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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포집·재활용 기술, 91세 엔지니어의 끝없는 도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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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호 14면

신동식, 수출 한국의 길을 열다 ⑦ 친환경 미래산업 육성 꿈 〈끝〉

1971년 신동식 회장이 공직에서 물러나자 여러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함께 일하자”는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33㎡(10평) 사무실에서 고투하던 민간 조선기술 전문업체인 한국해사기술(KOMAC)을 인수했다. 그로부터 50여년간 컨테이너선·유조선 같은 기본 선박뿐 아니라 쇄빙선, 심해 탐사선, 핵폐기물 운반선 등 특수선을 비롯한 2000여종의 선박을 설계했다. 대우 옥포조선소, 삼성 거제조선소를 위시해 국내외 35개국에 첨단 설비와 생산 시스템을 갖춘 초대형 조선소 25곳의 건설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운영에 조언했다.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는 KOMAC을 ‘명문 장수기업’으로 선정했다. 현재는 가스운반선 처럼 첨단기술을 필요로 하는 고부가가치 선박과 암모니아·메탄올·수소·원자력 등 친환경 미래 에너지 동력 선박 관련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요즘 조선이 사양산업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현재 바다에 떠다니는 5만t 이상 선박의 85%가 ‘메이드 인 코리아’입니다. 설비와 기술, 인력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요. 가격이 1000억원을 넘나드는 30만t 짜리 배를 만드는데 중국은 24~30개월, 일본은 12~18개월이 걸리지만 우리나라는 6~8개월이면 완성해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은 3000억원, 원유 시추에 쓰는 드릴쉽이나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 같은 특수선은 1조원을 넘나듭니다. 조선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춘 제조업은 반드시 보호하고 육성해야 합니다. 반도체·조선·철강·자동차·석유화학 제품을 수출해서 먹고사는 나라가 제조업을 포기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청정연료 메탄올 대량 생산 방안도 구상

올해 91세인 신동식 카본코리아 회장은 요즘도 아침마다 사무실에 출근해 첨단기술 관련 논문과 보고서를 꼼꼼히 연구하는 현역 엔지니어다. [사진 이은봉]

올해 91세인 신동식 카본코리아 회장은 요즘도 아침마다 사무실에 출근해 첨단기술 관련 논문과 보고서를 꼼꼼히 연구하는 현역 엔지니어다. [사진 이은봉]

2021년 구순을 앞둔 현역 엔지니어는 카본코리아를 설립했다. 세계 최고의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을 갖춘 노르웨이 카본(Kabon)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신 회장은 본격적인 친환경 산업 진출을 위해 한국법인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신 회장의 목표는 단순히 탄소를 포집해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는 수준이 아니다.

“30만t급 선박을 기름으로 움직이면 중형차 2000대 분량의 이산화탄소가 나옵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큰 화가 닥쳐요. 20년 전부터 처리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국내에서는 관심이 없어 노르웨이 사람들과 회사를 만들었어요. 우리나라에서 1년에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6억8000만t에 달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2030년까지 40%를 줄이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어요. 막대한 돈이 들고, 포집해도 국내 해양 지반에는 묻을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발상을 전환하면 어떨까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운반하고, 재활용하는 어마어마한 시장이 열릴 겁니다. 당장은 탄소가 골치덩이로 보이겠지만 제대로 활용하면 자원이 될 수 있어요.”

신 회장이 구상하는 이산화탄소 활용 방안은 이렇다. 현재 기술로 유전에서 원유의 20%밖에 뽑아내지 못한다. 나머지는 사암에 스며든 셰일가스다. 여기에 이산화탄소 1t을 넣으면 5배럴의 원유를 추가로 뽑아낼 수 있다. 100달러를 들이면 500달러가 나오는 것이다. 카본은 워런 버핏이 투자한 미국 석유업체 옥시덴털을 비롯해 지멘스·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과 함께 텍사스에서 2027년 가동을 목표로 이산화탄소 재활용 공정을 만들고 있다. 앞으로 20년간 인근 석탄발전소 5곳에서 연 4780만t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유전에 파이프라인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2015년 방한한 나렌드라 모디(사진 왼쪽) 인도 총리와 해양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신동식 회장(오른쪽). [사진 신동식]

2015년 방한한 나렌드라 모디(사진 왼쪽) 인도 총리와 해양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신동식 회장(오른쪽). [사진 신동식]

