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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잠수함' 비웃음 산 김정은, 韓기술 도둑질 나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이 최근 국내 조선 업체를 대상으로 수차례 해킹을 시도한 정황을 국가정보원이 포착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해군력 강화에 사활을 건 북한이 조선 강국인 한국의 기술력을 노리고 '단골 수법'인 해킹을 꺼내 든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일 열린 김군옥 영웅함 진수식에 참석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일 열린 김군옥 영웅함 진수식에 참석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지난 두 달 공격 집중

4일 국가정보원은 "지난 8~9월 북한 해킹조직이 유수의 국내 조선 업체들을 상대로 공격을 시도한 사례를 여러 건 포착했다"며 "주요 수법은 IT 유지·보수 업체의 PC를 점거 및 우회 침투하거나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피싱(phishing·통신 사기) 메일을 유포한 후 악성 코드를 설치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이어 "북한 해킹 조직이 국내 조선 업체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김정은의 중·대형 군함 건조 지시 때문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김정은은 최근 몇 달간 해군력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지난 8월 중순 해군 동해 함대를 시찰했고, 같은 달 27일 해군절을 맞아 딸 김주애와 함께 해군사령부를 방문했다. 지난달 3일에는 선박용 엔진 등을 생산하는 평안북도 북중기계연합기업소를 시찰하는 모습이 보도됐다.

국가정보원 전경. 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 전경. 국가정보원.

무리한 잠수함 개조 시도 

이어 지난달 6일 북한은 소위 '전술핵공격잠수함'인 '김군옥 영웅함'을 진수하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0발을 탑재해 수중에서 핵 공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 "기존의 중형 잠수함들도 전술핵을 탑재하는 공격형 잠수함들로 개조하겠다"며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더 큰 박차를 가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군은 "김군옥 영웅함은 정상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며 "북한이 기만하거나 과장하는 징후가 있다"고 평가했다. 잠수함의 기본인 정숙 주행 등도 어려워 보인다는 취지였다.

미국 군사 전문매체 '워 존'도 김군옥 영웅함 공개 직후 "골동품인 로미오급 잠수함을 기괴(bizarre)하게 개조했다"며 "프랑켄슈타인처럼 만든 잠수함", 즉 '프랑켄서브(Frankensub)'라고 지칭했다. 북한의 무리한 선박 개조를 과학 실험으로 인체가 짜깁기된 괴물에 빗댄 것이다.

지난 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김군옥 영웅함 진수식. 노동신문. 뉴스1.

지난 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김군옥 영웅함 진수식. 노동신문. 뉴스1.

실제로 최근 북한이 각종 무력 도발에서 기술적 한계에 봉착하자 무리해서 기만술을 펴는 등 조바심을 드러내는 상황이 잇따르고 있다. 일례로 지난 8월 21일 북한은 "김정은이 참관한 가운데 동해상에서 진행한 전략순항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지만, 직후 군은 "과장이며 사실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북한이 발사한 것은 전략순항미사일이 아닌 함대함 미사일"이라면서다.

러시아에 자극 받았나

지난달 러시아를 5박 6일 동안 방문하면서 각종 첨단 군사 기술에 자극을 받은 김정은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군력 개발에 나섰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정은은 지난달 16일 러시아 태평양함대 기지를 찾아 우달로이급 구축함 샤포시니코프 원수함에 올라 해상작전능력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종합지휘실과 조타실 등을 직접 시찰했다. 선진화한 러시아의 해군력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설명을 들으며 내부적으로 야심차게 진행했던 군 현대화의 한계를 체감하고 충격을 받았을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6일 러시아 태평양함대를 방문해 구축함 샤포시니코프 원수함에 오르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6일 러시아 태평양함대를 방문해 구축함 샤포시니코프 원수함에 오르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선박 사업 관련 제대로 된 기술이 없고 해군력도 굉장히 낙후된 북한이 당장 잠수함 혹은 전투함과 선박 등을 만들어 내려면 선박 건조 및 첨단 기술이 절실하게 필요했을 것이고, 이 때문에 한국 기업 해킹으로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북한은 과거 한ㆍ미가 월등하다고 생각해 따라잡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해군력, 공군력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특히 북한은 이미 과거에 해킹을 통해 최신 군사 기술을 습득했던 경험을 가진 만큼 그간 쌓아 올린 사이버 역량을 총동원해 해군력 강화를 위한 기술 탈취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에 따르면 극초음속 미사일 등 북한이 최근 선보인 다수의 신형 군사 기술은 "해킹으로 입수한 정보에 기반한 것"으로 판명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6일 러시아 태평양함대를 방문해 구축함 샤포시니코프 원수함을 시찰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6일 러시아 태평양함대를 방문해 구축함 샤포시니코프 원수함을 시찰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이에 국정원은 "앞으로도 국내 조선 업계를 대상으로 한 북한의 공격 추세는 지속될 것"이라며 "주요 조선 업체와 선박 부품 제조업체 등 관련 기업 관계자들은 업무망과 인터넷망을 분리하고, 유지 보수 업체와 고객사 간 원격 접속용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점검하며, 불분명한 이메일과 웹사이트에 대한 열람을 금지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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