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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미국인 50%만 “북 침공 시 한국 방어”… 대미 외교 다각화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2019년 11월 23일 당시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뉴욕의 한 호텔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모두 발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9년 11월 23일 당시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뉴욕의 한 호텔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모두 발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미 의회, 싱크탱크 등에 친한파 네트워크 확장하고

“한국 방어가 미국 이익에도 부합” 여론 늘려 가길

북한이 한국을 침공할 경우 미군이 한국을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국 국민의 비중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쳐 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내년 재선 가능성이 거론되는 시점이라 미국인을 상대로 한 한국 정부의 대미 외교에 비상등이 켜진 셈이다. 특히 북한이 최근 핵 무력 고도화를 헌법에 명시하며 위협을 강화하는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가 미국인 3242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4일(현지시간)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0%만 북한의 한국 침공 시 미군이 방어에 나서는 것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반대는 49%였다. 2021년 조사에서 63%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던 것과 비교하면 13%포인트나 하락했다. 정치 성향별로 보면 민주당 지지층은 57%가 공감했고, 공화당 지지층은 46%만 찬성했다. 동맹국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미국 보수층 내에서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양상이다.

CCGA는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한 무력 사용에 대해 점점 더 당파적 분열이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 조사 결과가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최근의 미국 정치는 162년 전의 남북전쟁 시절을 연상시킬 정도로 분열과 갈등이 극심해 ‘정치적 내전’ 상태라는 말도 나온다.

무엇보다 이번 조사 결과를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강한 고립주의 성향을 보였던 트럼프 1기 집권 시절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며 당시 문재인 정부에 미군 철수 카드로 압박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국내의 부정적인 여론이 더 확산돼 북한이 도발하는 경우에도 미국의 여론이 참전 반대로 기운다면 악몽 같은 시나리오다. 더군다나 한·미 동맹 조약에는 자동 개입 조항이 없다.

미국은 국민 여론이 정치적 의사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대통령과 장관 레벨의 한·미 고위층 양자회담도 물론 중요하지만, 미국의 여론에 큰 영향을 주는 의회나 싱크탱크 전문가 집단, 언론을 상대로 한 외교도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펼쳐야 한다. 친한파 네트워크를 확충하고 한국의 상황을 정확히 알려 공감과 지지를 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외교부와 국제교류재단,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등도 함께 나서야 한다.

미국의 정·관·재계 등을 상대로 북한의 핵 무력 고도화가 미국의 안보까지 직접 위협한다는 사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최전선을 지키는 한국과 함께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직결된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