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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g 마약도 찾아내는 'K탐지견'…그중 두 마리가 태국 간 까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0일 인천공항본부세관 국제우편통관센터에서 마약탐지견 '딜론'이 컨베이어 벨트를 지나던 우편물에서 마약이 들어있는 걸 찾아낸 뒤 가만히 멈춰선 모습. 인천=정종훈 기자

지난달 20일 인천공항본부세관 국제우편통관센터에서 마약탐지견 '딜론'이 컨베이어 벨트를 지나던 우편물에서 마약이 들어있는 걸 찾아낸 뒤 가만히 멈춰선 모습. 인천=정종훈 기자

지난달 20일 오후 4시, 인천공항본부세관 국제우편통관센터. 3살짜리 마약탐지견 '딜론'이 빠르게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몇초 만에 지나가 버리는 고위험 해외 우편물의 냄새를 맡기 위해서다. 바로 옆에 선 탐지요원(핸들러) 박동민 주무관도 주기적으로 우편물을 툭툭 치면서 주의를 환기했다.

20분 넘게 우편물 수천개를 확인하던 딜론은 마약이 포함된 우편물이 나오자 가만히 멈춰섰다. 박동민 주무관이 우편물 내부를 확인하니 마약이 들어있었다. "잘했어." 박 주무관은 업무를 마친 딜론을 쓰다듬으면서 '더미'라고 부르는 링 모양 놀잇감을 꺼냈다. 그는 "마약탐지견은 마약을 찾는 업무도 일종의 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투철한 사명감으로 마약을 찾아내니까 최고의 선별 요원인 셈"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마약과의 전쟁'을 이끄는 숨은 공신은 마약탐지견이다. 2일 관세청에 따르면 딜론을 비롯한 38마리의 마약탐지견이 인천공항 등 전국 공항·항만에 배치돼 활약하고 있다. 사람과 비교해 최대 1만배까지 후각이 발달한 마약탐지견은 해외에서 교묘하게 밀수하려는 마약을 빠르게 찾아내는 데 특화됐다. 눈으로 보기도 어려운 0.1g 수준의 마약을 탐지할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단속한 마약류만 올해 들어 51건, 8.1㎏에 달한다(8월 기준). 이들 탐지견과 함께 국내 마약 단속 역량도 세계 최고 수준이란 평가를 받는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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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어선 안 되는 '필수 견(犬)력'이지만, 불과 30여년 전엔 마약탐지견이란 개념조차 없었다. 그러나 1987년 김포공항에서 폭발물 사고가 난 게 터닝포인트가 됐다. 다음 해 열리는 서울올림픽 대비 차원에서 미국으로부터 폭발물 탐지견 6마리를 기증받았다. 올림픽이 끝난 뒤엔 이들의 기능이 마약 탐지용으로 전환됐다고 한다. 탐지견 육성 인프라가 부족해 초반엔 선진국의 도움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외국 탐지견들이 들어온 지 36년 만에 한국은 마약탐지견 공여국으로 위상이 바뀌었다. 관세청은 지난 8월 태국 관세총국에 마약탐지견 '제이크·조크' 두 마리를 무상 기증했다. 국내 탐지견이 해외로 진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마약 밀수가 많은 태국에서 먼저 탐지견 기증을 요청했고, 관세청이 받아들여 성사됐다. 이들이 태국 최초의 마약탐지견이 된 것이다.

태국으로 간 탐지견들은 과일 명을 딴 '두리안·카눈'이란 새 이름을 받았다. 현장에 배치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3㎏이 넘는 마약을 적발했다고 한다. 김동규 관세인재개발원 탐지견훈련센터 훈련교관(주무관)은 "상대적으로 훈련받을 때 우수했던 탐지견들을 골라 태국으로 보냈다"면서 "딸을 시집보낸 느낌이 든다. 태국에서의 활약상을 들으면 뿌듯하지만, 앞으로 얼굴을 못 보니 시원섭섭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탐지견훈련센터 내 모의 공항 훈련장에서 트렁크 속에 숨어있는 마약을 찾고 있는 마약탐지견 '알파'. 인천=정종훈 기자

