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4분기 전기요금 인상, 어려워도 이번엔 해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동철 신임 한국전력 사장이 4일 세종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전력 제공]

김동철 신임 한국전력 사장이 4일 세종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전력 제공]

‘워룸’ 숙식 중인 한전 사장도 “요금 꼭 올려야”

‘전기료 포퓰리즘’ 전임 정부와는 다른 선택을

지난달 취임한 김동철 한전 사장은 나주 본사 사장실에 ‘워룸’(비상경영 상황실) 문패를 달고 야전침대에서 자며 퇴근하지 않고 지낸다. 추석 연휴도 반납하고 워룸에서 보냈다.

김 사장은 1961년 한전 설립 이후 첫 정치인 출신 사장이다. 200조원이 넘는 역대급 부채를 안고 있는 거대 공기업에 비전문가를 낙하산으로 앉혔다는 점에서 비판이 많았다. 그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고 하지만 에너지 전문가로 부르기엔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는다. 김 사장이 굳이 야전침대 생활이라는 이례적인 선택을 한 것도 이런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김 사장이 어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적정 수준의 전기료 인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기요금 인상이 없으면 자금 차입도 한계에 봉착할 것이고, 전력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란 그의 현실 인식도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지난달 취임사에서 “전기요금에 모든 것을 거는 회사가 돼서는 안 된다”고 했던 그였지만 워룸 생활에서 벼랑 앞에 선 한전의 냉혹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본다.

원가보다 싼 전기요금 탓에 생긴 47조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를 줄이려면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2021년 에너지 가격 변동분을 분기마다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지만 ‘국민 부담’을 내세우는 정부의 정치 논리에 눌려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기준 연료비를 일부 인상했지만 찔끔 올리는 데 그쳤다.

정부는 아직도 4분기 전기요금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추석 민심을 고려해 연휴 이후로 발표를 미뤘다고 한다. 지난겨울 ‘난방비 폭탄’으로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는 만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기요금 인상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힘들어도 역마진 해소를 위한 충분한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을 더 이상 늦춰선 안 된다.

고물가도 전기요금 인상을 늦추는 변명거리가 될 수 없다.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조차 전기요금 동결로 인한 에너지 과소비와 이로 인한 경상적자를 더 걱정한다.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구하려면 한전 스스로 자구안을 마련하고 구조조정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정부의 지적은 맞다. 하지만 혹시라도 한전 구조조정을 핑계로 요금 인상을 미루는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한전 구조조정 규모를 늘리려다 미래에 필요한 송배전망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전문가가 많다. 윤석열 정부는 ‘전기요금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받은 문재인 정부와는 다른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김동철 사장도 정치인 출신 수장의 장점을 잘 살려 정부와 정치권을 잘 설득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