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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원전쟁인데…한국은 광물사업 26개 손절, 3개 더 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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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국 내몽골 지역의 희토류 광산.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내몽골 지역의 희토류 광산. 로이터=연합뉴스

안정적 공급망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세계 각국이 아시아·아프리카 등을 넘나들며 자원 확보 전쟁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민간 기업과 공공 부문이 엇박자를 내면서 외국과의 경쟁에 뒤처져 있다.

11일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이 광해광업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종료되거나 매각한 자원 개발 사업은 26개에 달했다. 이렇게 회수한 금액은 6900억원 남짓이다. 투자액 대비 1200억원가량 손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정리한 사업 리스트엔 첨단산업과 직결된 희토류(중국 포두영신), 니켈(호주 화이트클리프), 리튬(칠레 엔엑스우노) 등도 포함됐다.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은 중국 등 9개국, 14개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멕시코 볼레오, 호주 나라브리·와이옹 등 3개 사업은 매각 예정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핵심광물 광산 등에 대한 신규 투자 계획은 사실상 전무하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하지만 빠른 매각이 능사는 아니다. 골칫덩이 취급을 받던 사업 실적이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되기도 한다. 2020년 수익이 4억8000만원에 그쳤던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사업(니켈)은 지난해 이익이 78억1000만원으로 늘었다. 동을 생산하는 파나마의 꼬브레파나마 사업도 아직 누적 손실은 크지만, 2019년 '0'이었던 이익이 지난해 602억원으로 커졌다.

자원개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적폐'라는 그림자다. 과거 이명박(MB) 정부의 정책 실패 이후 부실 사업으로 몰린 여파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2021년 제정된 광해광업공단법이 공단의 자원개발 사업 매각만 열어주고, 신규 직접 투자는 막아버린 게 대표적이다. 높은 부채 비율 등으로 자원·에너지 공기업 경영이 어려운 것도 자원개발과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종배 의원은 "해외 자원개발 사업의 무분별한 철수는 세계 패권국의 자원 무기화 움직임과 역행하는 것이다. 자원개발 투자는 미래 먹거리는 물론 대한민국 산업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라 말했다.

최근엔 그나마 정부 대신 기업들이 자체적인 공급망 확보에 뛰어들고 있다. 2018년 아르헨티나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를 인수하고, 현지에 리튬 생산 공장을 추진하는 포스코홀딩스가 대표적이다. 윤석열 정부는 공공 중심이던 MB 정부와 달리 자원개발 무게추를 민간 부문에 두고 있다. 특별융자 지원 비율 상향(최대 30%→50%), 자원개발 기업 투자 세액공제 등을 추진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지만 '리스크'를 온전히 떠안은 기업은 여전히 불안하다.

포스코홀딩스가 보유한 아르헨티나 염호. 사진 포스코

포스코홀딩스가 보유한 아르헨티나 염호. 사진 포스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자원개발은 10개 투자해서 한두개 터지면 성공적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리스크가 워낙 크다. 하지만 과거 부실 투자 문제 때문에 적폐로 취급됐고, 정부 지원이나 혜택이 많이 줄었다"면서 "정부의 세제·융자 지원 등이 많이 늘어나야 기업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자원개발 정책 색깔도 많이 바뀌는 편이라 기업으로선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기업 혼자서 수많은 나라의 광물을 개발하려고 하면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이를 국가 차원서 정리하고 기업에 공유해주는 게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국과 비슷하게 원자재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은 적극적인 해외 자원 개발에 나서 공급망 자립에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자원개발 지원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가 앞장서는 식이다. ODA(공적개발원조)로 해외 광산 개발을 원조하거나 민간 기업의 광산 채굴권 확보도 지원한다. 그 덕분에 일본의 대(對) 중국 희토류 의존도는 2008년 90.6%에서 2020년 57.5%로 크게 줄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자원 부국인 중국도 2013~2018년 해외 광산 투자·인수합병(M&A)에 862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 추가 자원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각국의 광물 쟁탈전이 치열한 만큼 전문가들은 정부의 신규 투자 제한을 풀고 민간 기업에 대한 지원을 전방위로 늘려야 자원 자립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핵심광물의 국내 비축을 늘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효율적인 자원개발로 중장기적인 자립 비율을 높일 수밖에 없다"면서 "리스크가 큰 자원 탐사부터 개발 초기까진 공공 부문이 주로 맡고, 개발·생산 등은 민간 기업 중심으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김경훈 무역협회 공급망분석팀장도 "정부가 해외 광물자원 개발에서 많이 위축돼 있는데, 탐사 등 리스크가 큰 부분 중심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0일 열린 산업부 국정감사에서 "해외 자원 개발에 대한 고민이 많다. 관련 기관인 광해광업공단·석유공사 등도 자본잠식과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다양한 해결 방법을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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