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0조 수신경쟁 막아라" 금융당국, 은행채 발행 한도 폐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펼쳐보이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펼쳐보이는 모습. 연합뉴스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원활한 자금 확보를 위해 이달부터 은행채 발행 한도를 없애기로 했다. 고금리 예ㆍ적금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는 등 은행 자금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은행채 한도를 계속 막아둘 경우, 과도한 수신 경쟁으로 인해 대출금리가 상승하는 등 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주요국 통화 긴축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은행채 발행이 늘면서 예금ㆍ대출금리는 당분간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지난달 은행채 약 4조7000억원 규모를 순발행했다. 순발행은 채권 발행 규모가 상환 규모보다 많은 것으로, 은행들이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추가로 확보했다는 의미다. 지난해 말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경색으로 순상환 기조를 이어오다 지난 8월 순발행(3조7794억원)으로 전환한 후 9월에는 순발행 규모가 더 확대됐다. 올해 4분기(10∼12월) 만기 도래하는 은행채가 46조2902억원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4분기에도 순발행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다.

레고랜드 사태 당시 금융위원회는 초우량채인 은행채 발행을 사실상 중단시켰다. 은행채 발행이 늘면 그만큼 일반 회사채 등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금융위는 이후 차환 목적의 은행채 발행(월별 만기 도래 물량의 100%)만 제한적으로 허용해오다가 올해 3월부터는 월별 만기 도래 물량의 125%, 지난 7월부터는 분기별 만기도래액의 125%로 발행 규모를 관리해왔다. 그러다 이달부터는 발행 한도를 아예 풀기로 한 것이다.

은행권은 작년 말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예금금리를 연 5%대까지 높이며 수신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에 질세라 2금융권도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연 6%대 중반에 이르는 특판을 대규모로 판매했다. 금융권은 당시 늘어난 수신 규모를 100조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100조 재유치’ 수신 경쟁을 막으려면 채권 발행 한도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은행의 대출ㆍ예금 금리 오름세는 당분간 지속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주요국의 고금리 기조가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은행채 발행 증가는 대출금리 등 시장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주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하단은 이미 4%대로 올라섰으며, 상단 역시 7%를 넘어섰다. 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은행의 지난달 27일 기준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4.000∼6.471% 수준이다. 8월 말(연 3.830∼6.250%)과 비교해 상단이 0.221%포인트, 하단이 0.170%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혼합형 상품의 지표금리인 은행채 5년물 금리가 0.187%포인트 오른 영향이다. 예금 금리도 오르는 추세다. KB국민·우리·신한은행이 지난주 정기예금 상품 최고금리를 모두 4%대로 올렸다.

분기 말을 앞두고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등 유동성 규제 비율을 맞춰야 하는 점,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 대출 수요가 증가한 점 등도 은행권 자금 조달 필요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다만 금융위는 내년 LCR 비율을 코로나19 이전인 100%까지 되돌리는 것을 검토해왔으나, 정상화 시점을 연기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LCR이 현행으로 유지될 경우 자금 조달을 위한 은행채 발행 유인은 줄어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