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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4명중 1명 "경증으로 응급실"…89%는 "이용 제한땐 동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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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6월 10일 119 구급대원들이 서울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하는 모습. 김종호 기자

지난 6월 10일 119 구급대원들이 서울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하는 모습. 김종호 기자

지난 20일 40대 여성 A씨가 경기도의 한 권역응급의료센터 응급실을 찾았다. 원래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데 무심코 꽃게를 먹다가 팔과 다리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고 한다. 이 병원 관계자는 “환자를 진찰해보니 상기도(콧구멍~후두의 기도)가 부어 있지 않았다. 단순 두드러기와 가려움증 증세라서 굳이 대학병원에 올 필요가 없는 환자였다. 1시간 넘게 대기하다가 5분 진료 받고 처방전을 들고 나갔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이마·코에 가벼운 상처를 입은 60대 B씨가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전북대학교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A씨는 자전거를 타고 직장에 출근하던 중 맞은편에서 갑자기 나타난 택시에 놀라 옆으로 넘어졌다. 얼굴에 찰과상을 입긴 했지만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지는 않았다. 정황을 봐서는 경증이었다. 찰과상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의료진은 “이런 경증 환자들이 하루에도 여러 명이다”고 말했다.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 중 하나는 경증 환자가 대형병원 응급실에 몰린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응급실 의료진·병상이 부족한데 경증 환자가 몰리면서 중증 환자 진료에 차질이 빚어진다. 국민 4명 중 1명꼴로 경증인데도 큰 병원 응급실에 간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일보·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지난 5~11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응급실 이용 실태를 설문조사 했다. 조사는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이 맡았다. 최근 3년 내 가벼운 상처나 통증 등 경증으로 대형 병원 응급실을 이용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243명(24.3%)이 "있다"고 답했다. 젊을수록 대형 병원 응급실을 많이 찾았다. 20대는 28.8%, 30대는 28.2%였고, 50대는 15.7%, 60세 이상은 23.5%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울산(35%), 광주·전남(각각 33.3%), 전북(31.4%), 대전(31%) 등이 높았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왜 경증 환자가 대형 병원 응급실을 찾을까. 119를 이유로 든 사람이 가장 많다. 24.3%가 '119 상담 후 안내에 따랐다'고 답했다. 119 안내시스템을 개선할 필요성이 크다는 뜻이다. '가장 가까운 데라서'라고 답한 사람이 21%, ‘의료진과 시설·장비가 우수한 대형병원을 신뢰해서’라고 답한 사람이 15.2%였다. 대형 병원 외 다른 병원 응급실 정보를 잘 모르는 경우도 8.2%에 달했다.

 응급실을 이용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점은 절반 이상(59.6%)이 환자 상태였다. 질병의 중증도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판단하기 쉽지 않다보니 119 구급대의 결정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거리 및 이동의 편의성(17%)을 중시했다.

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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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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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중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응급실 의료 인력은 제한돼 있는데 경증 환자들이 대형병원 응급실을 채우면 그만큼 중증 환자에게 집중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먼저 온 경증 환자들이 자리를 채우면 급한 중증 환자들이 응급실에 진입하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경증 환자를 제치고 중증 환자 먼저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순서가 밀리는 걸 기다려줄 경증 환자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형 병원 응급실 쏠림을 줄이기 위해 환자 부담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대다수는 응급실 방문을 제한하는 등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경증 환자의 대형병원 응급실 방문을 제한한다면 동참할 의향이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88.9%가 ‘그렇다’(대체로 그렇다 49.9%, 매우 그렇다 39.0%)고 응답했다.

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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