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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엄효식이 소리내다

아이언돔 허점 뚫은 하마스 기습…한국도 결코 남의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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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효식 전 합참 공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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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무장세력인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이스라엘 방어망이 뚫리며 큰 피해를 입었다. 이은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보복 공격으로 피해가 커지고 있다. 그래픽=김영희 디자이너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무장세력인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이스라엘 방어망이 뚫리며 큰 피해를 입었다. 이은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보복 공격으로 피해가 커지고 있다. 그래픽=김영희 디자이너

오랜 준비와 군사력을 갖춘 부대가 작심하고 시행하는 기습은 정말 격퇴하기 어렵다. 이번 하마스의 작전명 ‘알아크사 폭풍’(AL-Aqsa Storm)처럼 기습 공격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거나 부족했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일각에서는 최강의 군사력과 정보수집 능력을 지닌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기습을 몰랐을 리 없다고 하면서, 의도를 가지고 기습을 허용했다는 음모론적 이야기도 나온다.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반전을 위해 하마스를 끌어들여 상황 악화를 유도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닌듯하다. 정치 지도자가 국민을 희생하면서 소속 정파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건 최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기습을 왜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고 사전에 격퇴하지 못했을까. 이러한 질문과 궁금증은 곧 이스라엘 군대가 무기력하고 무능했다는 단순한 결론과 함께 모사드를 비롯한 정보기관과 군(軍)이 유대교의 명절을 맞아서 안이했다는 비난과 질책으로 연결이 된다. 그런데 이런 식의 단정적 평가가 합리적인지 고민된다. 기습이라는 단어의 속성은 정상적인 방어와 대응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10월 7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무장 세력 하마스의 로켓이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AP=연합뉴스

10월 7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무장 세력 하마스의 로켓이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AP=연합뉴스

기습은 시도하는 쪽이 100% 유리하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충분한 능력(의지)이 있어야 하고, 철저한 작전 보안, 상대를 안심시킬 수 있는 기만이 통해야 한다. 이번 하마스의 공격은 세 가지를 다 충족했다. 그렇다면 기습을 허용한 이스라엘 군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전쟁 상황에 처한 군대의 입장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기존의 경험과 관례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가자 지구 주변의 군사적 대응 시스템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장벽과 철제 펜스로 봉쇄했다. 그리고 감시카메라를 이용한 무인 관측탑 등 과학화 장비로 하마스를 감시 또는 원격사격장치(RCWS)로 적대 세력을 제압, 필요하면 인근의 전투부대를 신속히 투입하는 방식이다. 원격으로 조종하는 카메라와 레이더 장치, 각종 센서와 원격사격 기관총 등 첨단 장비를 갖춰 ‘스마트 펜스’로 불린 ‘아이언 월(iron wall)’은 약 11억 달러(약 1조5000억원)가 투입된 야심작이었지만 이번 기습 상황에서 기대했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또한 하마스의 핵심 위협이라고 분석했던 로켓 공격은 ‘아이언 돔’이라고 하는 세계 최고의 요격 능력으로 충분히 대비 가능할 것으로 이스라엘 군대가 믿고 의존했지만, 수천 발의 로켓 발사는 미처 상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군의 허점을 파고든 하마스의 기습 

이스라엘 군대의 군사적 대비는 완전히 노출된 것이었기 때문에,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계획에 맞춰 군사적 움직임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허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파고든 것이다.
전투와 기습에 대한 대비는 언제나 적의 시선과 입장에서 추측과 판단을 해야 한다. 따라서 지난번 기습이 성공했다고 이번에도 같은 방식을 선택하면 실패할 확률이 매우 커진다.

군대는 기본적으로 전쟁과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적군의 의도와 전술을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아군이 이미 수립한 과거의 계획이나 경험, 관행적 사고를 뛰어넘는 것이다. 적군의 기습을 대비함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우리가 스스로 만든 계획에 대하여 스스로 익숙해지고 만족해하는 것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상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외신종합]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상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외신종합]

하마스는 이스라엘 군의 상상과 경험을 뛰어넘는 기습 공격을 감행했고, 상당 부분 군사적으로 성공했다. 견고한 장벽은 폭파와 건설장비로 무력화시켰고, 동력 행글라이더 등으로 공중 이동을 했으며, 무인 감시장비와 무인 사격체계들은 드론으로 먼저 파괴했다. 과거 아이언돔의 먹이가 되었던 소수의 로켓탄은 이스라엘 지역으로 수천발이 발사되어 아이언돔을 포화 상태에 이르게 만들었다. 민간인들을 납치하고 처참한 모습을 촬영하여 SNS에 공개함으로써 이스라엘 국민의 전의를 꺾으려고 했다. 모든 것이 압축된 하이브리드전이었다.

