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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현도의 퍼스펙티브

중국 일대일로 맞설 중동의 경제회랑…관련국 꿈은 제각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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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글로벌 경제 통로 경쟁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지난달 9~10일 인도에서 열린 G20 회의 기간 중 미국과 유럽, 인도, 아랍국가, 이스라엘이 따로 모여 인도-중동-유럽을 잇는 IMEC(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ndia-Middle East-Europe Economic Corridor) 건설 계획에 합의하고 이를 전격적으로 발표하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불참한 사이에 중국이 그동안 공들여 온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맞대응하는 것으로 보이는 무역로를 보란 듯이 선보인 것이다.

인도-중동-유럽 잇는 무역 루트
미국 주도로 아랍·이스라엘 참가
화물 배송 시간 40%나 절감 가능
중·러·튀르키예·중동 등 셈법 분주

IMEC은 인도 문드라 항구에서 배에 실은 물건을 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 항구에 내려 다시 철도로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을 거쳐 이스라엘 하이파 항구까지 운송한 후 다시 배로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등 유럽으로 배송하는 길이다. 이란이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호르무즈 해협도, 크고 작은 사고로 운송에 차질을 빚는 수에즈 운하도 거치지 않기에 비교적 안전하고 운송 효율성이 큰 무역로다. 인도에서 유럽까지 화물을 배송하는 시간도 기존 소요 시간보다 40% 더 빠르다. 더욱이 최신 광섬유 케이블 네트워크와 수소 파이프라인까지 함께 깔아 관련국 간 우호 관계는 물론 상생의 경제 발전을 이끄는 기반으로 만들 계획이다.

환영하면서도 찜찜한 중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9월 G20 정상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운데),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9월 G20 정상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운데),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은 IMEC이 세계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환영한다. 그러나 회랑이 일대일로와 협력이 아니라 경쟁에 방점을 찍은 미국의 의도가 불편하기만 하다. 미국이 중국을 의식하여 새로운 무역로에 자국의 안보적 고민을 담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동에서 잠시 주춤하다 영향력을 상실한 미국이 영향력을 되찾고자 쿼드(QUAD)에 이어 IMEC 건설을 주도하여 중국, 러시아, 이란을 봉쇄한다는 의심이다. 중국과 관계가 좋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중국을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며 회랑을 활용하겠지만, 일대일로에 참가한 이탈리아는 중국과 작별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2013년에 시작한 중국의 일대일로는 150개국 이상이 3000여 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비용이 1조 달러에 이르는 거대하고 야심 찬 사업으로 2049년 완공이 목표인데, 현재 중국의 어려운 경제 상황과 맞물려 진전이 더딘 상태다.

더욱이 중국과 얼굴을 붉히는 인도가 IMEC을 고대 인도와 로마 간 ‘향료길’의 재현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비단길과 비교하니 중국은 내심 불편하다. 인도에서는 비단길이 근대 서양에서 만든 용어로 실체가 불분명한 데다 낙타로 소량의 물건만 옮긴 정도였다고 평가절하한다. 반면 인도-홍해-로마제국으로 난 향료길은 로마를 제외한 지역 중 인도에서 로마 주화가 가장 많이 발굴됐다는 점을 들어 역사적 실체가 확실하고, 배를 사용하였기에 비단길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거래량이 많았다고 자랑스러워한다. 그런 무역로를 아라비아반도를 지나는 경로로 다시 재현할 수 있다고 기뻐한다.

그러나 인도는 ‘향료길’ 부흥보다 중국 일대일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파키스탄에 결정타를 선사했다는 사실이 더 짜릿할 것이다. 새로운 경제 회랑의 최대 피해국이 파키스탄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IMEC은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China-Pakistan Economic Corridor)을 무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이 같은 무슬림 다수 국가인 GCC(걸프협력회의)에 투자를 요청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미국이 왜? 고개 갸우뚱하는 러시아