“현재 t당 100달러 수준인 이산화탄소 공급가격은 카본의 기술을 활용하면 t당 30달러 수준으로 낮아질 겁니다. 이것만으로도 연 15억달러씩 총 300억달러의 수입이 생기지요. 여기에 미국 정부가 주기로 한 t당 85달러의 보조금을 고려하면 총수입은 1000억달러를 넘어갑니다. 포집시설과 파이프라인 건설비 70억달러는 문제도 아니지요. 이런 시장이 앞으로 더 커진다고 상상해보세요. 우리나라의 탄소 감축 목표인 연 2억8000만t에 대한 포집시설을 갖추는데 550억달러 정도 들 겁니다. 10만t급 전용 운반선이 매년 10번씩 왕복한다고 보면 280척이 필요합니다. 건조비용을 280억달러로 잡으면 800억달러 가까운 투자가 필요하지요. 반면 2억8000만t을 포집비용 t당 40달러, 운송비용 20달러에 공급하면 20년간 3360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어요. 문제는 민간 기업이 이런 규모의 장기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신 회장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조선기술을 활용해 이산화탄소 전용 운반선 시장을 주도하고,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산유국에 판매하자는 것이다. 선박용 청정연료로 떠오르고 있는 메탄올을 국내에서 대량 생산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이산화탄소에 수소를 결합하면 메탄올을 만들 수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까지 국제 해운 분야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미 싱가포르에서 메탄올을 선박용 연료로 공급할 준비를 시작했다. HD한국조선해양 등 우리 조선업계는 전 세계에서 발주된 메탄올 추진선 87척 가운데 절반을 수주했다.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고 있는 북극 항로를 통해 유럽으로 가면 16일이 단축됩니다. 부산 앞바다에 700만평의 부유 도시를 만들어 가덕도 공항, 항구, 레저시설과 함께 메탄올 공급소를 세우면 우리도 세계적인 물류 허브를 갖춘 에너지 수출국이 될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가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저렴하게 포집하고, 이를 수소와 결합해 부산 앞바다에서 전세계 선박에 공급하는 거예요. 지금의 조선업과는 비교도 안되는 큰 산업이 될 겁니다. 이산화탄소 포집으로 지구 온난화에 기여는 당연하고요.”

“탈탄소화·전산화·다각화 3D가 미래 주도”

한국해사 기술에서 제안한 이산화탄소 운반선 조감도. [사진 신동식]

한국해사 기술에서 제안한 이산화탄소 운반선 조감도. [사진 신동식]

과거 우리나라는 기술, 자본, 시장을 모두 외국에 의지하며 남이 이미 개발한 제품을 더 많이, 더 빨리, 더 잘 만들면서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외풍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 더는 이런 방식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신산업 개발제안 품목들은 세계 경제·기술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환경에서 친환경 CCUS 분야는 우리의 기술과 능력으로 세계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남이 하는 것만 따라 하고 과감히 새로운 도전에 나서지 못하는 태도로는 국가의 미래는 없습니다.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큰 CCUS는 우리가 패스트 팔로워를 벗어나 퍼스트 무버로 자리매김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지요. 일각에서는 탄소 포집과 활용 방안을 몽상이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60년 전 조선산업을 시작할 때도 국내외에서 미쳤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어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이산화탄소 관련 산업을 포스코가 하겠습니까, 현대차가 하겠습니까. 대통령을 비롯한 리더가 책임지고 이끌고 가야 할 겁니다.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요.”

91세의 신 회장은 요즘도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에 자리한 카본코리아 사무실에서 환경 관련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수많은 해외 논문에 둘러싸여 지낸다. 젊은 연구자들과 교류하고, 한국의 발전을 본받으려는 인도, 아프리카 등의 개발도상국 지도자를 위한 자문으로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의 신조는 ‘중단하는 자는 성공하지 못하고, 성공하는 자는 중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황무지 같던 나라에서 애국심과 불굴의 의지만으로 개척자의 길을 걸은 신 회장의 삶이 겹쳐 보이는듯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이 늘 그를 바라보고 있다.

“국민이 굶지 않는 나라, 자유롭게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박 대통령과 나의 소원이었는데 이제 굶는 사람도 없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니 내 소임은 다 한 것 같아요.”

히라야마 마사토시. 1932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신 회장은 소학교(현 초등학교) 시절까지 이 이름으로 살았다. 10대 시절에는 전쟁을 겪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남은 것은 폐허가 된 조국뿐이었다. 스웨덴으로, 영국으로, 또 미국으로 떠돌며 20대를 보냈다. 개인적으로는 영국 로이드와 미국 선급협회(ABS)의 한국인 첫 검사관으로 명성을 쌓았지만, 가슴 한구석이 빈 듯한 공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조국 근대화에 힘을 보태달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에 선뜻 서울행 여객기에 몸을 싣게 된 이유다. 서른 세살의 초대 경제수석으로 신 회장은 우리나라 조선과 중화학공업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 보릿고개를 넘어 한강의 기적을 담고 있는 그의 생애는 우리의 근대사 그 자체다.

“앞으로의 세상은 3D가 주도할 겁니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하다는 3D가 아니라 탈탄소화(Decarbonization), 전산화(Digitalization), 다각화(Diversification)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미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저력이 있잖아요. 디지털에 익숙하고, 융합·복합에 거부감이 없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이런 유산을 바탕으로 미래를 잘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정리: 김창우 기자

신동식. 1932년생.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졸업. 박정희 정부에서 대통령 정무비서관, 초대 경제수석 비서관, 대통령 직속 해사행정특별심의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은탑산업훈장, 대통령 표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해사기술 회장, 카본코리아 회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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