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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영범의 이코노믹스

외국인 숙련 근로자 정착할 수 있어야 이민국가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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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고용허가제 넘어 ‘이민의 시대’로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 경제학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 경제학

외국인 근로자 도입과 활용이 한국 산업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건설·조선은 물론 많은 중소기업이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정부는 산업 현장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근로자 도입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 쿼터 2배로

우선 고용허가제 쿼터를 대폭 늘렸다. 올해 쿼터는 작년의 2배 가까운 11만 명이다. 내년에는 쿼터가 12만 명 이상으로 늘어난다.

외국인이 전문기능인력으로 입국할 수 있는 비자 요건도 대폭 완화되었고, 올해 도입 규모도 20배 가까이 늘었다. 용접공뿐 아니라 도장공과 선박전기원(전기공)도 송출국 현지에서 기능 검정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중급 이상 관련 자격증 취득 후 2년 이상 경력과 함께 기능 검정을 통과하여야 일반기능인력 비자를  받을 수 있으나 학사 학위 소지자에게는 기능 검정이 면제된다.

산업 현장의 인력난 해소 위해
정부, 외국인 근로자 도입 전력

불법체류 양산하는 제도 고치고
한국 체류지원 획기적 강화 필요

외국인 취업관리 체계 통합하고
숙련 인력의 장기 체류 유도해야

농어촌 지역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단기 계약으로 들어오는 계절근로자의 체류 기간도 5개월에서 8개월로 연장됐다. 연근해 어선의 외국인 선원 도입 규모는 현재 1만9000명에서 2만5000명으로 늘어났다. 이런 다각적인 노력에 따라 산업현장의 인력난은 상당히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외국인력 도입 및 관리제도 개혁의 큰 그림과 체계적인 검토 없이 인력 도입 규모만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에 대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중심이 되어 진행 중인 연구가 올해 말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내년도 도입 규모 등을 결정하여도 늦지 않을 듯한데, 너무 성급한 측면이 있다.

불법체류자 41만여 명, 일본의 5배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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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경제와 산업 상황상 외국인 근로자 확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불법 체류자 문제도 그중 하나다.

정부 통계상 2022년 말 기준 불법 체류자는 41만1000명으로 전체 체류 외국인의 18%이다. 체류 자격을 위반해 취업하고 있는 경우를 비롯해 파악되지 않은 불법 체류자도 많다. 한국의 불법체류자는 외국인 근로자 정책에서 비교 대상이 되는 일본이나 대만보다 훨씬 많다. 대만의 불법체류 외국인은 한국의 4분의 1, 일본의 불법체류자는 한국의 5분의 1 수준이다. 한국의 불법 체류자 중 사증 면제 등 단기 방문 체류자격자의 비중이 3분의 2가 된다. 이는 보다 엄격하고 실효성 있는 출입국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높은 불법 체류자 비중은 기존 제도에 상당한 허점이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노동 시장이 필요로 하는 외국 인력이 적절하게 공급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요 외국인 체류자

주요 외국인 체류자

현재 고용허가제 틀 밖에서 민간 주도 아래 도입되는 일반기능인력 체류 자격자 상당수는 불법 체류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송출국에서 현지 기능 검정을 받고 채용되는데, 일반기능인력 비자를 얻기 위한 취업 알선비가 1000만원이 넘는다. 과도한 취업 알선비를 마련하기 위해 많은 외국인 근로자가 불법 체류한다는 것은 과거 산업연수생 제도의 경험이기도 하다. 지자체가 주관하지만 지자체 역량과 인프라 부족으로 실질적으로 민간이 운영하는 계절근로자제도, 연근해 어업 등 선원 취업제도도 불법체류자 양산의 통로이다. 계절근로자 프로그램의 외국인은 10명 중 3명, 선원 취업제도의 외국인은 10명 중 4명이 불법체류자이다. 이 역시 일반기능인력 제도와 마찬가지로 취업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이유로 지적된다.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는 여러 경제적·사회적 문제를 낳는다. 산업 현장의 안전과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일례로 건설 현장에서는 중국어, 몽골어, 러시아어 등으로 작업지시를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한국어 미숙으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과 경험 부족은 안전사고 위험성을 높이는 동시에 ‘LH 사태’와 같은 부실시공의 요인으로 지목된다. 서비스업도 마찬가지다. 처우가 낮고 근무환경이 열악한 요양병원에서 필요인력을 법적으로 취업이 허용되지 않은 외국인으로 대체하는 사례가 있다. 많은 외국인이 단기 비자로 들어와 취업하고 3개월 후 출국했다가 재입국하는 형태로 취업하고 있어서 요양병원 입원자가 질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도입 20년 앞둔 고용허가제, 진화 필요

