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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담 포수 필요했던 ‘너클볼의 대명사’ 팀 웨이크필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너클볼로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호령했던 팀 웨이크필드가 2일(한국시간) 별세했다. 고인의 현역 시절 투구 장면. EPA=연합뉴스

너클볼로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호령했던 팀 웨이크필드가 2일(한국시간) 별세했다. 고인의 현역 시절 투구 장면. EPA=연합뉴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화려했던 너클볼을 던졌던 팀 웨이크필드가 2일(한국시간) 세상을 떠났다. 뇌종양을 이기지 못하고 57세의 일기로 마운드와 영원히 작별했다.

웨이크필드의 소속팀이었던 보스턴 레드삭스는 이날 “웨이크필드가 뇌종양을 앓다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 별세 소식을 전하게 돼 유감이다”고 밝혔다.

1966년 미국 플로리다주 멜버른에서 태어난 웨이크필드는 1988년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부터 지명을 받았다. 입단 당시 포지션은 1루수였지만, 타격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투수로 전향했다.

포지션 변경은 성공적이었다. 마이너리그에서 기량을 갈고 닦은 뒤 1992년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았다. 이후 1995년 보스턴으로 이적하자마자 16승을 거두면서 붙박이 선발투수가 됐고, 4년 연속 10승 이상을 달성했다.

위기도 있었다. 1999년과 2000년 제구 난조로 2년 연속 6승만 기록했다. 그러자 웨이크필드는 통산 318승을 쌓은 ‘너클볼의 달인’ 고(故) 필 니크로(2020년 작고)를 찾아가 개인교습을 받았고, 자신만의 구종으로 터득해 화려하게 재기했다.

이후 웨이크필드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너클볼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언제 어디서 변할지 예측할 수 없는 공으로 상대 타자들을 제압했다. 2002년부터 다시 4년 연속 10승을 기록했고, 2007년에는 1999년과 타이인 개인 최다 17승을 거뒀다. 이어 은퇴 시점을 한참 넘긴 45살이던 2011년에는 정확히 200승을 달성한 뒤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보스턴에서 함께 활약했던 팀 웨이크필드(오른쪽)와 제이슨 베리택. EPA=연합뉴스

보스턴에서 함께 활약했던 팀 웨이크필드(오른쪽)와 제이슨 베리택. EPA=연합뉴스

메이저리그 622경기에서 200승 180패 평균자책점 4.41의 기록을 남긴 웨이크필드는 현역 시절 직구보다 너클볼을 더 많이 던지는 투수로 유명했다. 시속 120㎞대의 느린 직구는 사실상 유인구였고, 나비처럼 유영하는 너클볼로 상대 타자들의 방망이를 끌어냈다. 독특한 투구폼에서 나오는 이 공은 워낙 변화무쌍해 보스턴의 주전 안방마님이었던 제이슨 베리택이 아니라 덕 미라벨리가 웨이크필드 전담 포수로 나설 정도였다.

웨이크필드는 은퇴 이후 간간이 방송 해설자로 나오며 야구팬들과 만났다. 그러나 뇌종양이라는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마운드와 이별했다. 웨이크필드의 뇌종양 투병 소식은 가족들의 뜻을 따라 최근에야 알려졌다.

팀 웨이크필드. EPA=연합뉴스

팀 웨이크필드. EPA=연합뉴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이타적인 동료였던 웨이크필드가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우리 시대 가장 독특했던 투수이자 보스턴의 황금기를 이끈 주역이었다. 또, 지역사회에도 늘 헌신하는 공로자였다”고 애도했다.

존 헨리 보스턴 구단주도 “웨이크필드만이 지녔던 불굴의 정신력은 고인의 너클볼만큼이나 전설적이었다. 또, 기록을 넘어서 따뜻한 마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선수였다. 웨이크필드의 별세가 우리에게 깊은 슬픔을 안겨줬다”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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