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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이겨낸 세살배기, 18년뒤 또다시 암이 찾아왔다 [소아암 희망된 기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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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20년 신규 암 환자 중 60대가 가장 많다. 치료가 끝난 후 20여년 재발이나 2차암(다른 부위에 발생한 암)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 0~19세 소아암 환자는 더 잔인하다. 길게는 80년 가량 시달린다.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가 운영하는 소아청소년암 통합지원센터 '유아원데이' 프로그램에서 소아암 환자들이 부모와 음악 치료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가 운영하는 소아청소년암 통합지원센터 '유아원데이' 프로그램에서 소아암 환자들이 부모와 음악 치료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이윤지(23·가명)씨는 2021년 두 번째 암 진단을 받았다. 골수이상형성증후군이다. 혈액 수치가 들쭉날쭉 해 빈혈을 의심했다. 이씨는 2003년 세 살 때 신경모세포종이란 암을 앓았다. 당시 치료 경과가 좋았고, 크면서 이상이 없었다. 이번에 혹시 몰라 골수 검사를 했더니 2차암 진단을 받았다. 1년 휴학해서 조혈모세포 이식 후 항암 치료를 받았다. 이씨는 "과거 신경모세포종 방사선 치료의 영향이 지금 나타난 것 같다"며 "(앞으로도) 걱정되긴 하지만 최대한 나쁜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생존자 장기추적 사업 시작돼 #미세잔존암ㆍIQ 검사도 지원

박모(12)양은 2017년 급성림프구성백혈병에 진단을 받고 2년 간 항암 치료를 받았다. 치료가 끝난지 4년 지났고 의학적 완치 판정(치료 종료 후 5년)을 앞두고 있다. 아버지는 "아이가 잘 안 커 또래보다 키가 작고, 초경은 빨랐다. 나중에 불임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재발 우려에 짓눌려 산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2020년 소아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과 비교)은 86.3%로 연 평균 0.56%p 올라간다. 전체 암(71.5%)보다 높다. 소아암 생존자는 3만~3만5000명에 이른다. 뇌·뼈 등이 막 성장할 무렵에 암 치료 받는 게 좋을 리가 없다. 박현진 국립암센터 소아청소년암센터장은 "소아암은 고강도 항암화학요법, 조혈모세포 이식 등이 필수적이다. 2~3년 집중 치료하면서 성장에 지장을 받고 신체 장애가 생기기도 한다"고 말한다. 피지훈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신경외과 교수는 "골육종 환자는 팔다리가 짧아져 늘리는 수술을 하기도 한다. 신체가 망가지고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 당한다"고 말한다. 백희조 화순전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항암제·방사선 치료 탓에 심장·콩팥 등에 문제가 생긴다. 청력이나 폐 기능이 떨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1993~2012년 소아암을 앓은 2만8045명을 추적했더니 337명(1.2%)이 2차암에 걸렸다. 10년 생존율은 65.1%로 2차암이 안 생긴 환자(73.4%)보다 낮다. 성장에도 지장이 크다. 15개 의료기관이 241명의 소아암 생존자를 조사했더니 22%가 친구 부족을, 41%가 학습 곤란을, 53%가 성적 저하를 호소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소아암 생존자의 고통에 대해 우리 사회는 아직 관심을 두지 않는다. 미국은 장기 추적 위원회가 있다. 한국도 이제서야 첫발을 디뎠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2021년 5월 서울대병원에 기부한 3000억원 덕분이다. 서울대병원의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 사업단'이 전국의 전문가와 머리를 맞댔다.

방사선 치료를 하면 인지기능(IQ)이 떨어진다. 기부금이 최고 100만원에 달하는 IQ검사비를 지원한다. 비용 때문에 잘 안 하던 미세잔존암 검사(최고 88만원)도 지원해 재발 예방에 기여한다. 피지훈 교수는 "눈에 보이는 건 아니지만 환자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검사가 기부금 덕분에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소아암 생존자 장기추적 사업도 시작됐다. 국립암센터 박현진 센터장을 비롯한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박 센터장은 "추적관리 플랫폼·앱을 개발하고, 호흡기계·산부인과·치과 질환을 관리하며, 신체·신경학적 변화를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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