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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중국이 러·북의 접근을 견제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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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은 많은 파문을 남기고 끝났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러·북 정상회담의 후속 진전과 중국의 행보에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러·북 협력의 잠재력은 제한적이며, 중국은 러·북 접근을 견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한국이 중국의 견제심리를 활용하여 러·북에 대응할 수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편리한 인식으로 이어진다. 소망대로 될 수만 있다면 좋을 것이다.

중의 러·북 견제는 기대 어려워
한·러 및 한·중 관계 관리하면서
한국형 미·중·러 좌표 수립 통해
비핵 평화 통일 위한 외교 나서야

원래 북한과 러시아는 국제제재 하에서 동병상련하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더욱 접근한 바 있다. 양국은 자신들이 미국의 패권주의와 적대시 정책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이후 양국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는 상황을 보면서, 정상회담을 통해 군사협력 가능성을 과시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그것도 안보리 결의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하기로 조율한 것 같다. 이미 러시아는 핵미사일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의 역성을 들었는데, 급기야 제재 대상인 북한과 손잡고 미국 주도의 안보 구도에 대항하니, 한반도의 대결은 심화하고 북핵 문제 해결 여건은 나빠졌다.

러·북 양자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정상회담은 전략적 협력 관계를 알리는 계기였다. 호혜적인 실익 추구 계기이기도 했다. 일례로 러·북이 무기와 식량 에너지 군사기술을 거래하는 것은 서로 유익하니 추진동력이 클 것이다.

한국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한·러가 오랫동안 가꾸어 오던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유명무실해졌다. 그 지위는 러·북으로 넘어갔다. 한·러 우주, 방산 협력도 끝나고 이 사업이 러·북 간에 전개될 판이다. 이미 최저점에 이른 한·러 관계는 러·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지속되는 악순환에 빠질 소지가 커졌다.

이러한 러·북의 접근에 대해 중국은 어떻게 대처할까? 물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러의 관점에 차이와 경합이 없지 않다. 그러나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중·러가 오랫동안 미국이라는 공통의 적수를 상대로 최고 수준의 연대를 구축해왔다는 점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한·미·일 연대에 반대한다. 그러므로 중국은 러·북이 보인 미국 대항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러·북 협력에 견제심리를 발동하여 중·러 연대를 손상할 가능성은 적다. 비근한 예로 중국이 러시아의 세력권인 중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키워도 중·러 연대에 별 지장은 없다.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지 않고 무기를 지원하지 않지만, 중·러 연대는 약화하지 않는다.

이처럼 러·북 접근의 부정적 여파는 상당하고 중·러 연대는 비교적 견고하다. 그런데도 우리가 러·북 협력의 잠재력을 경시하고, 가능성이 적은 중·러 간의 틈새 활용에 기대를 건다면 우리의 대응에 착오가 생길 수 있다. 예컨대 우리는 중국을 견인하여 러·북을 견제하려 하면서 러·북에는 강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런 접근이 성과를 낼지 의문이다. 한·중 관계도 최저점인데 말이다. 러시아의 반작용과 한·러 관계의 추가 악화만 초래할 수 있다. 오히려 중·러가 연대를 지속하며, 향후 중·북 협력도 증대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대처 방안을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관련하여 고심해야 할 것은 지금의 시대 상황이 한·미·일 공조를 필요로 하나, 이는 불가피하게 한러, 한·중 갈등이라는 기회비용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앞에는 한·미·일 협력의 새 시대와 함께 북·중·러와의 대립의 시대도 열린 셈이다. 중·러와의 관계가 크게 악화하면 한국의 주요 외교·안보 과제인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정착, 통일추구는 요원해진다.

이런 흐름을 고려할 때, 당장은 할 일과 안 할 일을 변별하는 것이 중요하지 싶다. 안 할 일은 중·러와 대증적으로 치고받기를 하여 관계를 계속 악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외교의 공간이 사라진다. 과거 냉전 시기에 한국은 미국 진영의 최전선 국가였으며, 중·러와 외교 부재 상태에 있었다. 그 시대에 미·일은 중·러와 일정한 외교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 결과 한국은 냉전 내내 누구보다 더 분단, 긴장, 대립에 따른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신냉전 시대에 한국이 그런 상황으로 회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할 일은 미·중·러에 대해 통합되고 조율된 한국의 대응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첨예한 미·중, 미·러 대립구도 속에서 운신하는 한국에 대미, 대중, 대러 정책이 별개일 수 없다. 그 전략 속에는 대미 공조는 어느 정도이고 중·러와의 외교 공간은 어느 만큼인지를 알 수 있는 한국형 좌표가 내장되어야 한다. 이런 전략과 좌표가 있어야 중·러와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

요컨대 한국은 러·북의 움직임과 중국의 셈법을 잘 헤아려서 최적의 대처방안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신냉전 기류가 커지는 지금, 한국외교는 과거 냉전 시기와는 달리 한·미·일 공조를 하면서도 한국 나름의 외교·안보 과제인 비핵 평화 통일의 길을 열어가는 폭넓은 외교를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냉전과 탈냉전을 거치면서 G7 반열의 국가로 성장한 한국이 나갈 길이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