지난달 20일 탐지견훈련센터 내 모의 공항 훈련장에서 트렁크 속에 숨어있는 마약을 찾고 있는 마약탐지견 '알파'. 인천=정종훈 기자

이처럼 K-마약탐지견 실력이 높은 배경엔 탐지견 전담 인력들의 묵묵한 조련이 있다. 23년째 운영 중인 인천 소재 탐지견훈련센터엔 69마리가 모여 있다. 태어난 뒤 3개월까진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4개월~12개월 차엔 탐지견으로 가져야 할 소유욕·집중력·활동성·친화력 등을 종합적으로 키운다. 그 후 탐지견으로서 자질이 확인되면 16주간의 집중 훈련을 거치고 최종 평가를 거쳐 공항·항만 등에 배치된다. 전문 자격증을 가진 훈련교관들이 1명당 평균 2~3마리를 맡아 밤낮으로 챙긴다.

이날 마약탐지견 '알파'는 공항 모의 훈련장에서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뛰어다녔다. 실제 공항을 본뜬 이곳에서 불과 몇초도 안 돼 컨베이어 벨트 위 여행 트렁크의 대마 16.4g, 사람 바지 주머니 속 코카인 90g을 감지해냈다. 김동규 주무관은 "마약탐지견들은 야외 초지 훈련부터 시작해 기초탐지, 화물대, 컨베이어 벨트 등의 훈련을 차례대로 마무리하면 공항·항만으로 취업하는 셈이다. 해외에서도 우리 탐지견 훈련을 보려고 많이 견학하러 온다"고 말했다.

물론 탐지견들도 실제 현장에 배치되면 시행착오를 거친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고 돌발 상황도 많은 공항 입국장, 우편물이 워낙 다양하고 오염되기 쉬운 국제우편센터 등에 적응하려면 반년가량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박동민 주무관은 "입국장에서 근무하면 마약탐지견이 무서워 도망가는 사람도 있고, 발로 막차는 경우도 생긴다"면서 "국제우편센터도 끊임없이 밀려들어 오는 우편물 냄새를 계속 맡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근무를 마친 마약탐지견 '딜론'과 놀아주는 탐지요원(핸들러) 박동민 주무관. 쉬는 시간엔 근무지인 국제우편통관센터 내에서 '더미'라고 부르는 링 모양 놀잇감을 활용하면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 인천=정종훈 기자

지난달 20일 근무를 마친 마약탐지견 '딜론'과 놀아주는 탐지요원(핸들러) 박동민 주무관. 쉬는 시간엔 근무지인 국제우편통관센터 내에서 '더미'라고 부르는 링 모양 놀잇감을 활용하면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 인천=정종훈 기자

그래서 탐지요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훈련교관 손을 떠난 마약탐지견은 9~10살쯤 은퇴할 때까지 담당 핸들러와 조를 짜서 함께 근무한다. 마약탐지견이 마약을 찾아내면 탐지요원이 선별 검사를 해서 적발하는 만큼 둘의 호흡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탐지요원이 휴가 가면 탐지견도 휴가, 비번일 때도 같이 비번이다. 그렇게 평균 7년을 붙어 다니면 자연스레 '단짝'이 된다.

그러다 보니 탐지요원은 자신과 함께하던 탐지견이 은퇴하거나 죽으면 눈물을 쏟아내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공직에 봉사한 마약탐지견이 은퇴하면 적응 훈련 등을 거쳐 일반 가정으로 분양된다. 때로는 자신과 함께하던 핸들러 집에 분양되기도 한다. K-마약탐지견을 위한 예우인 셈이다. 정부도 내년 탐지견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후견사 개선, 사료·영양제 지원 등에 약 8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김동규 주무관은 "키운 정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면서도 "국가를 위해 노력했으니 은퇴한 뒤엔 '좋은 집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 이렇게 응원해준다"고 말했다. 올해 24년차 베테랑인 박동민 주무관도 "탐지견이 죽은 걸 직접 보면 눈물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딜론은 나의 파트너이자 직업인이고, 아들·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가족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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