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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현철의 시시각각

도로 ‘이재명 살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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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현철 사회 디렉터

최현철 사회 디렉터

이해찬 민주당 상임고문은 2018년 당 대표 선거에서 ‘진보진영 20년 집권론’을 꺼내들었다. 대표 당선 직후엔 ‘20년 집권 플랜 TF’를 구성하겠다고 했다. 한 달 뒤에는 “대통령 열 분은 더 당선시켜야 한다”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독재 국가도 아닌데 반세기 장기 집권이라니…. 오만으로 비칠 만도 한데,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미 사상 첫 대통령이 탄핵 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연이어 이겼고,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이 성사되는 등 남북관계마저 급진전하니 오만은 자신감으로 포장됐다.

체포안 가결 후 '수박' 감별 논란
민주, 내년 총선도 이재명 리스크
50년 집권 꿈, 국민의힘이 꿀 수도

 그러나 꿈은 허무하게 깨졌다. 서류까지 조작하며 입시비리를 저지른 조국 일가를 감싸려다 오히려 진보 진영의 도덕적 밑천이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3년 만에 서초동에 다시 등장한 촛불은 국민 마음을 똘똘 뭉치게 하기는커녕 지지자들마저 둘로 쪼갰다. 이듬해 21대 총선에서 위성 정당까지 합쳐 183석이라는 압도적 승리를 거둬 기사회생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힘을 자신들의 비리를 캐려는 검찰총장을 쫓아내고, 검찰 권한을 없애는 데 쓰다 날이 샜다. 50년이 아니라 5년 만에 정권을 빼앗겼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어제(26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 실질심사)을 받았다. 요즘 영장 발부 여부를 가르는 포인트는 이전과 사뭇 다르다. 검찰 수사로 혐의가 충분히 입증됐는지 여부는 기본. 그런데 혐의가 입증돼도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으면 기각된다. 이날도 이 대표 측은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에, 검찰은 증거인멸 가능성 소명에 사활을 걸었다. 양측의 치열한 공방을 지켜본 영장전담 판사도 장고를 거듭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해 청사 안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해 청사 안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하지만 그 결과가 민주당에는 큰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이 대표가 지난 6월에 했던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은 그나마 방탄 오명을 벗을 명분을 쥐여줬다. 그러나 그는 영장 청구가 임박해 오자 지난달 말 돌연 단식을 선언했다. 체포동의안 표결 하루 전에는 입장문을 올려 “검찰 독재의 폭주기관차를 국회 앞에서 멈춰 세워 달라”고 호소했다. 앞으로도 당과 자신의 운명을 하나로 묶은 끈을 놓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역풍이 불어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후 수박 색출 작업이 벌어졌다. 가결 표를 던진 것으로 의심되는 의원들에게는 ‘아님’을 증명하라는 압박이 쏟아졌다. 21세기에 ‘십자가 밟기’를 요구하는 비이성에 상당수 지지자는 그나마 남은 기대마저 접고 있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도 옥중 공천, 옥중 출마를 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영장이 기각되면 본격적인 비명계 솎아내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이러나저러나 내년 총선은 여전히 ‘이재명 살리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다.
 이 대표의 대척점에 있는 윤석열 대통령은 요즘 마이웨이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념이 무엇보다 우선한다”고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고, 교과서도 독립군으로 명시한 홍범도 장군 흉상을 끝내 육사 교정에서 치워버렸다. 사실상 첫 개각에선 이동관·유인촌 등 MB 시절 인물을 등용했다. 임기가 남은 방통위원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을 잇따라 해임했다. KBS·MBC 사장에 원하는 인물을 앉히기 위함이라는 것을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유죄가 확정돼 직을 잃은 김태우 전 서울 강서구청장을 판결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사면하더니, 곧장 보궐선거 후보로 공천했다. 본인은 옳다고 판단해 직진하고 있겠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을 설득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지지율은 30%대 초반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위협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아무리 싫어도, 더 이상한 야당 품으로 가지는 못할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다. 해가 가기 전에 전열을 정비하고, 이후 통합적 정책을 펼친다면 총선의 승산은 더 커진다. 어쩌면 이참에 민주당이 못 이룬 20년, 50년 집권의 꿈을 국민의힘이 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