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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수익률 1300%…"가치투자와 노후 준비 궁합 잘 맞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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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호 16면

‘한국의 리틀 버핏’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

‘한국의 버핏’으로 불리는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 올해 공모펀드를 출시하며 악재 가득한 시장에서 가치주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박종근 기자

‘한국의 버핏’으로 불리는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 올해 공모펀드를 출시하며 악재 가득한 시장에서 가치주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박종근 기자

20년간 누적 수익률 1300%(9월 30일 기준). 20년 전에 1억원을 투자했다면, 무려 14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손에 쥘 수 있었으리라. 이는 ‘한국의 리틀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가 지난 20년간 거둔 성적표다.

최근 국내 증시의 테마주 광풍이 이어지면서 가치투자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커지고 있다. “워런 버핏도 한국서 주식했으면 노숙자 됐다”거나 “가치투자하려면 은행에 적금하지 뭐하러 주식하나”는 등의 부정적 목소리가 상당하다. 그럼에도 최 대표는 “핫한 기업엔 눈길도 주지 않는다”고 했다. 달리는 버스에서 벽에 부딪히기 전 뛰어내릴 수 있을 정도의 감각을 가진 능력자가 아니라면, 가치투자가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부자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믿어서다.

가치투자는 저평가 된 좋은 기업을 치밀한 분석을 통해 발굴하고, 기업가치가 인정받을 때까지 장기 투자한다. VIP가 보유한 주식은 짧게는 3년, 길면 10년 이상 장기투자를 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그만큼 믿음을 주는 주식을 선택하는 것이 관건이다. 매일 참치 어가와 태평양 수온을 확인하고, 아이돌 관리법을 알려주는 학원도 다니고, 사람들이 어떤 신발을 신고 다니는지 알기 위해 발만 보고 다니는 등 ‘이 정도까지 기업을 살펴야 하나’ 할 정도로 치밀함이 따라야하는 작업이다. 워런 버핏이 “가치투자는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여러분 중 일부만 할 것”이라고 장담한 이유다. 그는 능력 있는 구성원들이 충분한 연구를 통해 좋은 기업을 발굴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최 대표는 “매 회의 때마다 동료들 앞에서 더 나은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긴장하게 되며, 매일 성장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버핏·벤저민 그레이엄 책 읽고 감명

“제가 태어나고 자란 부산에는 사업체를 가진 부자들이 많았어요. 저희 집은 크게 부유하거나 가난하지 않았는데, 사립학교에 들어가면서 딴 세상을 만났어요. ‘친구들 집에는 공장, 창고, 선박 등이 있는데, 우리 집엔 왜 없을까’ 어린 마음에 스트레스가 쌓였고, 병이 나 입원하기에 이르렀죠.”

최 대표는 “상대적 빈곤감은 어린 초등학생에게도 큰 상처였다”고 떠올렸다. ‘기업(생산수단)을 가진 자’와 ‘기업을 갖지 못한 근로자’의 괴리감을 일찌감치 절감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고 이병철 회장의 『호암자전』, 고 정주영 회장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등의 자서전을 읽고 부자가 되는 길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위대한 경영자의 궤적에 큰 감명을 받았음에도 사업의 벽은 높게 느껴졌다.

“철강, 화학, 자동차, 조선 등 중후장대 산업은 현실적으로 접근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대학 입학 직후 우연히 서점에서 버핏의 생애를 다룬 『마이더스의 손』, 가치투자의 창시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를 읽었는데, 그 책들이 마치 복음처럼 다가왔어요. 라면 회사를 설립하긴 어려워도, 농심 주식을 사면 라면 사업에 동참하는 것이구나. 이 개념에 매료됐죠.”

그는 “가치투자는 어린 시절 최준철이 가진 한(恨)을 평생 풀어나가는 길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주식 투자는 곧 패가망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주식 투자에 대한 인식과 개념을 바꾸기 위해, 대학생 신분으로 친구인 김민국과 함께 쌈짓돈을 모아 ‘VIP펀드’를 만들어 운용했다. “진짜 가치투자가 통한다는 걸 보여줘야 했거든요. 상장기업 편람을 ㄱ~ㅎ까지 샅샅이 훑었어요. 그러다 눈에 번쩍 뜨는 종목을 찾았는데, 그게 동서였어요. 커피믹스라는 탁월한 사업을 보유했고, 당시 정수기 보급으로 커피 수요가 늘어날 것이 보였죠. 그럼에도 주가수익비율(PER)은 4배, 배당수익률은 7%로 저평가 상태였어요. 동서는 2015년 매도할 때까지 15배가 넘는 수익을 안겨줬습니다.”

누구보다 절실했던 그는 결국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수익률 117%를 달성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은 15%에 그쳤다. 당시 포트폴리오에는 동서 외에도 한섬, 오리온 등 워런 버핏이 말한 ‘코카콜라’ 같은 소비재기업을 주로 담았는데, 주가가 매우 쌌던 시기라 보상이 크게 돌아왔다. 이후 이름을 서서히 알려가며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이라는 책을 냈고, 방송에도 출연했다. 그러다 대학 졸업을 앞둔 2003년, 고 김정주 넥슨 창업주로부터 무려 100억원을 투자 받았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당시 넥슨이 갖고 있던 현금을 다 긁어서 펀드에 100억원을 맡겨주셨어요. 인터넷회사 분석 글을 보고 처음 연락을 주셨는데 이후로도 저희 활동을 지켜보시며 얼마나 가치투자에 진심인가를 확인하고 밀어주셨던 거죠.”

