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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버려야 새로워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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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경아 정원 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오경아 정원 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가을로 접어들며 속초엔 바람이 많이 불어온다. 살아보니 밤 기온이 뚝 떨어져 두툼한 이불을 찾고 며칠이 지나면 설악산 단풍 소식이 들려왔다. 발뒤꿈치에 진흙을 잔뜩 단 듯 무거웠던 올여름이 선선한 가을바람에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이것도 찰나의 행복일 것이다. 식물들이 단풍을 만드는 이유는 사실 우리가 놀이를 갈 만큼 낭만적이진 않다. 겨울철 잎이 물을 빨아올리면 나무 전체가 얼게 된다. 그래서 잎을 없앨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광합성 작용을 멈추는 것인데 그럼 이때 잎에 초록색이 사라지고 남은 색인 노랑·주황·빨강이 나타난다. 이게 우리 눈에 보이는 단풍색이다.

행복한 가드닝

행복한 가드닝

타로 카드에 보면 ‘죽음’의 카드가 있다. 이 죽음의 카드는 부정적 의미처럼 보이지만 해석은 좀 다르다. 죽음의 신 뒤로 떠오르는 태양이 그려져 있어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정원사에게 계절의 시작은 봄부터가 아니라 가을이다. 식물의 동면기에 접어드는 어찌 보면 잠정적 죽음의 계절, 가을이 바로 새로운 정원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 시작의 기운은 나무를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떨어질 낙엽 잎맥 바로 밑에 이미 내년 봄 피울 잎눈, 꽃눈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작은 봉오리들은 모진 겨울 추위를 이겨내며 긴 견딤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내년 봄, 적당한 어느 날에 싹을 틔울 것이다. 계절에 따라 우리 삶도 에너지의 리듬을 탄다. 가을은 식물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버릴 것, 내려놓아야 할 것을 빠르게 정리하라고 부추기는 듯하다. 버려야 새로워진다.

가을 정원 화단에 수북이 떨어진 낙엽 안에서 미생물 분해가 일어나면 전체 화단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 화단은 낙엽을 잘 치워주고 고운 원예상토나 나무껍질로 깔끔히 다시 덮어주자. 낙엽은 한곳에 모아 삭히면 다음 해 거름으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