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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정완의 시선

월 100만원 더 줄테니 소아과 지원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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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당신에게 월 100만원씩 추가 수입이 생긴다면 어떨까. 물론 세상에 공돈은 없는 법이다. 그 돈을 받는 대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떠맡아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매일 같은 야근에 당직 근무도 감수해야 한다. 당연히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까딱 실수하거나 재수 없으면 골치 아픈 민원이나 법적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 어찌어찌 정해진 기간만 채운다고 끝나는 문제도 아니다. 그 돈을 받는 기간은 짧지만 미래 비전이 보이지 않는 일을 평생 계속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조건이라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전멸 위기’ 소아과 전공의 대책
‘언 발에 오줌 누기’ 실효성 없어
눈앞 ‘당근’보다 장기 비전 필요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소아 의료체계 개선 대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월 100만원은 복지부가 제시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레지던트) 수련 보조수당이다. 현재 전국 주요 종합병원에서 소아과 전공의는 사실상 ‘전멸 위기’다. 이대로는 큰일 나겠다는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러자 복지부는 추가 수당이란 유인책을 꺼내 들었다. 아예 없는 것보단 낫겠지만 충분한 인센티브가 될진 회의적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옛 속담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누군가에겐 평생이 걸린 문제인데 잠시 얼마를 더 주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혹시 더 중요한 문제를 놓치는 건 아닐까.

우리나라 의사 양성 체계에서 전공의 과정은 중차대한 역할을 한다. 바늘구멍보다 어렵다는 의대 입시를 통과한 뒤 6년간 의대 교육을 마치고 의사 면허를 딴 사람들은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3~4년 전공의 수련을 거쳐 전문의 자격까지 딸 것인가, 세부 전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반의로 개원할 것이냐다. 일반의를 선택한다고 수입이 적은 것도 아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피부 미용 등으로 큰 돈을 버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굳이 어렵고 힘든 길을 가지 않아도 명예와 부를 함께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개인으로선 합리적 선택이 때로는 사회 전체의 자원 배분을 왜곡할 수 있다. 소아과 전공의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인력이다. 저출산 시대에 우리 아이들의 생명과 건강이 달린 문제다. 전공의가 없으면 주요 종합병원 소아과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특히 소아 응급실이 심각한 상황이다. 밤에 갑자기 아이가 아프다고 울면 마땅히 데려갈 병원을 찾기 어렵다. 지방에선 이미 한참 전에 소아과 응급진료 체계가 무너져 내렸다. 이제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도 위기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2018년까지만 해도 소아과 전공의는 어떻게든 정원을 채울 수 있었다. 2019년 첫 미달을 기록한 이후 올해는 역대 최저인 16%까지 추락했다. 수도권도 비상이 걸렸지만 지방은 처참한 수준이다. 예컨대 인구 650만 명의 부산·경남 지역에선 올해 단 한 명의 소아과 전공의도 충원하지 못했다.

일부 지방 대형병원에서 아직 소아 응급실과 입원실을 운영하는 건 전공의 2년 차 이상이 버텨준 덕분이다. 남은 시간은 1년뿐이다. 이들은 내년 말이면 일제히 전공의 수련을 마친다. 소아과 전공의가 모두 사라지면 그 공백은 누가 어떻게 메울 것인가. 소아 응급실에서 근무할 전문의를 찾기도 쉽지 않다. 기존 소아과 전문의들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간판을 내리는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인력 없이 시설만 있다고 병원이 돌아가진 않는다.

현장의 목소리는 절박하기만 하다. 박수은 양산부산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내년 말 이후에는 정말 대책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창원파티마병원의 마상혁 소아과 주임과장은 “정부 발표는 껍데기에 불과하고 현실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며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응하면 소아과 전공의 지원은 더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상황이 꼬일수록 미봉책보다 정공법을 찾아야 한다. 의사도 결국 사람이다. 젊은 세대 의사들에게 불합리한 강요나 억지는 통하지 않는다.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건 당장의 돈 몇 푼이 아니다. 마 과장은 “무엇보다 미래 비전 제시가 중요하다. 소아과 의사가 국내 의료 체계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안정적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힘든 전공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따고 난 다음에 의사로서 보람을 느끼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보호자 ‘갑질’이나 과도한 의료소송에 시달리지 않도록 보호장치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