VIP투자자문이 탄생된 순간이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 등이 ‘1세대 가치투자가’로 현업에서 일하면서 가치투자 철학으로 명성을 날렸다면, ‘2세대 가치투자가’인 최 대표는 벤저민 그레이엄과 그의 제자인 워런 버핏의 책을 읽으며 직장생활 경험 없이 바로 가치투자를 시작했다.

“가치투자 1세대인 이채원 의장이 한 투신사에서 펀드 매니저로 근무할 당시 IT 버블 사태를 맞았어요. 그때 이 의장은 새롬기술 등이 몇십배 몇 백배 올라가는 상황에서 롯데칠성, 태평양 등의 주식을 들고 버티고 있었는데, 고객으로부터 ‘너희 사무실 몇층이야? 거기서 뛰어내려’ 같은 협박전화가 오고, 칼도 배달돼 오고했다고 합니다. 결국 압박에 못 이겨 회사를 그만두셨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가치투자의 고집을 꺾지 않기 위해선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오너가 돼야 한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창업 후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은 건 2008년 금융위기 직후였다. 당시 투자자문사였던 VIP는 처음으로 고객 돈을 잃고, 문을 닫을 위기까지 몰렸다. 최 대표는 “금융위기 직전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우리 수익률이 제일 좋았기 때문에 회의하고 있는 동안 투자 대상 주식이 상한가를 치는 걸 보면서 ‘우리 사무실에 도청장치가 있나’ 생각할 정도로 교만했다”고 되돌아본다. ‘왜 금융위기를 맞아 이 고생을 하나’ 싶었지만, 지나보니 금융위기를 버텨낼 만큼 탄탄한 종목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지 못한 과오가 보였다. 예컨대 당시 리조트사업을 하는 회사에 크게 투자했는데,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해 보수적으로 비중을 작게 가져가야 했음에도 과감하게 베팅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했다.

최 대표가 주목하는 가치투자 대상은 ‘좋은 기업이 주가 하락으로 좋은 가격이란 요건을 갖추는 순간’이다. 그런 종목을 발굴할 때 도파민이 치솟는다. 그는 “경쟁력 있는 기업이 해외 진출 등으로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한 초반을 매력적 투자 시점”으로 꼽았다. 가치투자자는 비관론자로부터 사서 낙관론자에게 팔기 때문에 비관론이 많은 곳도 ‘주 사냥터’다. 현재는 중국 관련주가 대표적이다. 중국인들의 한국 관광 관련 산업이나 중국 소비재 등을 주시한다. 중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고, 경기도 부진하다고 하니까 다들 쳐다도 안보는 분위기다. 주가가 성장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 현대차, SK도 최고경영자의 능력이나 가치에 비해 현재 주가가 저평가된 상태라는 분석이다.

비관론 많은 중국 소비재 등 지켜봐야

코로나 이후 최근 3년 이상 보유하며 성과를 거둔 분야는 K팝, 피부미용, 방산, 식품(라면) 등이다. 그는 이 분야에 대해 “모두 해외시장을 개척해가는 분야”라고 귀띔했다. 현재 편입 종목 중 비중이 가장 높은 종목은 메리츠금융지주다. 최 대표는 “메리츠의 최고경영자는 적극적 주주환원과 혁신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비슷한 사업모델을 가진 그룹 중 결국 미래의 승자가 되는 것은 최고경영자의 경영능력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이들 종목은 올해 2차전지 열풍 속에서도 꾸준한 주가 상승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공모시장의 성공적 데뷔로도 이어졌다. 올해 2월 300억원 한정판매로 선보인 ‘VIP The First 증권투자신탁 1호’는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오픈런(Open run·개점 질주) 속에 당일 완판 됐다. 4월에 선보인 ‘VIP한국형가치투자’(이하 한가투)의 반응도 뜨겁다. 이 펀드는 VIP자산운용의 첫 개방형 펀드로 순자산 규모는 9월 30일 기준 1836억원에 이른다. 최근 2년간 설정된 국내 주식형 액티브 펀드 중 설정액이 500억원을 넘어선 것은 이 펀드가 유일하다. 이 공모펀드의 책임운용역은 최 대표다. 그는 “대표라기보다 펀드매니저”라며 직접 이름을 걸고 운용을 책임진다. 설정일 이후 누적 수익률은 9월 30일 기준 VIP The First 증권투자신탁 1호가 13.11%다. 이 기간 벤치마크 대상인 코스피 수익률은 -1.37%다. 변동성이 큰 하락장에서 VIP의 공모펀드가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최 대표는 VIP자산운용이 그동안 ‘부자들의 하우스’로 일반 투자자에게는 접근이 어려웠던 점에 부채의식을 가졌다. 그래서 이제는 “직장인도 노후를 위한 투자를 전문가에게 맡기고 본업에 집중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병이 나면 네이버 지식인을 찾아보기보다 의료진에 진료를 받는 것이 현명한 것처럼, 투자에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단기성과에 일희일비하지않고 장기 투자할 수 있는 가치투자와 퇴직연금은 궁합이 잘 맞는다. 대중들이 마켓타이밍을 맞추려 하기보다, 가치투자를 통해 안정적인 노후를 준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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