이번 기회에 내년이면 도입 20년이 되는 고용허가제에 대한 평가와 개선이 필요하다. 고용허가제는 그동안 뿌리 산업 등 중소 제조업 경쟁력 유지에 크게 기여해왔다. 고용허가제로 도입된 외국인 근로자는 30인 미만 사업체, 제조업에 주로 취업하고 있다. 공공 부문 주도로 인해 투명성은 높아지고 송출 비용은 낮아져 국제노동기구(ILO), 세계은행 등의 국제기구에서 많은 국가에 모범 사례로 제시하며 벤치마킹을 권고하고 있다.

장기 체류자 외국인 취업자 실태

장기 체류자 외국인 취업자 실태

그러나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이민의 시대’로 진입하는 현시점에서는 외국인 근로자 정책의 큰 축인 고용허가제가 한 단계 진화하여야 한다.

우선 여전히 한국어 능력 평가 위주인 선발 시스템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 구직자에 제공되는 한국 사업장 정보가 미흡한 것도 문제다. 그 결과 사업장 배치 후 다수의 고용주는 외국인 근로자의 기능이 기대치 이하여서 실망하고, 많은 근로자는 고용 조건이 기대보다 열악하다는 사실에 좌절하며 사업장 변경을 요구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송출국 현지에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기능 검정을 강화하여야 한다. 한국어 능력 시험도 산업 현장에서의 한국어 구사력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업장에 대한 정보 제공도 구직자들이 원하는 형태와 방식으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고용허가제의 탄력성도 높여야 한다. 현재 3년 이상 체류를 전제로 하는 제도를 개편해 계절근로자처럼 1년 미만의 단기적 수요에 대응하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체류 지원 예산 삭감은 문제

전반적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한국 생활에 필요한 교육과 지원 서비스도 충분하지 않다. 이들에 대한 체류 지원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여야 한다. 법적 경로를 통해 취업한 외국인 근로자는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 등 관련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러나 2020년 말 농촌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외국인 근로자 사례는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취업한 외국인 근로자도 법적, 제도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체류자격별 불법 체류 외국인

체류자격별 불법 체류 외국인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하고 사회적 네트워크가 없는 외국인 근로자 상당수는 출신국 근로자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 생활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정보 부족으로 사기 피해 등을 입은 사례가 다수 있다. 2019년 상반기 산재로 인한 사망자의 10%가 외국인 근로자였다. 미숙한 한국어 소통이 원인의 하나인 것으로 지적된다.

외국인 근로자 도입 및 체류 지원을 공공이 주도하되 일본, 대만, 싱가포르와 같이 민간의 역할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정부의 내년 예산안을 보면 외국인 근로자 체류 지원에 투입하기로 한 70억원의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 체류 지원을 위한 정부 예산은 삭감이 아니라 늘려야 한다. 정부 예산을 늘릴 수 없다면 수익자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시스템을 개편해서라도 강화하여야 한다.

현재 한국어능력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기능을 보강하거나 ‘외국인력공단(가칭)’의 설립을 통해 채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체류 지원을 강화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고용허가제 경험, ‘이민 시대’ 마중물로

무엇보다 취업 체류자격 중심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관리하는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취업 및 구직 활동을 하는 모든 외국인을 아우르는 통합적 외국인 취업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현행 출입국관리법상의 취업 체류자격 외국인이 외국인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 미만에 불과한 실정이다. 법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더 커졌다는 얘기다.

단순기능인력으로 입국한 외국 인력이 전문인력으로 성장해 한국 사회에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더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20년 고용허가제 운용의 경험을 살려 ‘이민 시대’를 여는 마중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미국, 호주 등과 같이 영구체류를 전제로 한 이민자를 받아들인 경험이 없는 한국에는 숙련 전문인력의 장기체류를 유도하는 것이 이민 국가로 가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단순기능인력으로 입국한 외국인이 국내에서 기능을 습득한 후 전문기능인력으로 체류자격을 바꿀 수 있는 비자의 쿼터가 올해 2000명에서 3만5000명으로 늘어난 것은 맞는 방향이다. 일본은 실습생으로 입국해 기능을 습득한 뒤 전문기능인력으로 전환된 경우가 80%에 달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크레이머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고령화를 극복할 해법으로 ‘이민 활성화’를 제시했다. 다양한 기능과 역량을 지닌 외국인 근로자들이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다면 한국 사회에 바람직한 이민 시대가 활짝 열릴 수 있다.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