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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직격인터뷰 | 박용진 민주당 의원의 일갈

중앙일보

입력

“윤석열 정부 ‘급발진’은 민주당이 국민 신뢰 잃었기 때문”  

“尹 대통령, 국민 분열시키는 장관들 오히려 잘한다고 격려하는 현실인식부터 문제”
“2030 세대, 제 식구 감싸기 급급한 이재명 대표 체제에 민주당 지지 이유 못 찾아”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내년 4월 총선은 내 편만 바라보는 이념이 아닌 민생에 의해 판가름날 것이라고 본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내년 4월 총선은 내 편만 바라보는 이념이 아닌 민생에 의해 판가름날 것이라고 본다.

야당 국회의원으로 신분이 바뀐 뒤 박용진(52) 민주당 의원을 처음으로 인터뷰했다. 처음 제의했을 때 보좌관은 “전달은 하겠지만, 아시다시피 당을 둘러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마 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득점할 때가 아니라 실점하지 않을 때’라는 뜻으로 들렸다. 하지만 며칠 후 예상을 깨고, “만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9월 11일 오전 여의도 의원실에서 만난 박 의원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정치인의 용기”였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물론 이재명 대표 체제의 민주당, 팬덤정치를 향해서도 선명하게 할 말을 했다.

‘정치는 세(勢)’라는 명제는 한국 정치의 거스를 수 없는 법칙처럼 통한다. 하지만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아웃라이너’는 드물지만 정치판에도 존재한다. 박 의원은 어느 진영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말들을 작심한 듯 토로했다.

“민주주의는 똑똑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

박용진(오른쪽) 민주당 의원은 한동훈(왼쪽) 법무부 장관과 얽힌 언쟁의 본질은 민주주의 시스템에 관한 시각차라고 생각한다.

박용진(오른쪽) 민주당 의원은 한동훈(왼쪽) 법무부 장관과 얽힌 언쟁의 본질은 민주주의 시스템에 관한 시각차라고 생각한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작금의 한국 정치에 대해 ‘혐오하는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어쩌다 우리 정치에서 ‘정치’가 실종됐을까?

“대통령제 5년 단임제의 수명이 다한 것 아닌가 싶다.”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고 보는 건가?

“우리 국민의 가장 큰 불행은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해서 대통령을 뽑아놓고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데 있다. 임기 5년을 가지고 30년의 장기 비전을 준비할 수 있겠나? 게다가 승자독식 시스템에서 49%의 낙선된 세력은 완전히 배제된다.”

그럼 현실적 대안은 무엇인가?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야 한다. 영도자적 리더십으론 나라를 못 끌어간다. 아이들 시험 문제까지 대통령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과 행정부와 국회 간 권력 분산을 보다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하고, 총리 추천권을 국회가 가지면 자연스럽게 내각과 대통령실의 견제와 균형이 이뤄진다.”

제도가 아무리 바뀌어도 의원들이 대통령만 바라보는 한,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여당이 할 말을 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자기가 무슨 왕인 줄 착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우격다짐식 국정 운영에도 ‘이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여당 의원 하나가 없지 않나. 그래서 내가 ‘국민의힘 의원 100명이 유승민 전 의원 1명만도 못하다’라고 발언한 것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가치판단이 다르겠지만, 윤 정부가 독단적으로 비쳐진다면 엘리트주의적 요소를 띠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 아닐까?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국회 상임위에서 질의응답하면서 법무부 특별활동비에 대해 얘기했다. 한 장관이 ‘민주당의 지적은 정략적’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국회는 원래 예산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는 곳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의원님께서 그렇게 선의로 얘기하니 검토하겠다’고 하더라. 황당하더라.”

한 장관이 비꼰 것으로 들렸나?

“아니다. 내가 볼 때 진심으로 들렸다. 문제는 삼권분립 시스템에서 국회의원이 아무리 모자란 사람, 문제 많은 사람이라도 행정부 예산에 대한 집행을 감시할 수 있는 게 민주주의 시스템이다. ‘특별활동비를 전 정부 때보다 아껴서 잘 쓰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식은 장관이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한 장관이 의회를 내려다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 장관은 민주주의 시스템을 잘 모른다. 그동안 수사 권한으로 나쁜 사람 잡는 역할만 생각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도, 우리도 시스템의 도구일 뿐이다. 선이냐, 악이냐, 정략이냐를 왜 본인이 선택하고 판단하려고 하나? 민주주의는 똑똑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 국민에 의해서 통제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다. 착각하면 안 된다.”