러시아는 겉으로나 속으로나 모두 새로운 회랑을 반긴다. 주판을 튕겨보면 러시아에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경제제재를 우회하기 위하여 전통적인 페테르부르크-지중해-홍해-인도 해양로 대신 국제남북교통로(INSTC, The International North-South Transport Corridor)를 마련하여 가동을 시작하였다. 러시아에서 열차로 이란을 거쳐, 이란에서 해로로 인도에 도달하는 무역 통로다. 운송 시간이 기존 40일에서 2주로 대폭 줄어드는 획기적인 통로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방법은 세 가지다. 러시아에서 카스피해까지는 열차로, 카스피해에서는 이란으로는 배로, 이란에서는 열차로 남쪽 항구 반다르압바스, 차바하르까지 가서 다시 배로 인도 뭄바이로 이동한다. 카스피해를 거치지 않고 서쪽으로는 러시아-아제르바이잔-이란을, 동쪽으로는 러시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이란을 열차로 이은 뒤 이란에서 인도는 배로 연결하는 통로가 있다. 지난 8월 말에 처음으로 러시아에서 열차에 실은 36개의 컨테이너가 투르크메니스탄-이란 반다르압바스에 이어 다시 배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 항구에 도착하였다. 러시아는 인도와 새로운 블라디보스토크-첸나이 무역 해로도 열어 기존 운송 시간을 40일에서 24일로 줄일 예정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IMEC이 오래전부터 논의한 것으로, 러시아의 INSTC와 연결하여 활용도가 높은 통로라고 평가하면서 러시아에 전혀 해롭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미국이 경제적 이익이 크지 않은데도 막판에 굳이 끼어들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의 목표가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고 의심한다. 인도와 촘촘하게 연결망을 만드는 러시아가 미국이 끼어든 경제 회랑에서 큰 손해를 볼 일은 없다는 자신감도 보인다.

튀르키예, “나를 빼고는 안 돼”

튀르키예는 자국을 거쳐야 가장 효과적이라며 새로운 경제 회랑에 불만이 크다. 심하게 따돌림을 당했다는 표정이다. 사실 튀르키예는 페르시아만의 아랍국가와 이란-이라크 바스라-튀르키예-유럽으로 이어지는 페르시아만-튀르키예 회랑을 만들기로 이라크와 합의하였다. 아랍에미리트나 카타르에서 이라크와 튀르키예까지 연결하여 유럽으로 화물을 나르거나, 이란-이라크-튀르키예 회랑으로 유럽에 닿는 구상이다. 중국도 미국 제재를 받는 이란보다 안전한 이라크를 활용하려 하였다. 그런데 이번 IMEC에 이라크 자리는 없다.

튀르키예는 이른바 ‘중앙 회랑(The Middle Corridor)’이라고 불리는 ‘카스피해 국제회랑(The Trans-Caspian International Transport Route)’에도 관심이 많다. 중국·남아시아-카자흐스탄-카스피해-아제르바이잔-조지아-튀르키예로 이어지는 무역로다. 경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와 이란을 거치지 않기에 중국에도 유리하고 화물 운송 속도도 빠르다. 아제르바이잔과 튀르키예 사이를 가로막는 아르메니아를 통과하지 않고 조지아로 우회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관심이 부쩍 커졌으나 관련 국가, 특히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의 열정이 미지근하다. 여름철 카스피해의 거친 물살로 화물 운송이 지연될 가능성도 크다.

튀르키예는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아르메니아를 열차로 통과하는 ‘장게주르(Zangezur) 회랑’을 만들어 튀르키예의 카르스(Kars)까지 이으려 한다. 범튀르크주의라는 대의를 실현하면서 중앙아시아의 강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의지가 담겼다. 아르메니아와는 합의했지만, 철로가 이란의 북쪽 국경선에 바짝 붙어 있다고 이란이 반대한다. 이란에는 아제르바이잔 주가 있고, 그곳에는 튀르크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이 살기에 아제르바이잔 민족주의에 불을 지필 수 있다. 튀르키예의 영향력이 중앙아시아에 미칠수록 이란이 설 공간은 사라진다. 이란도 IMEC이 썩 달가울 리 없다. 러시아의 INSTC 회랑에서 이란의 역할은 줄진 않겠지만, 새로운 회랑이 주적 이스라엘에 이롭기 때문이다.

‘무적의 무극 협력’ 꿈꾸는 아라비아

IMEC으로 미국의 중동 주도권이 부활했다고 볼 수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미국에 줄기차게 중동 정책을 바꾸라고 요구해왔고, 이번 경제회랑은 미국의 화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전통적인 친미 국가인 양국은 서로 세계 경제의 허브가 되고자 꿈꾼다. BRICS에 가담한 이유다. 특히 아랍에미리트가 적극적이다. 홍해 건너 아프리카, 유럽으로도 이어지는 연결망의 중심 국가가 되려 한다. 어떠한 나라도 지배력을 행사하지 않고 서로 협력하며 적(敵)이 없고 극(極)이 없는 중동을 꿈꾼다. 경제회랑이 시작일 수 있다. 양극화해 가는 세상에서 ‘무적(無敵)의 무극(無極) 협력을 꿈꾸는 중동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고민해볼 시점이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