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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살포 처벌’ 위헌… “표현의 자유 지나치게 제한”

중앙일보

입력

2020년 6월 경기 파주에서 탈북단체가 보낸 대북전단 살포용 풍선이 홍천군 서면 마곡리 인근 야산에 떨어져 경찰이 수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6월 경기 파주에서 탈북단체가 보낸 대북전단 살포용 풍선이 홍천군 서면 마곡리 인근 야산에 떨어져 경찰이 수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에 전단 뿌리는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이른바 ‘대북전단 금지법’이 신설 3년이 채 안 돼 위헌 결정을 받았다.

헌법재판소는 26일 남북합의서 위반행위 중 ‘전단 등 살포’를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한 남북관계발전법 24조 1항 3호 및 관련 조항에 대해 7대2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2020년 6월 조선중앙통신 보도. 북한이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와 남한 정부의 대응을 강하게 비난하고, 북한 각지에서는 청년학생들의 항의시위행진이 진행됐다.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2020년 6월 조선중앙통신 보도. 북한이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와 남한 정부의 대응을 강하게 비난하고, 북한 각지에서는 청년학생들의 항의시위행진이 진행됐다.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이번 심판 대상이 된 남북관계발전법 24조 및 25조는 3년 전 신설된 조항이다. 당시 야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함께 추진해, 2020년 12월 29일 공포됐다. 접경지역에서 대북 전단을 다수 살포해오던 북한 인권단체 27곳과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개정안 공포 당일 헌법소원을 냈다.

위헌 7인 “북한이 싫어하는 표현만 제한하는 결과, 표현의 자유 침해”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6일 오후 헌법소원 사건 선고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6일 오후 헌법소원 사건 선고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7명 중 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형두 재판관은 과잉금지원칙‧책임주의원칙을 위배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표현의 내용까지 제한하는 건 과도하단 판단이다. 이들은 “정치적 표현 중에서도 특정 견해‧이념‧관점을 제한할 때에는 과잉금지원칙을 더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며 “실질적으로 위험을 초래하는 건 북한인데, 북한의 대응을 예측하기 어려워 결국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이 현장에서 경고 또는 제지하거나, 사전에 신고 및 금지통고 등으로 조율하는 등 다른 제재 방법이 있는데도 전단 살포 자체를 범죄로 규정해 징역형까지 내릴 수 있게 하며 미수범도 처벌하는 건 과도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재판관 4인은 또 “국민의 생명·신체에 심각한 위해는 북한에 의해 초래되는 것인데, 전단 살포자를 처벌하는 것은 책임주의원칙 위배”라는 점도 짚었다. 다만 유남석·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여기서 의견이 달랐다. 3인의 재판관은 책임주의 원칙 위배는 아니라고 했다. “전단 살포를 이유로 북한이 도발할 경우 국민에게 위험이 되고, 두 사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봤다.

김기영·문형배 “더 나은 대안 없어, 과도한 처벌도 아냐”

파주시 민통선 지역 주민 등은 '대북전단 살포 때문에 북한 도발이 이어져, 생명에 위협이 된다'며 반대 시위를 벌여왔다. 사진 파주시

파주시 민통선 지역 주민 등은 '대북전단 살포 때문에 북한 도발이 이어져, 생명에 위협이 된다'며 반대 시위를 벌여왔다. 사진 파주시

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합헌이라는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전단 살포만 제한할 뿐, 표현 내용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고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안전을 보호하면서도 덜 침해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는지 의문이며 ^전단 살포를 이유로 실제 북한의 위협이 발생하기도 했고 ^전단 살포 금지·처벌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본 입법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두 재판관은 “공산주의의 극복은 위협이나 압박을 통해서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들과 대화하고 협력·접근함으로써 그 체제가 스스로 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이른바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이 독일 통일을 끌어냈다고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며 “무분별한 접촉·연락은 오해·갈등을 부를 수 있으니 적절하게 통제하고, 당국이 관여하면 남북 간 원활한 교류·협력이 보장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전단 살포를 극도로 경계하는 북한 당국은, 살포 억제를 위해 남북합의서를 준수할 것이고 접경지역 주민 안전 및 한반도 전체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어 심판대상 조항의 공익이 있다”라고도 덧붙였다.

헌법재판소는 “남북관계발전법은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국가의 책무를 달성하기 위해 정당하지만, 이번 심판 대상 조항은 내용이 광범위하고 국가 형벌권까지 동원해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된다는 판단”이라고 이번 결정의 의의를 설명했다.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접경지역에서 대북 전단 등을 살포하는 행위에 대한 일반적 제한은 즉시 사라졌다. 다만 헌재는 “향후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으로 전단 살포 신고의무를 부과하는 등, 입법적 조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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