스스로의 다짐대로 이젠 부산이 영화제를 지켜나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