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박 사장 '미주 한인 원조 '골프장 오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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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2년에 크레스트우드 골프클럽을 인수한 알프레드 박 사장은 골프는 스코어보다는 누구와 치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미주중앙"땅만 보고 다닙니다. 모자 푹 뒤집어 쓰고 호주머니에 손넣고 말이지요."

뉴욕주 중부 유티카에 사는 알프레드 박 사장(70)은 외출이 '겁나는' 사람이다. 그를 알아보고 이런 저런 말을 걸어오는 동네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박 사장이 동네 토박이 보다 더 유명해진 것은 이 지역에서 골프장을 운영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가 골프장 크레스트우드(Crestwood) 컨트리 클럽을 인수한 것은 92년이다. 동네 사람들의 '놀이터' 비슷한 이 곳을 그는 아무런 불평도 듣지 않을 만큼 매끈하게 운영해왔다.

골프장 운영을 시작한지 15년 가까이 됐으니까 미주 한인 가운데 골프장 오너로는 원조 그룹에 속한다.

"돈 벌려고 골프장을 산 것이 아니에요. 돈을 지키려고 골프장을 샀다고 보면 맞을 겁니다. 또 골프를 워낙 즐겨했고요."

그는 92년 당시 약 200만 달러를 들여 뉴욕 주정부가 운영하던 이 골프장을 인수했다.

이 골프장 시세는 현재 많이 쳐주면 250만 달러 정도. 물가 상승률 기회 비용 등을 고려하면 박사장 말대로 확실히 '남는 장사' 축에는 못든다.

"인생 항해는 안전하게 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어요. 단기간에 큰 돈 벌자고 달려들면 인생이 불행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30년 이상을 내다보고 골프장을 인수했다고 말한다.

손자 소년들에게 할아버지가 이만한 일을 했다는 작은 족적이라도 하나 남기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라는 것.

또 길게 보면 투자 가치도 있다는 게 박사장 설명이다. 골프장이란 것이 땅덩어리가 클 수 밖에 없으니 30년 후쯤이면 큰 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른 주는 몰라도 뉴욕주에서 골프장은 농업에 준해 세금을 냅니다. 아마 같은 규모의 다른 사업에 비해 세금이 30% 정도 밖에 안될 거예요."

안전 항해를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박 사장은 공격적인 데가 있다. 무엇보다 두 차례의 이민을 시도한 점이 그렇다.

육사 교수로 지내던 그는 72년 캐나다 이민 보따리를 쌌다. 육사 교수 월급으로는 앞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이어 92년 적지 않은 나이에 또 다시 미국 이민을 결심했다. 신중한 성격의 박사장은 두 차례 이민 결심이 자신에게는 나름대로 모험이었다고 회고한다.

박사장은 그러나 자신의 이민 생활은 크게 순탄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민 후 첫 사업부터가 무난하게 풀렸다. 캐나다 토론토 시내 중심에 선물가게를 냈는데 경쟁이 없다시피해 적잖은 돈을 만질 수 있었다.

또 이 곳에서 돈을 좀 모았을만 했을때 때마침 객실 97개의 중규모 호텔이 매물로 나왔다. 중국 사람이 운영하던 호텔이었는데 선물 가게에서 보다 수입 규모가 훨씬 더 컸다. 잘되던 호텔을 팔 생각도 없었는데 또다른 중국인이 사겠다고 제의해 '제값'을 받고 팔았다.

그렇게 해서 100만달러 이상의 현금을 손에 쥐고 있을때 호텔 손님으로 한번 대판 싸웠다가 친해진 유대인 친구가 현재의 골프장 입찰 정보를 알려줬다.

"땅이라는 것이 사람을 속이지 안잖아요. 골프장 운영해서 먹고 살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수입이 그 정도예요. 하지만 눈이 많은 겨울철에 4개월 가량 골프장 문닫고 노는 것 생각하면 비즈니스로 여러모로 괜찮지요."

그는 인생살이나 골프나 어찌보면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편안히 즐기면 골프처럼 좋은 운동도 많지 않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러나 욕심을 부려 스코어를 내보려 하고 큰 내기를 하면 기분 망치기 십상인 운동이 골프라고 그는 말했다. 생애 그의 최고 스코어는 86타. 그 것도 20여년전 얘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골프에 재능은 없어요. 그러나 그 뿐이지요. 마음맞는 친구와 같이 골프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는 골프는 스코어 몇 개를 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하고 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슬하에 아들과 딸을 뒀는데 사업관 만큼이나 자식교육관도 '이지(easy)' 그 자체다. 나이 40을 넘긴 아들이 미혼인데도 전혀 걱정이 없다.

"그냥 자기 하기에 달려있지요. 아들 녀석이 결혼해서 행복하면 내가 행복하고 결혼하지 않아서 행복하다면 역시 제가 행복합니다. "

박사장은 이민 인생은 특히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길게 보고 설계해야 보람이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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