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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두 번 건넌 탈북소년, 한국 온지 18년만에 정교수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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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외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김성렬 국제학부 외교전공 교수. 지난달 부산외대에 임용된 김 교수는 탈북민 1호 교수라고 한다. 사진 부산외대

부산외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김성렬 국제학부 외교전공 교수. 지난달 부산외대에 임용된 김 교수는 탈북민 1호 교수라고 한다. 사진 부산외대

“통일ㆍ북한과 관련한 연구는 수도권에 집중돼있습니다. 지역에서 통일과 북한 연구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부산외대 국제학부 김성렬(38) 교수가 4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부산외대에 따르면 김 교수는 공모를 거쳐 지난달 이 대학 정교수로 임용됐다. 탈북민이 국내 대학 정교수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는 1985년 함경북도 청진 출신이다. 김 교수는 남북관계론과 국제 정치이론 강의를 맡았다.

굶주린 12살 소년, 얼어붙은 두만강 건넜다

김 교수에게 북한 생활에서 기억에 남은 건 굶주림이다. 1990년대 들어 청진에선 식량이 제대로 배급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일하던 식품매장에서 팔 물건이 동나자 유일한 재산이라 할 수 있는 TV를 팔았다. 장사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 돈으로 어머니는 북한 내 화교 등이 들여온 중국산 밀가루를 떼다가 장마당에서 되파는 일을 했다. 사실상 가장이었던 어머니는 밀가루 장사로 아들과 딸(김 교수 누나)을 길렀다. 하지만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들었다. 하지만 화교가 밀가루를 직접 팔면서 이런 '중개상'도 힘들어졌다. 김 교수 어머니는 1997년 3월 두 아이를 데리고 두만강을 건너기로 했다. 당시 12살이던 김 교수는 “어머니가 나와 누나를 부둥켜안고 얼음장을 깨며 필사적으로 강을 건너던 때가 생생하다”고 말했다.

북송과 재탈북, 생각도 못 한 한국행

중국으로 탈출한 김 교수와 그의 누나는 공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3년 뒤 김 교수 가족은 중국 공안에 적발돼 북한 신의주로 북송됐다. 누군가 신고하는 바람에 탈북자 신분이 드러났다. 이들은 북한 수용소에서 3개월가량 강제노역했다. 그러다가 2000년 6ㆍ15 정상회담을 계기로 “굶주림에 못 이겨 두만강을 건넌 이들은 용서해주라”는 북한 당국 지시에 따라 석방됐다.

통일부가 공개한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모습. 탈북어민이 몸부림치며 북송을 거부하고 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연합뉴스

통일부가 공개한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모습. 탈북어민이 몸부림치며 북송을 거부하고 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연합뉴스

김 교수는 “가까스로 풀려났지만, 살길이 막막했다”고 회상했다. 가족이 살던 집엔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고, 마땅히 신세를 질만 한 친척도 없었다. 이미 ‘북한 바깥’을 경험해본 김 교수는 다시 한번 두만강을 건너기로 했다. 2000년 8월 북한을 벗어나는 데 성공한 그는 첫 탈북 때 일하던 공장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두 달쯤 지나 어머니와 누나도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왔다.

김 교수가 한국으로 온 건 2005년이다. 베이징 민박집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우연히 알게 된 브로커를 통해서였다. 김 교수는 “한국으로 가서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첫 탈북 때 중국에서 잠깐 학교에 다닐 기회가 있었지만, 언어 장벽 때문에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美 장학금 1호… 조 바이든과 명문대 동문

한국에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 김 교수는 1년여 만에 초ㆍ중ㆍ고 검정고시를 모두 패스하고 2007년 한동대 국제어문학부에 입학했다. 졸업까지 7년이 걸렸다. 김 교수는 “탈북과 북송을 경험하며 국제 정치, 외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미국 명문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다”고 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 당시 존 설리번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함께 사진을 찍은 김성렬 교수. 사진 김성렬 교수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 당시 존 설리번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함께 사진을 찍은 김성렬 교수. 사진 김성렬 교수

김 교수는 연세대 대학원을 거쳐 미국 정부 장학금인 ‘풀브라이트 프로그램’ 1기 탈북민 장학생이 됐다. 그가 몸담은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대 맥스웰스쿨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졸업한 정치학 명문대로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2021년 ‘동아시아 국제정치변화가 북한의 대미정책에 미친 요인’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北 변화 이끌 학교 세울 것”

그는 “학생들과 함께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는 교수가 되겠다”며 “통일되면 북한에 대학교를 세우고, 학문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끄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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