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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체스에 바둑으로 응수하는 중국 전술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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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치인들은 모 아니면 도 식의 단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았다. 오랜 세월 공을 들여 작전을 펴나가는 게 그들의 방식이었다. 중국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섬세하게 에둘러서 상대적인 이익을 끈기 있게 쌓아나가는 방식이다. 셔터스톡

중국 정치인들은 모 아니면 도 식의 단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았다. 오랜 세월 공을 들여 작전을 펴나가는 게 그들의 방식이었다. 중국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섬세하게 에둘러서 상대적인 이익을 끈기 있게 쌓아나가는 방식이다. 셔터스톡

지난주엔 ‘동아시아에서 패권적 질서의 재확립’이란 중국의 전략 목표에 관해 얘기했다. 그렇다면 이 전략들을 수행하기 위한 전술 또한 존재할 것이다. 전술적 차원은 어떤 행동 패턴으로 볼 수 있다. 국무원의 시행방침이나 중앙군사위가 수립한 작전 교리 등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행동 지침이나 양식이 곧 전술로 이해될 수 있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애런 프리드버그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손자(孫子)의 격언이 중국의 전술을 관통하는 핵심으로 파악했다. 이런 철학에 따라 그가 정리한 중국의 행동 패턴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립을 피하기 위해 미국과 겉으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구상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잠재우려고 한다.
둘째, 한편으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미국을 배제하는 새로운 지역 기구를 결성해 중국의 영향력을 강화한다.
셋째, 적어도 당분간은 대륙 후방의 안정을 추구한다.
넷째, 대륙을 안정화함으로써 해상에서 발생하는 기회와 위협에 더욱 집중토록 한다.

요컨대 중국의 대미 전술은 미국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관리하면서 장기적 경쟁을 통해 최종적으로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술을 추구하는 것이다.

북·중·러 결속이 강화되면서 현재는 양상이 다소 바뀌었지만, 근래까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미국이 주도한 유엔의 대북 제재에 중국이 동의해 온 것은 미국과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나 아시아교류및신뢰구축회의(CICA), 아세안(ASEAN)+3 같은 지역 기구는 역내에서 미국 배제를 위한 포석이다. 중국 입장에선 대륙과 해상에 걸쳐 사면초가에 빠지는 상황은 절대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러시아와는 그 어느 때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투자와 교역을 활성화했다. 중국은 대륙 주변국들과의 안정적 관계를 통해 절약된 국가 에너지를 미국과 대만, 동·남중국해 주변국들과의 해상 투쟁에 집중 투입하려 하고 있다.

중국이 최선으로 여기는 대로,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것은 상대방이 ‘싸워봤자 이길 수 없다’고 인식하게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또 그런 인식이 각인되기 전까지는 절대 싸워선 안 된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이 본격적으로 싸움을 걸어오지 못하도록 싸움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힘을 기르고 주변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성해, 어느 순간 미국이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더는 중국을 상대하기 버겁다고 인식하도록 만들려고 할 것이다.

이런 중국의 행위 패턴은 힘 대 힘의 전면적 충돌로 우열을 갈라왔던 서구의 전통적 사고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국 전문가 데이비드 라이는 이를 바둑과 체스에 비유했다. 체스는 모든 말들이 왕(king)이라는 ‘하나의 목표물’을 공격하기 위해 기동하는 방식이다. 반면 바둑은 사방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작은 집 싸움들에서 하나씩 고지를 점령해 나가며 전체적인 ‘국면’을 유리하게 조성하는 게임이다. 결국엔 계가(計家)를 통해 어느 쪽이 더 ‘유리함’을 쌓아왔는지 따져보거나 때로는 불계승이라는 상대방의 자발적 항복을 끌어내기도 한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중국 지도부의 사고방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 정치인들은 모 아니면 도 식의 단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았다. 오랜 세월 공을 들여 작전을 펴나가는 게 그들의 방식이었다. 중국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섬세하게 에둘러서 상대적인 이익을 끈기 있게 쌓아나가는 방식이다.

이는 곧 덩샤오핑이 주창했던 도광양회의 핵심적 내용이기도 하다. 중국은 주로 외교와 경제 분야에서 위와 같은 ‘집 싸움’을 벌여 왔다. 중국의 동아시아 또는 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범태평양에 근거를 두고 동아시아에 적극 개입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전략 전문가들은 미국이 ‘범태평양 연합’이라는 어색하고 작위적인 개념을 퍼뜨리며 ‘동아시아 연합’이란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기획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미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전략적, 경제적 지역 기구들이 미국의 동맹 체제를 약화하고 궁극적으로 해체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런 이유로 미국은 아시아의 각종 기구 및 협의체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펴 왔다. 앞서 언급했듯 몇몇 기구에서는 준회원 또는 옵서버 자격을 부여받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거나 미국이 배제된 기구에 미국이 개입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진입장벽이 미국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다. 2009년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아세안+3과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했다. 중국의 입김이 강한 이 기구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은 ‘가입국에 대해 위협이나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고, 내정 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에 서명해야 했다. 이런 내용은 중국이 자국 내 인권 문제에 대한 비난이나, 대만에 대한 군사 지원, 미 동맹국의 대 중국 억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중국이 가장 큰 대외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은 경제가 될 것이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중국은 태국에 자금을 지원하고 자국 위안화를 평가 절하하지 않음으로써 역내 국가들이 중국에 대해 우호적 인식을 가지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반대로 2010년 자국 어부가 일본에 억류됐을 때는 희토류의 일본 수출을 중단하며 압박했다. 2011년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가 노벨평화상을 탔을 땐 자국이 최대 시장인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막았다. 2012년 스카버러 암초를 둘러싸고 필리핀과 대립했을 땐 필리핀산 바나나 수입 검역을 지연시켜 바나나를 썩어 버리게 만들었고, 2016년 한국이 사드(THAAD)를 배치하자 한한령으로 중국인의 한국 여행과 한국 물품 구매를 사실상 차단했다. 이처럼 중국은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지렛대를 통해 개별 국가들에 자신의 영향력을 인식하도록 해 왔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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