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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문항' 수사의 역설…일각선 "대형학원 때릴수록 되레 홍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공정거래위원회가 시대인재, 메가스터디 등 9개 사교육업체의 19개 법 위반 혐의에 대한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상정한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시대인재 학원의 모습.   공정위는 대외적으로 누설할 수 없는 수능 출제위원 경력을 학원 홍보에 활용하고 대학 합격생 수를 과장한 9개 사교육업체에 대해 제재에 착수했다.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시대인재, 메가스터디 등 9개 사교육업체의 19개 법 위반 혐의에 대한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상정한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시대인재 학원의 모습. 공정위는 대외적으로 누설할 수 없는 수능 출제위원 경력을 학원 홍보에 활용하고 대학 합격생 수를 과장한 9개 사교육업체에 대해 제재에 착수했다. 연합뉴스

교육부가 교사들에게 문제를 사들인 혐의로 수사 의뢰한 사교육 업체에 메가스터디, 시대인재, 대성학원 등의 대형 학원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메가스터디, 시대인재, 대성…대형 업체 대거 포함

4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교육부는 수능이나 모의평가 출제·검토위원 경력이 있는 교사 22명과 문항을 거래한 사교육 업체 21곳을 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수사 대상에는 메가스터디 출판 계열사인 새이솔, 대성학원(강남·노량진)과 대성출판사, 모의고사 출제 전문 업체인 이감 등이 포함됐다고 알려졌다. 일부 일타 강사들이 차린 교재 업체도 포함됐다. 이들은 ‘시크릿 족집게 강의’ ‘평가원 경향 적극 반영’ 등의 문구를 내걸고 홍보해왔다.

입시 관계자들은 교사들의 문제 판매가 “오래된 관행”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들어 질 높은 '킬러 문항'을 통해 최상위권 수험생을 데려오는 게 학원 홍보에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대치동 학원가에서 킬러 문항 출제가 경쟁적으로 이뤄졌다.

강남 학원가의 전직 강사는 “2010년대 들어 EBS 교재 연계 등 쉬운 수능 기조가 유지되고 한두 문제로 입시 당락이 갈리며 수험생 커뮤니티에서 킬러 문제 만들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이때부터 유명 강사나 대형 학원이 좋은 문제를 사겠다며 단가를 100만원 단위로 확 올리면서 본격적인 출제 경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지난달 19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제4차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범정부 대응협의회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지난달 19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제4차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범정부 대응협의회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원들은 교사의 수능이나 모의고사 출제 경력을 알고 문제를 산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한 학원가 관계자는 “출제진 섭외는 알음알음 이뤄진다. 교과서나 교재를 만든 경험이 있는 교사에게 연락하면 네트워크가 있는 교사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오는 식”이라며 “수능 출제 경험은 본인이 스스로 ‘무용담’을 밝히기 전까진 알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의 한 고교 교장은 “수능 출제진은 고립된 장소에서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자리를 오랫동안 비우게 된다. 업체에서 출제 경험이 궁금하다면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미 출제진 대부분이 서울대, 고려대, 한국교원대 등 특정 학연으로 엮여있는 데다, 출제 교사들끼리 뭉쳐 다니기 때문에 카르텔이 형성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교육 타격 입을까…'킬러 배제'에도 학원 문전성시

정부의 킬러문항 배제 조치 이후 세무조사, 감사원 감사에 이어 경찰 수사까지 받게 된 업체들은 당황하는 분위기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매년 내보내던 모의평가 결과 분석 자료도 내지 않으면서 눈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세무 조사를 받은 한 업체 관계자는 “상당한 추징금을 맞을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0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서 열린 종로학원 초중 학부모 대상 고교 및 대입 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지난 5월 20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서 열린 종로학원 초중 학부모 대상 고교 및 대입 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일각에선 일시적인 ‘사교육 때리기’는 오히려 학원을 홍보해주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북의 한 고교 교사는 “일반고에서 킬러 문항에 덤벼볼만한 학생은 극히 일부다. 최상위권 학생들에겐 이번에 논란이 된 학원에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고 했다. 한 입시업계 관계자는 “이번 9월 모의평가는 킬러 문항이 배제됐지만, 특정 학원에서 수학 만점자가 수백명이 나왔다는 얘기가 나온다. 논란과 상관없이 학원들은 문전성시”라고 말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는 “교사들의 문항 출제를 원천적으로 금지하지 않는 이상 완벽한 재발 방지는 쉽지 않다. 결국은 킬러 문항이 없어져야 관련 사교육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교육연구소장은 “수능 대신 내신이나 학교생활 등 대학에서 수험생을 평가할 다양한 전형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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