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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택지 ‘벌떼입찰’ 조사받는 건설사들 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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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계열사들을 동원한 이른바 ‘벌떼입찰’로 사세를 불린 건설 대기업들이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공공택지 당첨확률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무부서인 국토교통부가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행태라며 여러 차례 근절 의지를 밝히고, 제도 개선책도 내놨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남아있는 탓이다.

이는 인천도시공사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강대식 의원(국민의힘·대구동구을)에게 제출한 ‘인천 검단 공동주택용지 AA24 블록’ 입찰 자료를 3일 본지가 분석한 결과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25일 인천도시공사가 공고한 입찰에는 총 68개 기업이 참여했다. 택지의 공급금액은 2198억원으로 공동주택 1086가구를 지을 수 있는 규모다. 모기업이 다수의 계열사를 동원해 참여하는 ‘벌떼입찰’의 전형이 이번 입찰에도 나타났다. SM·호반·중흥·보성 등 최소 11개 기업에서 2곳 이상의 계열사를 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계열사를 동원한 건 SM그룹으로 삼환기업, 우방, 에스엠상선 건설부문 등 8곳을 입찰에 참여시켰다. 이어 보성산업, 한양, 파인자산관리 등의 계열사가 입찰한 보성그룹이 6개로 뒤를 이었다. 중흥그룹(새솔건설, 중흥토건, 대우건설, 중흥에스클래스, 중흥건설), 호반그룹(호반건설, 호반산업, 호반호텔앤리조트, 스카이리빙, 호반자산개발)은 각각 5개 업체를 입찰에 동원했다.

그동안 벌떼입찰에 나선 기업들은 많게는 필지당 수백억 원의 개발이익을 챙길 수 있는 공공택지를 대거 확보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중흥·호반·대방·우미·제일건설 등 5개 건설사가 LH가 분양한 공공택지 물량 178필지 가운데 67필지(37%)를 낙찰받았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런 벌떼입찰을 불공정 경쟁으로 규정하고, 연루 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원 장관은 지난 4월에는 “벌떼입찰 의심 업체는 땅끝까지 쫓아가 공공택지 시장의 공정한 질서를 세우겠다”며 엄벌 의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9월 ‘공공택지 벌떼입찰 근절방안’ 대책으로 규제지역에서 실시하는 300가구 이상의 LH 공공택지 입찰에 ‘1사 1필지(모기업과 계열사를 합쳐 1필지에 1개 사만 입찰하도록 제한)’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1사 1필지’를 법으로 규정하는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아 사각지대가 생겼다.

지난달 11일 진행된 검단 AA24 블록 추첨에서는 중흥그룹의 5개 계열사 중 하나인 새솔건설이 당첨됐다. 중흥그룹 측은 “이번 입찰건은 공급주체의 강화된 신청자격 요건에 충족된 법인이 참여했다”고 해명했다. 정원주 중흥그룹 부회장은 주택건설협회장 자격으로 국토부의 ‘주택공급 혁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강대식 의원은 “1개 필지만 조사했는데도 편법 정황이 나타난 만큼 지자체 산하 공사의 택지 입찰에 이런 벌떼입찰이 횡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공공택지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연내에 택촉법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1사 1필지 제도가 모든 공공택지에 정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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