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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 96세에 떠난 ‘사랑의 시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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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김남조 시인

김남조 시인

“태어나서 좋았다고, 살게 돼서 좋았다고, 오래 살아서 좋았다고 생각합니다.”(2016년 영인문학관 전시 ‘시와 더불어 70년’ 인사말)

김남조 시인이 10일 낮 12시59분 세상을 떴다. 96세.

6년 전의 이 인사말에서 시인은 “좋은 시대, 좋은 나라에 태어났고 좋은 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얼마나 영광이고 얼마나 과분한지 다 표현할 수가 없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 때를 ‘좋은 시대’ ‘좋은 나라’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났고, 일본 규슈여고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 학교에 다녔는데, 1500명 중 하나뿐인 한국 아이라고 일본 아이들이 구경하러 와서 둘러쌌다. 가슴 속에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불덩이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제일 위대해 보이는 사람은 신문에 날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1947년 서울대 국어교육과에 들어가면서 문학소녀의 꿈을 이루나 했는데 6·25 전쟁과 맞닥뜨려야 했다.

“돌멩이처럼 어느 산야에고 굴러/ 그래도 죽지만 않는/ 그러한 목숨이 갖고 싶었습니다.”(시 ‘목숨’)

1953년 피란지 부산에서 첫 시집 『목숨』을 낸 때가 26세였다. 이어 『사랑 초서』 『바람 세례』 『사랑하리, 사랑하라』 『심장이 아프다』, 그리고 『사람아, 사람아』(2020)까지 19권의 시집에서 고인이 자신에게 내린 지상명령은 사랑이었다. 이를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 고통 속 치유, 영혼과 사랑의 미학”(유성호 문학평론가)을 선사했다. 스스로는 “누군가는 원고지를 하얀 사막이라 하더라. 나는 늘 백지 앞에서 기죽고 초라하고 캄캄했다. 문학은 모든 것의 뒤에 있으며, 예술가는 저마다 홀로 있는 이들”이라고 돌아봤다.

막막한 가운데 써내려간 1000편 넘는 시에서 많은 이들이 위로받았다. 그의 시 ‘편지’의 첫 구절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가 2019학년도 수능시험 필적 확인 문구로 쓰이면서 당시 응시한 59만여 수험생의 마음을 보듬었다. 그의 시 ‘좋은 것’의 한 구절 “읽다 접어둔 책과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까지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는 광화문 교보생명 사옥에 내걸려 바삐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의 시에 곡을 붙인 송창식의 노래 ‘그대 있음에’로도 널리 사랑받았다.

고인은 1955년 숙명여대에서 처음 강단에 섰고, 1993년 명예교수로 정년퇴임했다. 한국시인협회장, 한국여성문학인 회장, 한국방송공사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93년 국민훈장 모란장, 1998년 은관문화훈장, 2007년 만해대상 등을 받았다.

그의 남편은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상으로도 잘 알려진 조각가 김세중(1928~86)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다. 미술관 개관을 준비하면서 과로로 세상을 떴다. 시인은 남편과 함께 살던 서울 효창원로 자택을 사재 5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해 2015년 ‘김세중 미술관-예술의 기쁨’을 개관하기도 했다.

장례는 시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2일이다. 유족은 아들 김녕(김세중미술관장)ㆍ석(디자이너)ㆍ범(화가), 딸 정아(가천대 명예교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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