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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권의 미래를 묻다

지구인이 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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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박권 고등과학원 교수

박권 고등과학원 교수

한가위, 가득 찼던 보름달이 벌써 그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달은 원래 지구의 일부였다. 오래전 ‘테이아’(Theia)라고 불리는 화성 정도 크기의 천체가 지구와 충돌한 후 그 일부가 떨어져 나가 만들어진 게 달이다. 놀랍게도 그렇게 만들어진 달은 지금 지구를 보호하고 있다. 사실, 지구에 인류와 같은 고등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이 기적에 달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구와 달, 서로 강한 중력 작용
지구 자전축 안정시키는 역할
덕분에 극단의 여름·겨울 피해
우주엔 아직 모르는 비밀 가득

지구 생명체, 수많은 조건 맞아야

한국 첫 달궤도 탐사선 다누리가 촬영한 달 지표와 지구 모습.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 첫 달궤도 탐사선 다누리가 촬영한 달 지표와 지구 모습.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달뿐만 아니라 수많은 조건들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야 한다. 우선, 행성은 별, 즉 항성에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어도 안 된다. 우리가 아는 한, 액체 상태의 물은 생명의 필수 조건 중의 하나다. 만약 행성이 별에 너무 가깝다면 물은 모두 수증기로 증발해 버릴 것이고, 반대로 너무 멀다면 모두 얼음으로 얼어 버릴 것이다. 별의 밝기에 따라 행성에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을 이른바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골디락스는 영국 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에서 따 왔다. 우리 태양계에서 골디락스 존에 속하는 행성은 지구와 화성뿐이다. 화성은 지구보다 중력이 약해 원래 있었던 물이 서서히 우주로 빠져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우리 태양계에는 행성들이 매우 적절하게 분포되어 있다. 수성·금성·지구·화성과 같은 내행성들은 모두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다. 반면, 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과 같은 외행성들은 모두 기체로 이루어져 있고 크기가 매우 크다. 이 상황에서 외행성들은 태양계 안쪽으로 파고드는 천체를 빨아들이는 일종의 ‘중력 진공청소기’ 역할을 한다. 만약 외행성들이 없었다면 내행성들은 소행성과의 충돌에 훨씬 더 빈번하게 노출되었을 것이다.

조금 더 시야를 넓게 보면, 우리 태양계는 은하계의 중심에서 매우 적절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만약 우리 태양계가 은하계의 중심에 너무 가까웠다면 블랙홀로부터 나오는 X선이나 감마선에 강하게 노출되었을 것이고, 너무 멀었다면 행성의 핵을 형성하는 철과 같은 무거운 원소의 밀도가 아주 낮았을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지구와 생명체를 보호하는 가장 가까운 친구는 바로 달이다.

재미있게도 달이 지구를 보호할 수 있는 비밀은 우리가 오로지 달의 한쪽 면만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숨어 있다. 달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는 똑같다. 당연한 말 같지만, 지구의 공전주기는 365일이고 자전주기는 1일이다. 반면, 달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는 27.3일로 정확히 똑같다. 이것은 달이 지구 주위를 돌 때 항상 같은 면이 지구 쪽으로 향하도록 자전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우리는 오로지 달의 한쪽 면만 볼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럴까.

유달리 큰 지구 위성, 달

태양계 속 다른 행성의 위성들에 비해 달은 모 행성, 즉 지구 대비 크기가 가장 크다. 다시 말해, 지구와 달은 서로 강한 중력을 작용한다. 약간 과장하면 지구와 달은 서로 찌그러뜨릴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조석 현상이다. 흔히 조석은 달의 중력 때문에 지구 해수면이 주기적으로 오르고 내리는 현상을 뜻하지만, 반대로 지구도 달을 어느 정도 찌그러뜨린다. 거칠게 말해, 지구와 달은 둘 다 계란과 같이 약간 찌그러진 상태에서 길쭉한 방향으로 서로 마주 보게 된다. 달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똑같다는 것은 지구와 달이 항상 이 길쭉한 방향으로 서로 마주 보도록 달의 공전과 자전이 정확히 고정된다는 뜻이다. 전문적으로, 이러한 현상을 ‘조석 고정’(tidal locking)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조석 고정은 어떻게 지구를 보호하는 것일까.

앞서 말했듯, 조석 고정이 일어나는 이유는 달의 중력이 충분히 강하기 때문이다. 지구는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다. 이렇게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자전축의 기울어짐은 계절의 적절한 변화를 만들고 생명을 탄생시킨다. 강한 중력이 작용하는 달의 존재는 이러한 지구의 자전축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만약 달이 없었다면 지구의 자전축은 거의 90도까지 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자전축이 90도 가까이 기운다는 것은 계절이 극단적인 여름과 겨울 사이를 오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여름에는 계속 낮, 겨울에는 계속 밤이 펼쳐지게 된다. 참고로, 천왕성의 자전축은 실제로 97.7 도 기울어져 있다. 우리는 달에 감사해야 한다.

우주는 미세조정되어 있다

사실 우리가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우주 자체인지 모른다. 예를 들어, 물리법칙은 광속, 전자의 전하량, 플랑크 상수, 중력 상수, 볼츠만 상수와 같은 근본적인 상수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상수들은 그 값이 약간만 달랐더라도 현재 우리가 아는 우주가 존재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이 중에서 특히 우주 빈 공간이 지니는 에너지 밀도, 이른바 우주 상수(cosmological constant)의 값은 매우 정밀하게 미세조정되어 있다. 우주 상수가 지금보다 더 컸다면 우주는 물질이 거의 없는 텅 빈 공간으로 남았을 것이고, 반대로 아예 없었다면 우주는 자체 중력에 의해 일찌감치 붕괴하였을 것이다. 참고로, 우주 빈 공간이 지니는 에너지의 다른 이름은 암흑 에너지다. 이러한 미세조정은 도대체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모른다. 우주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비밀들로 가득 차 있다.

박권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