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음영이다!" 향 없애도 적발…숨은 마약 찾는 매의 눈

중앙일보

입력

“띠링띠링~”
지난 11일 오후 2시쯤 인천공항본부세관(공항세관) 특송물류센터. 작업 시작을 알리는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육중한 기계음이 귓전을 때렸다. 센터 1~3층 곳곳에 미로처럼 펼쳐진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곧이어 항공기 컨테이너에서 나온 각양각색의 특송화물이 벨트 위에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항공기 컨테이너에서 내려진 물품들은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 바코드 인식기를 거쳐 검사를 받는다. 심석용 기자

항공기 컨테이너에서 내려진 물품들은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 바코드 인식기를 거쳐 검사를 받는다. 심석용 기자

 발송 전 입력한 등록 정보를 확인하는 푸른색 바코드 인식기(IPS)를 거치자 본격적인 ‘화물 신체검사’가 시작됐다. 엑스레이(X-ray) 검사 기계에 화물 진입을 알리는 불빛이 들어오자 4층 엑스레이 판독실에 대기하던 세관 직원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게임 조이스틱처럼 생긴 기기의 버튼을 조작하자 특송 화물을 여러 각도로 찍은 영상과 확대 사진 등이 좌측 모니터에 나타났다. 다른 모니터들에도 특송화물을 투시한 결과물이 나타났다. 분석 결과를 토대로 제한 시간(10초) 안에 ‘마약’, ‘총기’, ‘검역’, ‘협업’ 등 버튼을 눌러 특송화물의 행선지를 정하는 게 판독실의 업무다.

지난 11일 X-ray 판독실에서 김주형 주무관이 컨테이어 벨트로 들어온 해외 특송물품을 판독하고 있다. 심석용 기자

지난 11일 X-ray 판독실에서 김주형 주무관이 컨테이어 벨트로 들어온 해외 특송물품을 판독하고 있다. 심석용 기자

동남아시아에서 들어온 의약품을 판독하던 김주형 주무관은 “상품 이름이 이미지와 맞지 않거나 음영이 이상하다 여겨지면 검사 버튼을 누른다”고 말했다. 마약, 도검류 등의 경우 색이 다르게 표출된다고 한다. 김 주무관은 과거 기기 부품 이미지와 음영이 다른 점에 주목해 전자기기 속에 숨겨진 마약 200g을 적발한 적이 있다. 그는 “단순한 건은 2~3초 내 판독할 수 있지만 여러 물질이 혼합돼 있으면 놓칠 수 있어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고 말했다.

3층서 이온 스캔·개장검사

인천 공항세관 마약 단속. 심석용 기자

인천 공항세관 마약 단속. 심석용 기자

 판독실에서 ‘검사’ 판정을 받은 화물들은 3층 ‘마약 검사장’이란 푯말이 붙은 곳으로 이동한다. 개방 검사를 위해선 포장을 다 뜯어내야 한다. 이날 김지수 주무관이 캐릭터가 그려진 이불을 엑스레이 판독기에 다시 넣자 모니터에 주황색 음영과 함께 판독 결과가 나왔다. 판독 요원은 “이상 없음”을 외쳤다. 두 번째는 흰색 가루가 가득 담긴 뭉치였다. 우범 국가에서 왔지만, 자세한 설명이 없어 검사 대상으로 분류된 물품이었다. 김 주무관이 특수용지에 가루를 묻힌 뒤 이온 스캐너에 넣자 분석이 시작됐다. 약 20초 뒤 ‘pass(통과)’ 알림이 떴다. 김 주무관은 “부피가 큰 건 엑스레이에 재투입하는데 식품류는 다 펼쳐 넣어야 하므로 20~30분 걸리기도 한다”며 “마약 키트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검사한 32건 중엔 이상 물품이 나오지 않았지만 김 주무관은 종종 마약 등이 적발된다고 했다. 김 주무관은 “최근 북미권에서 온 전자 제품이 엑스레이 판독에서 마약류 의심 판정을 받아 개방 검사했더니 내부에 숨겨진 메트암페타민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우편 이용 마약 밀반입 성행

국제우편물류센터 세관검사장에서 세관 직원이 우편물을 판독하고 있다. 특송물류센터와 달리 우편물류센터는 X-ray 검사기 옆에 바로 판독요원이 있다. 심석용 기자

국제우편물류센터 세관검사장에서 세관 직원이 우편물을 판독하고 있다. 특송물류센터와 달리 우편물류센터는 X-ray 검사기 옆에 바로 판독요원이 있다. 심석용 기자

 특송 외 우편으로 해외에서 마약류를 반입하려는 시도도 적지 않다. 해외에서 들어온 우편물들은 국제우편물류센터 내 세관 검사장에서 특수·소포와 등기·통상으로 나눠서 검사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제우편을 통한 마약류 반입은 175㎏(2021년), 335㎏(2022년), 212㎏(2023년 1~9월)으로 꾸준히 적발되고 있다. 같은 기간 109㎏(2021년), 166㎏(2022년), 113㎏(2023년 1~9월)였던 특송화물 적발량보다 많은 양이다. 합치면 1t이 넘는 양이다. 국제우편물류센터에서 마약 탐지견을 운영하는 박동민 주무관은 “작은 우편물에 LSD, MDMA 등 소량의 마약류를 반입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적발된다. 탐지견을 피하기 위해 마약류의 향을 없앤 뒤 들여오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네덜란드에서 온 마약 탐지견 딜론(4)이 우편물 내에 마약류가 있는 지 살피고 있다. 딜론을 비롯한 38마리의 마약탐지견이 인천공항 등 전국 공항·항만에 배치돼 활약하고 있다. 사람과 비교해 최대 1만배까지 후각이 발달한 마약탐지견은 해외에서 교묘하게 밀수하려는 마약을 빠르게 찾아내는 데 특화됐다. 눈으로 보기도 어려운 0.1g 수준의 마약을 탐지할 정도라고 한다. 심석용 기자

지난 11일 네덜란드에서 온 마약 탐지견 딜론(4)이 우편물 내에 마약류가 있는 지 살피고 있다. 딜론을 비롯한 38마리의 마약탐지견이 인천공항 등 전국 공항·항만에 배치돼 활약하고 있다. 사람과 비교해 최대 1만배까지 후각이 발달한 마약탐지견은 해외에서 교묘하게 밀수하려는 마약을 빠르게 찾아내는 데 특화됐다. 눈으로 보기도 어려운 0.1g 수준의 마약을 탐지할 정도라고 한다. 심석용 기자

 관세청은 지난 4월 인천공항본부세관 내 국제우편·특송·여행자 통합관리조직을 만들었다. 기존엔 공항세관은 특송화물과 여행자를 관리하고 별도기관인 우편세관이 국제우편을 관리했는데 업무 효율성 등을 위해 이를 합친 것이다. 조종훈 공항세관 주무관은 “조직을 합치면서 우편 적발 건과 특송 적발된 건 간에 정보교류를 거쳐 유사 범행 패턴을 적발하는 게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관세청은 이를 기점으로 마약 밀반입 적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 마약 밀수 사례를 분석해 확보한 데이터를 토대로 파악한 경향성이 추적에 유용하게 활용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공항세관은 검찰과 공동으로 ‘클럽 마약’으로 통하는 케타민 1만7200g(약 34만 명분) 등을 밀수하고, 이를 유통한 마약 조직원 27명을 적발하기도 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마약 은닉 수법은 고도화되고 있지만, 인력과 검사 인프라는 제한적”이라며 “마약 전쟁 지속을 위해선 지속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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