어떤 무기도 완벽한 요격은 어려워 

아이언돔은 과연 실패한 요격체계였을까. 수천발의 로켓탄을 전부 요격하지 못했다고 해서 아이언돔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구상 어떤 무기체계도 물샐틈없는 요격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언돔이 없었다면 하마스의 수천발 로켓이 얼마나 많은 인명피해를 가져왔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아이언돔이 하마스 로켓의 탄도를 실시간 분석하면서 인구밀집 지역으로 향하는 것만 요격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 이스라엘이 요격 성공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은 상태라서 단언하긴 어렵다.

군대를 가장 치욕스럽게 하는 것은 기습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습의 속성상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면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최단 시간 내에 대열을 정비해 강력한 대응을 하는 것이다. 한 번의 기습 성공으로 전세를 완전히 장악하기 어렵고, 전장의 주도권을 지켜나갈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그런 측면에서 하마스의 지속성은 제한되는 것 같다. 이스라엘은 즉각적인 예비군 동원과 함께 강력한 응징 작전을 진행하고 있다. 이스라엘군 총참모장이 결연한 표정으로 일반 전투장병들과 같은 소총과 방탄복 방탄헬멧 등을 착용하고 소총을 들고 있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대한민국 군대는 어떤 생각을 해야할까. 하마스의 기습공격과 이스라엘 군대의 행동을 분석하고 해설자료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북한의 기습도발에 대비하여 실질적 교훈을 얻고 보완해야 할 과제를 도출해야 한다.

강신철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10일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하마스가 기습작전을 통해 로켓포 수천 발과 고속상륙정 등을 활용한 육·해·공 침투로 교전을 벌였다”며 “하마스의 기습은 성공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특히 강 본부장은 “시간과 수단, 방법 측면에서 적이 활용 가능한 비대칭적 공격 형태가 식별돼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으며, 아이언돔과 더불어 가자지구 일대 과학화경계시스템이 무력화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북한이 현재 서울과 수도권 공격을 목적으로 배치한 170㎜ 자주포, 240㎜ 방사포 340여문을 최대한 가동해 시간당 1만6000여 발을 쏟아붓는다면 2026년 ‘한국형 아이언돔’ 장사정포 요격 체계(LAMD)가 전력화되더라도 상당한 피해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제서야 북한의 장사정포 요격체계 사업을 막 시작하는 단계이다. 기술적인 여러 문제를 직면하게 되면 목표 기간 내 완성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는 북한의 장사정포나 방사포 앞에 무방비한 상태로 노출된 처지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을 동시다발로 다 진행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북한의 기습 도발, 고정 관념으로 대처 말아야  

첫째, 대한민국 국군의 최고 지휘관과 참모장교들이 북한군의 기발하고도 예측하기 어려운 도발 형태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에 대비한 실질적이고 집요한 워게임을 해야 한다. 그동안 구축했던 다양한 작전적 대비와 첨단의 무기 체계에 안주하여, 과거에 별일 없었으니까 괜찮을 것이라는 ‘정신적 안심’을 멀리해야 한다.

둘째,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 병력 부족 시대의 구세주처럼 운용되는 최전방 과학화 경계 시스템들도 다시 살펴야 한다. 이미 우리는 노크 귀순, 숙박귀순 등 여러 번 굴욕을 당하지 않았는가. 상황실의 모니터 화면을 24시간 지켜보는 것에 만족해선 안 될 것이다. 감시와 타격이 유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체제를 만들고 부단히 숙달해야만 한다. 하마스가 하이브리드 식 공격으로 기습에 성공했듯, 방어자인 한국군도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셋째, 드론작전 사령부가 출범했지만 아직은 작전을 펼칠 수준인지 증명 받지 못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에서 전가를 올리며 현대전의 상징이 되고 있는 드론에 대해 실전성을 대폭 높여야 한다. 적의 드론을 “조악하다”거나 “검증되지 않았다”며 평가절하 할 것이 아니라 드론을 활용할 수 있는 적의 전술을 가정해야 한다. 북한이 기상 천외한 방식으로 공격을 해 온 경험을 다시 꺼내 보길 바란다.
이미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가자지구 전역에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발생했다. 값싸고 저렴한 무기체계 특히 상업용 장비들이 전장을 누비며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넷째, 9․19 남북 군사합의 가운데, 아군의 정찰장비 운용을 제약하는 부분은 최대한 신속하게 변경해야 한다. 적이 작심하고 기습공격을 해 오는 상황을 사전에 억제하지 못한다면 정보와 감시측면에서 실수와 무능력을 보여선 안 된다. 수 정찰위성과 고성능의 무인 정찰기가 있다고 해서 북한군 지도부의 마음속까지 다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습을 당하는 군대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습을 당했더라도 가장 이른 시일 안에 전열을 정비하고 강력한 대응과 응징이 이뤄져야 한다. 기습의 무력화는 정보전에서 시작한다. 이번 하마스 공격이 우리에게 안겨준 군사력의 허허실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정예 선진 강군’의 핵심이다.

엄효식 전 합참 공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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