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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상현의 과학 산책

“그것을 왜 하는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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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나는 발표가 좋다. 청중이 많건 적건, 거리가 가깝건 멀건, 여건만 되면 수락한다. 쑥스러움도 없다. 티셔츠가 뒤집힌 채 출근한 날의 대형 강의에도, 방송국 카메라와 중고생 1000여 명이 기다리던 날의 대중강연에도 긴장하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희한한 일이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일상 대화에서는 화제가 떨어지기 일쑤이다. 인터뷰나 토론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건 벌 받는 기분이다. 그런데 수학 발표는 다르다. 깊이 생각해 보고, 확실하게 알아낸 것만 이야기한다. 그 순간 그곳에서만큼은 내가 최고의 전문가다. 무대는 짜릿하다. 대부분의 수학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발표 중에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질문이 있다. ‘그것을 왜 하는 거죠?’ 특히 권위 있는 교수가 새파란 연구원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상황은 악몽이다. ‘이 결과는 의미도 재미도 없네요’를 에둘러 말하는 것만 같다. 유명 수학자 이름 거론하기, 오래된 문헌 들춰내기, 물리학자가 궁금해한다며 남의 핑계 대기. 이런저런 대응을 해 보았자 솔직히 논리는 궁색하다. 대답을 겨우 생각해내도, ‘그래서 그게 왜 중요하죠’라며 질문을 얼마든지 이어갈 수 있다. 허구의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논리 장난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물을 수 있다.

사실 정당한 궁금증이다. 오늘 우리가 간직해야 할 당신 연구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더 나아가자면, 여러 도전과 위기와 마주한 인류가 왜 오늘 당신의 발표를 경청해야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좋은 답은 없다. ‘우리 중 누구도 이 질문에 이성적인 대답을 찾을 만큼 똑똑하거나 현명하지 못합니다.’ 20세기 최고의 기하학자 중 한 명인 현자의 위로다. 덧붙이는 그의 조언. “결국 따라야 할 것은 당신의 진심과 열정입니다.” 연구의 참된 의미는 진심 속에서만 보이고 열정 속에서만 확인된다는 뜻일 것이다. 삶의 의미도 비슷할까. 궁금하다.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