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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그림 그리다 떠났다…'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 별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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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미술을 주도한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92) 화백이 14일 오전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 2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생전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판정 소식을 전하며 "작업에 전념하며 더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직 그리고 싶은 것들이 남았다"고 밝혔다. 지난 8월에는 신작을 그리는 사진과 함께 "이 나이에도 시행착오를 겪는다. 했던 작업을 물감으로 덮고 다시 그으며 차츰 길을 찾아가고 있다"고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 사진 삼성전자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 사진 삼성전자

한국 추상미술과 단색화 대표 화가로 불린 그는 일제강점기인 1931년에 태어나 1950년대 전위적인 앵포르멜 운동을 이끌었다. 1960년대부터는 연필로 도를 닦듯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묘법'(Ecriture No. 6-67) 시리즈를 제작하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개척했다. 다섯 살 난 둘째 아들이 형의 국어 공책을 펼쳐 놓고 글씨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고 "종이가 구겨지고 제 맘대로 쓸 수 없으니 짜증 내면서 연필로 죽죽 그어버리는 걸 보고, 아, 저거구나, 저 체념의 몸짓을 흉내 내 보고 싶어 만든 작품"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서보 화백 회고전.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박서보 화백 회고전.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그가 생전 "단색화는 서양 미술계에 없었던 '수렴의 미술'"이라고 강조해온 만큼 세계 미술계에서도 그가 개척한 단색화를 도공이 물레를 돌리고 석공이 돌을 자르듯 묵묵히 수행하는, 한국적 정신이 담겼다고 평가했다. 그의 그림 중 최고가인 1976년 작 ‘묘법 No. 37-75-76′은 지난 2018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200만달러(약 25억원)에 팔렸다.

지난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여는 등 그는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지난해엔 베네치아비엔날레 전시를 준비하다가 과로로 쓰러진 바 있다.

마침내 수행을 마치고 그는 이날 영면에 들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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