국민의힘이 여당답지 못하다고 말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을 떠올린다면 적어도 민주당 의원들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

“지금 국민의힘은 그냥 ‘예스맨’ 정당이다. 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전 대표가 있다지만 의원이 아니다. 당시 민주당은 표결로, 의총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반면 거기는 누가 있나?”

“갈등 유발이 장관이 할 일인가?”

2023년 6월 윤석열(왼쪽) 대통령은 보훈처를 보훈부로 승격시키며 박민식(오른쪽) 장관을 임명했다. / 사진:대통령실 사진기자단

2023년 6월 윤석열(왼쪽) 대통령은 보훈처를 보훈부로 승격시키며 박민식(오른쪽) 장관을 임명했다. / 사진: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 정부의 ‘이념 드라이브’가 거세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이 한동훈 장관이나 원희룡 보훈처 장관 못지않게 존재감이 부각되는 듯하다.

“국민을 둘로 나누고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 장관의 할 일인가? 행정을 담당하는 장관에게 어떻게 진영이 있을 수가 있나? 이럴 거면 장관 하지 말고, 유튜버 하면 된다. 원희룡, 박민식 다 선거 나올 거 아닌가? 그런 장관들 보고 잘한다고 격려하는 대통령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책임질 수 있을까. 집권 후 1년이 좀 넘었는데 벌써 윤 대통령은 거울 보고 혼자 대화하는 단계에 온 것 같다.”

현실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럴 만하니까 그러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도 되니까 그러는 거다. 야당도 무섭지 않고, 여당에는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다. 지금은 아예 국민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확실하게 지지층을 결집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을 수 있다.

“총선이 중요한 사람이 저렇게 하나? 나는 총선을 생각 안 하니까 저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대통령은 자기가 주도권을 쥐고 가면 모든 게 잘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그것만 분명하지 나머지는 솔직히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야당 대표가 ‘하필’ 이재명이라서 더 자신감을 갖는 것 아닐까?

“그렇게 ‘믿는’ 구석도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지도 못하니까, 어떻게든 대통령이 주도권을 쥐고 가도 근소하게나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다수당인 민주당은 힘이 있지 않나?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해야 ‘급발진 정부’를 저지할 수 있다고 본다. 민주당이 2016년 총선에서 딱 1석을 이겼다. 그래서 정세균 의원이 국회의장을 할 수 있었고, 나중에 탄핵도 처리가 가능했다. 그 당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뭘 했었나. 민주당의 밉상, 불신을 덜어내는 것만 했다. 그 짧은 시간에 체질 개선을 할 순 없다. 그냥 사람 물갈이하는 척을 한 것이다. 그런 걸 국민도 다 안다. 근본적으로 민주당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척이라도 하는 세력이 ‘진박 감별사’ 운운했던 세력보다 낫게 보인 것이다. 내년 판도 똑같을 것이다. 국민에게 호응하는 척이라도 하는 세력이 이길 것이다.”

과연 지금의 민주당은 그런 척이라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단호하게) 안 하고 있다. (코인 보유 의혹에 연루된) 김남국 의원 처리를 저렇게 하면 어떡하나. 민주당을 향해 불신이 쌓여 있는 사안들에 대해 감싸기만 하고 있다. 자꾸 언행 불일치의 모습을 보여주니까 ‘내로남불 정당’, ‘방탄정당’으로 계속해서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다.”

“민주당, ‘오늘만 사는 정당’ 돼버려”

이재명(왼쪽) 민주당 대표의 단식 현장은 민주당 의원들로 문전성시다. 공천권을 쥔 이 대표에게 줄을 서려는 정치 행위라는 시각도 있다.

이재명(왼쪽) 민주당 대표의 단식 현장은 민주당 의원들로 문전성시다. 공천권을 쥔 이 대표에게 줄을 서려는 정치 행위라는 시각도 있다.

박 의원의 이런 문제 제기에 당내에서도 호응이 있나?

