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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부터 10월이면 '노벨상 앓이'…한국 왜 노벨상 집착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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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사이언스&] 노벨 과학상의 궁금증 

스웨덴 출신 유전학자 스반테 페보(왼쪽)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이 지난해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스웨덴 출신 유전학자 스반테 페보(왼쪽)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이 지난해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고 있다.[AFP=연합뉴스]

‘폭발약을 발명한 스웨덴인 노벨 씨가 창설한 상금으로, 매년 물리학과 화학ㆍ의학ㆍ문학,  그리고 세계 평화에 노력한 인사에게 팔천 파운드씩 증여하는 다섯 개의 상이다. 세상에 명예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노벨상을 타는 것 같이 명예로운 일은 없다. 서양 사람은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동양사람으로는 겨우 인도의 시성이라는 타고르 박사 한 사람 뿐이다. 조선인으로서 노벨상을 탈 만한 사람이 출생하기까지는 지식계급이 아직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겠다.’  

국내 신문에 등장하는 최초의 노벨 과학상 관련 글(동아일보. 1923년 9월13일자 1면)이다. 1923년. 100년 전 일제강점기 시절인 그때도 이 땅에선 노벨상을 부러워했다. 심지어 짧은 글 안에 노벨상을 탈만한 지식계급이 없다는 한탄까지 들어간다. 한 세기가 오롯이 지났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2000년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나마 한국을 노벨상 수상 국가 명단에 올렸다.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 단상에 붙어있는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명판 겸 노벨상 메달 모습. [AFP=연합뉴스]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 단상에 붙어있는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명판 겸 노벨상 메달 모습. [AFP=연합뉴스]

10월. ‘노벨상 앓이’의 계절이 돌아왔다. 2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3일 물리학상, 4일 화학상까지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이어진다. 이어 5일에는 문학상, 6일 평화상, 9일 경제학상 순으로 올해 수상자들이 발표된다. 올해 우리나라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을까. 노벨상 시즌이 다가오면 정부는 물론 학계 등 곳곳에서 노벨상을 둘러싼 행사가 이어진다.  지난달 24일에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주최로 노벨상 수상자들과 토론하는 행사가 서울에서 열리기도 했다.  왜 우리는 이토록 노벨상 앓이를 할까. 노벨상은 무엇일까. 물음을 빌려 답을 찾아본다.

① 노벨상은 왜 최고의 상인가

노벨상, 특히 노벨 과학상의 권위는 수상자에게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20여년 노벨상 역사를 돌이켜 보면 세계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받을만한 사람이 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벨상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임경순 포항공대 명예교수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의 리스트를 보면 전통 과학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며 "물리학의 역사를 쓴다면 노벨상 수상자를 중심으로 쓰면 틀리지 않다"고 말했다. 그외의 요소도 있다. "인류에 공헌한 사람을 위해 유산을 써달라"는 알프레드 노벨의 의미있는 유언과, 100년 넘게 이어오는 거액의 상금 등도 노벨상의 권위를 지켜오는 요소다. 지금도 단독 수상자에겐 1000만 크로나(약 12억4000만원)가 주어지지만, 최초인 1901년 당시 상금도 15만 크로나에 달했다. 노벨위원회는 물가상승을 고려해 상금액의 실질 가치를 120년 전과 거의 비슷하게 맞추고 있다. 결국 노벨위원회의 철저하고 지속적인 관리가 상의 권위를 한세기 넘게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란 얘기다.

지난달 2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이 모이는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 2023'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는 마이클 레빗 스탠퍼드대 교수(2013년 노벨화학상), 조지 스무트 홍콩과기대 교수(2006년 노벨물리학상),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맨체스터대 교수(2010년 노벨물리학상), 하르트무트 미헬 막스플랑크연구소 소장(1988년 노벨화학상) 등 노벨상 수상자들이 참석해 미래교육에 관해 논의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이 모이는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 2023'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는 마이클 레빗 스탠퍼드대 교수(2013년 노벨화학상), 조지 스무트 홍콩과기대 교수(2006년 노벨물리학상),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맨체스터대 교수(2010년 노벨물리학상), 하르트무트 미헬 막스플랑크연구소 소장(1988년 노벨화학상) 등 노벨상 수상자들이 참석해 미래교육에 관해 논의했다. [연합뉴스]

② 노벨상은 누가 어떻게 뽑나

노벨상 선정 작업은 발표 1년여 전부터 시작한다. 노벨위원회는 그해 수상자 발표 한 달 전인 9월에 각 분야 별로 전세계 전문가 1000명에게 추천 의뢰서를 발송한다. 위원회는 이렇게 들어온 추천서를 300명 정도로 추린다. 이후 토론과 심사를 거쳐  7월까지 후보를 압축하고, 8월 말에 최종 후보 1명을 투표로 정한다. 이어 9월에 30명으로 구성된 분과별 전문가 집단의 평가를 거쳐 10월 왕립한림원에서 최종 결정한다. 선정 과정은 비밀리에 진행되며, 수상자도 발표 직전에 통보 받을 만큼 보안이 철저히 유지된다. 심사 과정은 규정에 따라 50년 동안 공개되지 않는다.

