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석유갑부 해머 회장 타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유대계… 볼셰비키 혁명뒤 레닌과 친분/냉전시대 미 소 정상회담의 「막후해결사」
미국 옥시덴틀 석유회사의 아먼드 해머 회장이 11일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92세를 일기로 숨졌다.
해머 회장은 동서냉전 기간중에도 사회주의국가를 넘나들며 사업을 펼치는 수완을 보였으며,소련 지도자들과의 오랜 친분으로 미 소 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추진,민간외교 해결사로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지난 61년 당시 케네디 미 대통령의 밀명을 받고 소련으로 건너가 흐루시초프 서기장과 회담,양국의 관계개선에 기여했다.
또 73년에는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초청으로 모스크바를 방문, 미소 무역재개의 길을 열어 놓았으며,80년에는 아프가니스탄사태 해결을 위해 세계 주요국가 수뇌들과 연쇄회담을 벌이기도 했다.
85년에는 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레이건 대통령간의 수뇌회담을 성사시키는데 막후에서 크게 기여했다.
그는 72년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불법적으로 선거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돼 76년 실형을 선고받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 지난해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사면됐다.
해머 회장은 1898년 뉴욕시에서 평범한 유대계 러시아 이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미 사회당 창당멤버였던 해머는 컬럼비아대 의대 재학중이던 23세때 부친소유 제약회사의 경영을 맡아 생강액을 원료로 하는 의약품이 히트하면서 일약 학생 백만장자가 됐다.
그는 볼셰비키혁명 후인 21년 소련으로 건너가 레닌과 친분을 맺고 미국과 최초의 교역을 성사시켰다.
또 79년에는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등소평)을 만나 2억3천만달러 상당의 세계 최대 노천탄광개발 계약을 체결하는등 주로 사회주의 국가와의 교역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해머 회장은 87년 북한주석 김일성의 초청을 받고 북한을 방문하려 했으나 미 국무부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한국 재계인사들과도 폭넓은 교분을 갖고 있는데 특히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과는 오랫동안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김상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