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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또 당선되면 어쩌나"…긴장하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내년 11월 열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리턴 매치’가 유력한 가운데, 트럼프의 한층 거세진 ‘독설’에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가 바이든의 경제 정책을 힐난하며 특히 전기차 친화 정책을 강하게 몰아붙이고 있어서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러스트 벨트 미시간주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업체를 찾아 연설 중인 트럼프 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러스트 벨트 미시간주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업체를 찾아 연설 중인 트럼프 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4일 CNN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들어 부쩍 전기차 산업을 깎아내리고 있다. 각종 연설과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전기차는 “너무 비싸고” “충분히 멀리 가지도 못하며”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사기(ridiculous hoax)”라고 공격하고 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에는 ‘러스트 벨트(제조업 사양화로 불황을 맞은 지역)’ 중 한 곳인 미시간주의 자동차 부품업체 드레이크를 찾아 “바이든이 자동차 시장을 중국에 넘기고 있다”며 “가솔린 엔진은 허용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전기차 전환으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자동차 산업 자체가 파괴돼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란 주장이다. 전기차 공정에는 내연기관차보다 인력이 약 30% 정도 줄어드는데, 이로 인한 노동자들의 공포심을 파고들며 지지층을 모으려는 전략이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 조감도. 사진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 조감도. 사진 현대차그룹

사업가 시절부터 석유업계와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는 재임 기간(2017년 1월~2021년 1월)에도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고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등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 정책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문제는 단순히 비난하는 데서 나아가 자신이 당선될 경우 바이든 정부 경제 정책의 핵심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전기차 전환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전기차 보조금 및 관련 정책의 축소와 폐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의 거친 입에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고심이 짙어지는 건, 그간 메르세데스-벤츠·BMW·토요타 등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IRA로 대표되는 바이든 정부의 당근과 채찍에 따라 경쟁적으로 북미 시장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단체 환경보호기금에 따르면 글로벌 업체들이 지난 8년간 전기차 전환에 쏟은 돈은 1200억 달러(약 163조원) 이상으로, 이 중 40% 이상이 IRA 시행 이후 쓰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트럼프가 당선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실제 공화당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는 10명이 넘지만 확고한 1등은 트럼프다. ‘성 추문 입막음 돈 지불 혐의’ 등으로 네 차례 기소됐지만 외려 지지층은 결집하는 모습이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양자 대결이 될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는 까닭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의 지지율은 거의 비슷한 수준인데, 지난달 ABC방송·워싱턴포스트(WP) 조사에서는 두 사람의 양자 대결 시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이 51%로, 바이든보다 무려 9%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공세에 급박해진 바이든은 지난달 말 전미자동차노조(UAW) 파업 현장을 직접 찾아 지지하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선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노조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왔지만, UAW가 바이든의 전기차 친화 정책을 두고 “2024년 대선에서 지지를 유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K-배터리 3사, 현대차 등 국내 업계 고민도 커져  

북미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한 국내 자동차·배터리 업계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만약 트럼프가 당선돼 IRA를 폐지한다면 전기차 할인 정책, 현지 업체들과의 공급망 협력 등이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주(州) 정부가 약속한 인센티브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섣부른 예측을 할 단계는 아니다”면서도 “관련 뉴스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다만 공화당 내부의 입장은 트럼프와 다르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이 진출한 조지아주의 경우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공화당원이지만 “조지아를 미국의 전기 모빌리티 수도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CNN은 “IRA 통과 이후 새로운 청정에너지 관련 프로젝트의 절반 이상이 소위 ‘공화당 표밭’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공화당원의 입장은 트럼프와 다를 것”이라고 짚었다.

미 언론의 비판도 점점 커지는 모습이다. 타임지는 “세계 자동차 시장이 점점 전기차로 전환 중이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트럼프 재임 중에도 석탄 발전소는 꾸준히 폐쇄됐다”고 꼬집었다. CNN은 “트럼프의 제안은 오히려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통제권을 외국 기업들에 넘기는 일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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