“많은 의원들이 나와 같은 인식을 공유한다. 문제는 당 지도부가 제대로 된 선택과 판단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모습을 보이려는 척이라도 하는 정치가 안 되는 데에는 지금 지도부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중도층이 민주당을 지지할 필연성이 안 보인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민주당이 지금 2030 세대에게 어떻게 보이겠나. ‘김남국 사태’에 대해 저렇게 대응하고, 돈 봉투 의혹에 대해 흐지부지 대응하고 이러니, 2030 세대는 언젠가부터 ‘민주당은 원래 그런 당’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2030 세대가 민주당한테 바라는 니즈(needs)는 무엇이라고 보나?

“대단한 것을 바라겠나. 그들은 내 집 마련, 가족의 건강, 노후 자산, 자녀의 교육에 도움을 주는 정치를 얘기하고 있다. 국민이 박정희 정부, 김대중 정부를 고맙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에게 박하게 평가받고 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완전히 증발시켰다는 분노 때문이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점수를 따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할 일이고, 박용진은 그런 정치를 하겠다고 지난 민주당 대선 경선 때 공약을 내놨었다.”

민생 현안을 논하기에 지금 민주당 지도부는 여력이 없는 것 같다. 이재명 대표는 자기 재판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는 듯하다.

“민주당도 오늘만 살고, 이번 주만 살고, 1년도 제대로 전망 못 하는 당으로 흘러가고 있다. 민주당이 약속정당, 미래정당, 청년정당 그리고 국제정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 정부 들어 기업 경기가 안 좋아서 법인세가 덜 걷히고, 부동산 감세로 인해 당초 예상보다 올해 세수부족분이 6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면 결국 재정으로 메워야 하고, ‘재정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장이 활성화되면 재정을 축소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가 침체기에 있다면 재정의 역할이 분명해야 한다. 금리나 통화는 한국은행의 영역이니까 정치가 터치를 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건 조세와 재정이 남는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적 지렛대를 포기하면 안 된다. 재정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여전히 있다. 이를 두고 ‘중독’이라는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윤 정부 들어서 부동산 가계부채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에 관한 한, 현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규제를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양책을 펼치고 있다.

“가계부채는 주택담보 대출에 몰려 있다. 부동산은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한 채 꾸역꾸역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관리의 영역이다. 지금 가계부채 문제가 너무 심각하니까 금리를 올리기도 어렵다. 미국 금리와 우리 금리의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단기적으로 큰 부담이다. 이러다 우리가 도저히 견디지 못해서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가계에 엄청난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팬덤에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용기”

제3지대론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래도 양당 체제는 견고할 것이라고 보나?

“(양당 구도로 총선이 치러질 확률이) 99%라고 본다.”

그렇다면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는 더 심해지겠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더 강해질 것이다.”

박 의원은 일관되게 ‘팬덤정치’에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다.

“팬덤정치가 무슨 잘못이 있겠나. 다만 그 팬덤의 대상이 되는 정치인이 (팬덤에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신격화하고 영웅시하다가 나머지를 비난하는 쪽으로 가버리면 그것이야말로 정치 훌리건이다. 그런 행위가 정치를 혐오하게 만든다.”

이재명 대표 단식 현장에는 가 봤나?

“그 앞을 지나갔다. 그러면서 ‘건강 잘 챙기시라’고 인사는 했다.”

팬덤의 엄호를 받는 쪽이 아니다 보니,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민(서울 강북을)에 대한 의존이 더 클 것 같다.

“지역 주민들에 대한 신뢰가 크다.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본다. 그런 분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정치하는 게 맞다고 본다.”

요즘 지역구에 가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무엇인가?

“‘민주당 정신 차리라’는 얘기다. 거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현 정부에 대한 짜증과 분노 그리고 민주당을 지지하고 싶어도 지지하기 힘든 마음이 섞여 있다.”

소위 ‘친 이재명계’에 속하지 않는 민주당 의원들은 공천을 앞두고 내심 불안하지 않을까?

“당내에서 쓴소리했다고 사람을 쫓아내는 당이나 정권, 정치 지도자가 성공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결정권을 쥔 권력자 눈치 보고 잘된 정치인도 본 적이 없다. 소신 있게 갈 뿐이다.”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최기웅 기자 choi.giung@joongang.co.kr / 정리 권혁중 월간중앙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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