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석천의 컷 cut

제발 아이들을 죽이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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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영화 ‘판의 미로’는 1940년대 스페인 내전을 그린 잔혹 판타지다. 파시스트 군부와 시민군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한복판에 어린 소녀 오필리아가 만삭의 엄마와 함께 도착한다. 새 아버지 비달 대위가 있는 숲속 기지로 거처를 옮기면서다. 비달 대위는 인정머리 없고 권위주의적인 냉혈한이다. 그가 오필리아를 대놓고 겁박하지만 엄마는 그 사실을 알고도 침묵한다.(※다량의 스포 있음.)

오필리아는 어느 날 요정에게 이끌려 지하 유적에 들어갔다가 자연의 정령인 판을 만난다. 그는 “당신은 지하세계 공주의 환생”이라며 세 가지 임무를 완수하라고 한다. 오필리아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괴물의 방으로 들어간다. 방의 벽에는 아이들이 괴물에게 산 채로 잡아먹히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한쪽엔 빛바랜 작은 신발들이 무덤을 이루고 있다. 전쟁에서 아이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의 은유다.

컷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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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엄마는 정신을 차리라고만 한다.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야. 세상은 동화 속 요정 이야기와는 달라. 잔인한 곳이야.” 하지만 아이는 알고 있다. 현실이 충분히 잔인하다는 것을. 아이에게 요정이 나타나고, 판이 등장한 것은 그만큼 현실이 가혹하고 끔찍하기 때문이다. 더 무서운 건 현실 너머의 환상마저 공포에 잠식돼 있다는 사실이다. 상상은 현실에 볼모 잡힐 수밖에 없는 것일까.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아기들까지 참혹하게 살해했다는 뉴스는 인간에 대한 마지막 믿음마저 뒤흔들어 놓는다. 아기 시신만 40구에 이르고 일부는 참수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다. 가장 무력한 만큼 가장 소중히 지켜야 할 존재다. 이스라엘에 대한 원한이 아무리 깊다 해도 대체 왜 이런 만행까지 저지르는 것인가.

전쟁터의 어른들에게 촉구한다. 제발 아이들을 죽이지 마라. 그것은 온전한 하나의 우주를 꺼뜨리는 짓이다. 그것은 결코 인간이 해선 안 되는 짓이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