③ ‘노벨상 앓이’는 한국만의 현상인가

노벨상 수상 소식은 선진국 언론들도 주요 소식으로 다룬다.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7일 ‘2023년 노벨상에 대해 알아야 할 것’(What to Know About the 2023 Nobel Prizes)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노벨상 시즌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지난달 24일 3개 부문 노벨과학상 수상이 유력한 자국 과학자들을 소개하는 등 최근 들어 연일 노벨상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은 과학상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탓에 매년 ‘앓이’를 하는 셈이다. 노벨 과학상은 우리 역대 대통령들의 단골 발언이기도 했다. "노벨상이 나올 때가 됐다. 한번 나오면 이제 쏟아질 것"(윤석열),  "일본이 22명이 노벨과학상을 받는 동안에 우리나라는 후보자에도 끼지 못하고 있다”(문재인). "우리도 기초과학에 더 투자를 하면 10년 안에 노벨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이명박)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와줘야 한다".(노무현) 임경순 명예교수는 “한국이 유독 노벨상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전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만큼 노벨상을 갈구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2018년 12월 10일 스웨덴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일본의 혼조 다스쿠 교토대 명예교수가 전통 사무라이 복장을 하고 단 위에 올랐다. 그는 면역항암제 개발에 초석을 마련한 공로로 제임스 엘리슨 미국 텍사스대 교수와 함께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AFP=연합뉴스]

2018년 12월 10일 스웨덴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일본의 혼조 다스쿠 교토대 명예교수가 전통 사무라이 복장을 하고 단 위에 올랐다. 그는 면역항암제 개발에 초석을 마련한 공로로 제임스 엘리슨 미국 텍사스대 교수와 함께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AFP=연합뉴스]

④ 노벨상은 공정한가

의견이 갈린다. 공정하지 못하다는 주장의 대표적 논란은 ‘서구 중심적’ 과 ‘남성 중심적’이란 평가다. 실제로 국가별 노벨상 수상 순위를 보면 1위 미국에 이어 영국-독일-프랑스-스웨덴-러시아(소련)-일본 순으로, 6위까지 서구 일색이다. ‘남성 중심적 노벨상’은 숫자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올 3월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노벨상 수상자가 전체의 3%에 지나지 않는다"며 "수 세기에 걸친 가부장적 인습, 차별, 해로운 관습이 과학과 기술 영역에서 거대한 성차별을 낳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괴란 한손 스웨덴 왕립 과학한림원 사무총장은 “우리는 수상자들이 성별이나 인종 때문이 아닌, 가장 중요한 발견을 했다는 이유로 상을 받길 바란다”는 말로 노벨상의 공정성을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노벨상이 120여 년간 ‘세계 최고의 상’이란 권위를 이어온 만큼 다른 상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장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노벨상이 서구 중심적이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론 매우 공정하게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며 “ 동양인이라고 해서 될만한 사람이 되지 않고 서구사람들이 대신 수상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⑤ 노벨상 외에 다른 권위 있는 과학상은 없나

노벨상 외에도 권위 있는 과학상이 적지 않다.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7월 허준이 고등과학원 교수 겸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필즈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상금은 1만5000 캐나다 달러(약 1500만원)다. 컴퓨터과학 분야엔 1966년부터 시작한 ‘튜링상’(Turing Award)이 있다. 미국컴퓨터협회(ACM)에서 컴퓨터과학 분야에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컴퓨터과학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린다. 영국의 수학자, 컴퓨터과학자이며 현대 컴퓨터과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앨런 튜링의 이름을 땄다. 구글이 매년 총 100만 달러의 상금을 후원하고 있다. 이밖에도 옛 소련 출신 물리학자이자 억만장자인 유리 밀너가 2012년 만든 브레이크스루상(Breakthrough Prize, 상금 300만 달러),  노르웨이의 수학자 닐스 헨리크 아벨의 이름을 딴 상으로, 2003년부터 노르웨이 왕실에서 수여하는 아벨상(Abel Prize, 상금 68만5000 유로) 등도 역사는 짧지만 명성이 높다.

⑥ 한국은 노벨상을 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노벨 과학상은 그간 누구도 내딛지 못한 영역을 개척하는 선구자적 연구를 수행하고, 그 연구가 인류에 지대한 공헌은 경우에 주어진다. 『최초의 질문』의 저자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2011년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설립하는 등 노벨상에 부합하는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를 위한 투자를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평가 체제와, 올해 들어 생긴 일이지만 R&D 예산 삭감 등 부정적 요인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노벨상 발표 일정

10월 2일 생리의학상
      3일 물리학상
      4일 화학상
      5일 문학상
      6일 평화상
      9일 경제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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